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곳곳에서 여성의 지위가 상승한다는 뉴스를 초등학교 때 부터 봤으니까
20년은 넘었을 것이다.
주말의 일이다.
어디선가는 여자가 남자에게 대쉬도, 프로포즈도 한다지만
그래도 결혼식날 신부가 본인 결혼식의 축가로 박화요비 노래를 열창하는 건,
웬만큼 노래를 잘하거나 아니면 그 노래가 자신의 웨딩송이라 생각했을 정도겠다.
뭐 어쨌든 신부는 노래를 꽤 잘했다. 난 박화요비를 싫어하지만
식이 마치고 이내 하객이 썰물처럼 빠져 나온다. 우왁스럽게 우겨쥐는 콜라통 주둥이 같은 입구를 헤집고
밥이나 먹고 가야지 했다.
청첩장을 받을때 마다 느끼는 것인데, 그 수많은 업체들은 왜 약도를 항상 대충 만드는 걸까.
식당을 못 찾아 투덜거리다가,조금 헤메다 밥 먹는 것 처럼 보이는 장소를 찾았다.
삼성동 어딘가에 위치한 호텔 결혼식.
이런 곳은 영영 올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자리를 잡으니 한정식 코스처럼 보이는 음식들 이것 저것을 가져다 준다.
행여나 귀찮은 사람들을 만나 불량식품 같은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서
코트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찾아 귀에 꽂고 주는대로 음식을 받아 먹으며
최근에 나온 어느 남자 가수의 싱글 앨범을 연속해서 듣고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어깨 노크를 하기 전까지.
20대에 들어와 이제 막 고딩티를 벗을 무렵에 갔던 결혼식은 사실 정장을 입은 내 모습이 좋아
결혼식 자체에 신경을 못 썼다 하면
30대를 목전에 둔 지금에서의 결혼식은 신부 친구들을 눈치게임 하듯이 조심히 살펴보거나
주말에 구질거리며 집에 있을바에야 밥이나 먹으러 나와야지 정도이다.
생각해보니까 별로 바뀐건 없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여름방학이였다. 그때는 지금의 페북만큼이나 msn 을 많이 썼는데,
초등학교 때 단짝이였던 여자친구가 메신저를 통해 자신이 이번 여름방학에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
먹을 복은 있는지 마침 친인척 여행을 간다며 부모님 내게 5만원이나 주고 가셔서
우리는 동네에 오래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고기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늦어지는 여름날이였고, 오후 5시여도 해가 질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에 나는 모서리 자리가 좋았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5년만에 봤어도 알아볼 법한 친구가 들어왔다.
5년전에 어느 날 처럼 주먹으로 어깨를 팡팡 치며 인사하기에는 내가 조금 두근거렸다.
괜시리
'야! 키는 하나도 안 컸다야' 하며 우리는
센스 있는 알바의 배려로 5분 정도 주문도 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했고
나는 좀 전까지하던 아주 조그마한 걱정을 날릴 수 있었다.
나는 학생 때 꽤 모범생이였다.
하지만 모범적으로 생기지는 않았었나보다.
주문을 받으며
'술은요?' 하는 알바의 말에
친구에게
'술 한잔하자?' 하며
능숙한척 소주 하나 맥주 하나 시킨 것은 분명 처음을 들키기 싫은 그 나이대의 심리였을 것이다.
어쩐지 치기라고 하고 싶진 않다.
친구는 삼겹살을 너무 오랜만에 먹어본다며 (캐나다는 삼겹살이 없나?) 엄청 잘 먹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이 되어 주변 테이블들은 꽉 찼다.
분명 우린 서로 소주는 처음 먹어본다 했는데, 소주병 뚜껑꼬다리가 주렁주렁할 때 쯤
불현듯 그녀의 취한 모습과, 혹시 주변 이웃집에게 내가 술 취한 모습이 들킬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카운터로가 계산을 하고 나가려 하는데, 누군가 어깨 노크를 하며 카라바죠야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같은 반 친구가 웃으며 서 있었다.
벌개진 내 얼굴을 보며 부럽다는 듯이 속삭이면서, 내 초등학교 동창을 가르키며 혹시 여자친구냐 물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고 싶지 않았던 그 때 내 주변의 얼버부리는 공기를 뚫고
노래방을 가자는 캐나다발 토마토 동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노래방을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글빨 장난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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