저는 대형 마트 정육매장에서 8개월여간 알바를 했었습니다.
업무내용은 돼지고기 판촉(소리높여 멘트), 시식고기 굽기, 고기(소,돼지,닭,오리) 판매
여름 시즌에는 추가로 생닭을 토막쳐서 담아주는 일이었습니다.(닭도리용)
개인적으로는 이 8개월을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중 하나로 꼽습니다.
일을 하면서 스스로의 틀을 한꺼풀 벗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 판촉할 때
마트에서 소리지르면서 홍보하는 분들을 볼 수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끄러워서 싫어합니다.
다만 사수가 시키기때문에 어쩔수 없이 했습니다. - _-
처음 입을 떼서 말하려고 하면 무슨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거 같고
도무지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육질 연하기로 소문난 제주도 흑돼지~~~'라고
첫마디를 떼는데 이틀 걸렸습니다. ;; 한번 말문이 터진 이후로는 점점 뻔뻔?해져서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장보러 나온 아주머니들과 농담따먹기도 하면서 일을 즐겼습니다. 제가 일하던 곳이 단일 매장으로는 매출이
5위안에서 왔다갔다 하는 곳이라 유동인구나 꽤나 많았음에도 거침이 없어졌습니다.
이 경험 덕분에 열명, 스무명 정도의 회의실에서는 PT할 일이 있어도 부끄럼 없이 할 말 다 할수 있습니다. -_-v
...다만 발표 내용이 문제가 될 뿐이겠죠 ㅎㅎ
2. 닭도리 칠때
칼을 잡는 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방금 지어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다. 닭도리용 도끼칼(저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거기다 무겁기까지...)을 처음 잡았을때
제 손가락을 토막쳐 버리지는 않을까 정말 무서웠습니다.-_- 미끌거리는 닭의 감촉은 얼마나 징그러운지...
그녀석의 내장을 열어서 지방을 발라내는 일은 ... 일을 관둘까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사수가 닭도리를 치는 모습을 보면 뭔가 경이로웠습니다. 8초에 한마리씩 토막이 쳐졌습니다.
칼은 정확하게 관절사이에 들어갔고, 손님의 요구사항에 맞게 닭목을 남기는 길이도 자유자재였습니다.
도리용인지 삼계용인지에 따라서 배를 딱 적당하게 갈랐습니다. 양념이 잘 스며들라고 몸통과
다리에 칼집을 내어주는 마무리까지...정말 완벽하고 멋진 사수였습니다.(다만 그만큼 성격은 결벽적입니다-_-)
저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았고 두려움을 떨쳐내고 사수를 흉내내보기 시작했습니다.
일할때의 표정과 손동작, 몸의 움직임. 그럼에도 닭에게 온 정신을 집중해선 안됨니다.
한발 물러서는 듯한 여유로운 마음으로 작업장을 관조 해야합니다.
손님의 요구사항과 문의에 부드럽게 응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주일후 ... 닭1마리에 10초면 토막낼 수있게 되었습니다. 껍질벗기는 데에는 10초 추가.
손에 익게되자 '월드컵 닭도리'라고 이름 붙인 퍼포먼스를 활용했습니다.
'탁탁탁 탁탁' 하고 다섯번 칼질에 몸통과 다리를 분리해 내고 대~한 민국을 외쳐주는 쇼를 하는거죠 -_-
아주머니들의 반응은 좋았습니다. ㅋㅋㅋㅋㅋ (네...2002년의 이야기 입니다. ^^ )
무언가 새롭고 두려운 일을 시작할때는 늘 이때의 경험을 떠올립니다.
두려움을 의욕으로 승화시킬것. 선배를 흉내낼 것. 집중하되 관조할 것.
저는 IT직종에서 종사하기 때문에 일을 하는 과정은 언제나 새로움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습니다. 옆자리, 뒷자리에 든든히 버티고 있는 선배, 사수에게
감사와 존경을 담아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
3. 고객응대할 때
마트에서 일을 하면서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구나'...하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인지 마트에서 일한지 얼마 안된 알바생들은 종종 고객과 충돌을 일으키고 일을 그만두곤 합니다.
그런데 마트에서 오래 일한 고참 아주머니 직원들은 절대로 고객과 큰소리가 나는 법이 없습니다.
그다지 친절한 것 같지도 않고 어찌보면 무뚝뚝하기 까지 한데 고객이 만족하고 돌아갑니다.
말이 길지도 않고 말솜씨가 뛰어난 것 같지도 않은데 고객과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집니다.
그분들 특유의 태도나 분위기가 있긴 한데 뭐라고 특징지을 수는 없는 ...
그 무언가가 있었고... 저는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비결알 알 수 있었던 밤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
후출조여서 10시까지 근무하던 날 밤. 아주머니 고객이 찾아왔었는데 마트에 대한 불만을
저에게 화를내며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기분은 나빴지만 그래도 고객이니까... 하면서 웃으며 뭔가 설명하려고 했는데
같이 일하던 아줌마 직원이 눈짓을 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나서서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고 몇번의 네네와 끄덕임. 그리고 눈웃음이 오갔습니다.
순간. 아! 이거구나 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말것. 긍정할것'
말이 길어지면 말다툼으로 번지기 쉽고, 부정하면 상대와의 소통은 이미 저 멀리 가버립니다.
말다툼의 끝은 앙금일 뿐 설득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이 듣고 긍정해 줌으로써 상대는 자신의 할 말을 다 한 후련함이 생깁니다.
그런 후라야 비로소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비로소 진짜 대화의 시작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
작지만 개인적으로는 컸던 깨달음으로 저는 별다른 충돌없이 마트생활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학창시절에 알바를 해 보는 것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않나...싶습니다.
이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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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흥이나 버렸습니다-_-;;
글이 꽤나 길고 지루하군요. ;;
혹시 다 읽으신 분이 계시다면...대단하십니다. -_-b
좋은 조언입니다.
오늘하루 보고 넘어가기엔 아까운 글이네요.. ㅎ
주취자에게는 통하지 않네요...ㅋㅋ
이런글들이 클리앙을 자주오게 만드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