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꽤 됐었다.
그런데 내 캐나다 동창은 비교적 멀쩡한 나보다도 훨씬 노래를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다 보니 두어곡 부르고 잠든 동창을 뒤로
같은 반 녀석과 한 시간이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그 녀석이 노래 잘하는지는 얼추 알고 있었는데,
노래방에서 들으니 신인가수와도 같았다.
맛있고 차지던 김건모의 청첩장이 기억난다.
10시가 다 되어서 카운터로부터 서비스가 들어오지 않은거 같았다.
동창을 깨우는데 잠과 술이 어쩜 그렇게 궁합이 좋은지,
동창은 겨우 일어나 걸게 되기 까지 10분 이상은 걸린거 같다.
노래방과 우리 둘의 집은 중간쯤에 있었다.
잠이 슬슬 깨는 그녀에게로 초등학교때 살았던 집이 할아버지 댁이였다는 것과
자기가 초등학교 때는 키가 더 컸는데 따위의 소리를 하며 그녀를 데려다줬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오는 길에 같은반 녀석에게 대답해주어야 했다.
술을 꽤 많이 먹었는지 머리가 아파왔다.
아 이게 아빠가 말했던 숙취라는 건가.
집에 와서 소변을 보자 갑자기 엄청난 잠이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눈을 뜨니 7시반이였다.
방학에 술까지 마셨는데도 대단하다.
유선 전화기를 들고와 캐나다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처가 불분명한 위협이 나를 그렇게 시켰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녀는 통화음이 두어번 가자마자 바로 전화를 받았다.
속은 괜찮냐, 머리는 안 아프냐, 할아버지한테 안 혼났냐, 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던거 같다.
동창에게 집으로 오라고 했다. 지금에선 못할 말일텐데 그때는 진짜 순수했는지 어쨌는지.
그녀를 기다리며, 무슨 더러운 심리인지 씻지 않은 집에서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잠옷 차림에 머리도 감지 않고, 양치와 세수만 한채 여름 이불을 반쯤 덮고 책을 읽는 척을 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등학생들이 집에 있기 싫어하는 이유는 집에서 할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중학교 앨범을 보고, 어렸을 적 주고 받았던 친구들의 편지 따위나 보며
그래봤자 5년 정도 된 과거의 꼬마들의 연애사를 털어내다보니
지갑에 돈이 비는 것처럼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색하게 주방으로가 물을 한컵 꿀꺽꿀꺽 마셨다. 그녀는 안 마신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정신 나간거 같은데,
방에 들어가자마자 얇은 여름 이불에 반쯤 몸을 넣고 벽까지 몸을 부친채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준다며 이리로 오라 했다.
손목부분에 어색하게 그녀의 귀가 느껴졌다.
그녀는 어제 술을 마셨더니 집으로 가는 길에 내게 뽀뽀가 하고 싶었다며
'왜 그랬을까? 푸하하하' 하며 웃었다.
언어에 당분이 있다면 당뇨가 걸릴 정도였다.
그녀의 말은 달았다.
그날 그녀의 배꼽이 기억난다.
그녀의 배꼽은 아주 뛰어난 조각가가 만든 것처럼
아주 적당한 R값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만 턱을 당기면 그녀의 영혼이 내 앞에서 적당한 박자로 4분음표인지 2분음표인지를 그렸다.
여름이라서 그런가. 방은 습하고 엄청 더웠다. 장마도 끝났는데.
신기하게도 짜증이 나지 않는 열기였다.
짜증이 나지 않는 습하고 더운 방이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내 알통을 꽉 쥐었다.
그리고 기후 탓인지 그녀의 긴 머리칼과 코 끝으로 땀이 뚝뚝 내 가슴으로 떨어졌다.
뚝뚝 떨어지는 땀을 보더니 그녀는
'내 육수야 프하하하'
라고 웃으며 말했다.
육수집은 그해 겨울 방학까지만 영업했다.
독점계약이라나 뭐라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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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호텔 한식 코스라고 해도 나오는건 갈비탕이라며
애꿋게 음식 탓을 하며 감상 중에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결혼식 예복은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느낌을 주는게 요즘 대세인가보다.
식사는 먹을만 하냐며 갈비탕 국물 맛이 어떠냐는 친구에게
그럭저럭 괜찮다 했다.
10년 연애를 축하합니다. 따위의 화환을 보며 생각해보니
육수집이 겨울에 영업종료를 한 그 해에,
좀 전에 들었던 가수의 앨범이 나왔었다.
귀로는 집으로 가는 길에 듣기엔 충분히 슬픈 노래다.
#CL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