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대학살때 난징 주민들 30만명이상이 죽었다고 합니다.
중국역사에서 이보다 더한 기록이 있긴 하나
최대 규모는 청나라 초기 명나라를 멸망시키면서 끝까지 반항하는
사람들을 죽인 규모가 수천만명 수준입니다.
중국 사학자들은 청나라 초기 4-5천만명 전국 각지에서 남녀노소 가 죽었다고 추정합니다.
양주성을 함락하면서 10일간 80만명을 죽인기록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양주십일기로 기억합니다.)
그때도 성 단위로 사람들이 모여살았는데 청군이 지나간 성에는 사람이 남아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청나라 초기 반항하는 자가 있으면 그자를 죽이고 그 가족까지 모두 죽인다.
그가족을 죽이면 그 부락까지 모두 죽인다. 변발을 하지 않는 자는 반항자로 여기고 모두 죽인다.
이정도 수준입니다.
청나라 학살과 버금가는것이 원나라 건국하면서 끝까지 저항한 한족에 대한 학살인데 이때도
비슷한 인원이 학살당한걸로 사학자들이 추정하고 있습니다.
기록에는 7천만명 수준의 한족이 2천만명 정도 줄어든걸로 나옵니다.
민간인의 피해니 포로의 처우 같은 것들이 이슈가 된게 1차 대전 이후였고
그 전에는 인권에 대한 인식도 없었던 때니까요.
인구 10% 이상이 죽으면 국가가 안돌아갑니다
with ClienS
2차대전 사망자가 5천몇백만이라는데...
아무리 청나라 군대가 엄청났어도 그 많은 숫자를 죽이는건 힘듭니다.
단순히 죽이는 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그 뒷처리도 해야 하거든요.
그러지 않으면 전염병 돌고 더 큰 난리가 날테니까요.
청나라때는 금서였습니다.
양주십일기 가 대표적입니다. 성단위로 모여 살던 사람들 전부 죽였다고 하죠.
이런식으로 성단위 모두 다 학살했습니다.
아예 시대가 다른데 *
님 논리대로라면 청나라 세조 8년에 실시한 인구조사 천만명은 어떻게 설명을 할까요?
작게는 2천만명 크게는 5천만명으로 보고있는 듯 합니다.
명말 인구도 1억 5천에서 2억 정도로 보는 하구요.
노비나 지방등 권력이 미치지 못한 곳의 인구수를 다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청나라 초기에 인구조사 1천만명은 어떻게 설명할껀가요?
세계 인구비율 대비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사건은 당나라때 안록산 사사명난입니다.
from CV
게다가 그 잔혹함의 선두에는 만주족과 함께 한족(오삼계 등 명나라 왕족과 반군에 반대하는 )이 앞장서게 됩니다
결국 청나라가 거쳐가는 성들마다 성내의 사람들을 다 죽인건 아니라는거죠.
강남한족들의 저항은 청나라가 자초한 면이 큽니다.
그 중 결정적인 것은 체발령이었습니다.
체발령에 많은 수 (특히 남쪽의) 한족들의 반발이 클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안정이 되는 듯 싶었던 강남이 다시 들썩일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은 강남 지식층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큰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게다가 청나라는 예친왕 다탁이 남경에 입성한 후 무관과 병사만 체발하고 문관과 민간인은 체발하지 않아도 된다는 포고문을 붙여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거의 한달만에 체발령을 내립니다.
이에 큰 반발은 당연한 것이였지요.
양주십일기는 체발령 이전에 있던 학살이지만 이후 대표적인 가정삼도와 나며지 학살의 사태를 훨씬 더 키운것은 청나라의 지배층이었습니다.
체발령이 효과가 있었는가는 해석에 따라 답이 달라 질수도 있겠지만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청나라는 문제가 있을때 학살같은 극단적인 탄압적인 방법을 사용한 예가 한족계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에도 보이기에 학살의 규모가 수천만 정도가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고 보입니다
"저 새는 해로운 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