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국내 소수 입니다.
이게 인터넷상에서 '볍신같은 왜군들 ㅋㅋ' 풍조와 맞물려 확 퍼진거죠.
'그랬을거 같지 않냐?' -> '그랬을거야' -> '그랬다' 정도로 바뀐 겁니다.
'왜군이 배에 포를 매달아서 쐈다' 는 이야기가 퍼져있기는 하지만
근거는?
불분명하죠.
2000년 중반에 이 설(?)이 역덕후들의 사랑을 받으며 유행했던 것뿐입니다.
왜 수군의 대포에 관한 다수설(거의 통설적)은
왜군 전선은 조선 전선에 비해 약하고 대포를 매우 적게 운용했다.
조선 전선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빠르고 비교적 사람을 많이 실을 수 있는 배였고,
왜군들은 그에 부합하는 우수한 조총사격능력 + 단련된 백병전능력 위주의 전술을 구사했다....정도 입니다.
그리고 왜군이 아예 전선에서 대포를 쓰지 않았나...하면 그것도 아닌게
쓰긴 썼습니다.

일본 연구에서도 대포를 쓰더라도 1척에 '1~3문' 운용하는게 고작인것으로 취급합니다.
애초에 함포전 개념이 없는 것이 문제인 집단이었던것이 해전에서 불리했던 원인인 것이죠.
대포를 쓸 생각자체가 없었던거.
그렇다고 해도 대포를 어딘가 매달아 쏘는 것으로 설명, 묘사하지는 않아요.
저 그림속 화포는 형태로 볼 때 아마도 불랑기포인데
당시 일본의 수준을 볼 때 대포를 쓴다고 하면 불랑기인게 맞습니다.
(포르투갈이 전해준)
이순신 장군이 올린 장계 중에 보면 이런 노획품 보고 목록이 있어요. (부산파왜병장)
..왜의 갑옷 5벌 속에 1벌은 금갑이요, 왜의 투구 3개, 왜의 장창 2자루 왜의 총통 4개, 왜의 대정 4개, 왜 말안장 1부, 어치 1부, 왜의 초상 1개, 왜의 각색옷 7벌, 왜의 바라 2짝, 왜의 연철 22근, 왜의 죽족전 12부 5개, 왜의 장전 5부 23개, 왜의 무족전 2주 11개 왜의 화로 1개, 왜의 솥 1개, 왜의 궤 1개, 우리나라 장전 9개, 겸자 1자루, 지자총통2정, 현자총통 2정 대완구 1개 조피 1령..
보시면 왜의 총통 과 우리나라 지자총통, 현자총통, 대완구가 따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선군의 총통도 노획해서 쓰기도 했고 '왜의 총통'이라는 조선의 총통과 상이한 포가 존재하기는 했다는겁니다.
그게 불랑기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일본이 대포를 얻은 경로는 포르투갈, 조선군으로부터 노획 이런 것인데
포르투갈이나 조선이나 전부 포가에 얹거나 동차를 쓰거나 그렇거든요.
일본애들이 혼자 창의력을 발휘하는게 있을 수 는 있는 일이지만
보통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면 웬만하면 초기형태 그대로 쓰는게 순리입니다.
아마 '왜의 총통'은 일본에서 제조되었다기보다는 포르투갈이 전해준 것이겠죠?

유럽산 불랑기포의 고정방식은 조선, 명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은 처음부터 불랑기를 쓰던건 아니고 나중에 참전한 명군이 불랑기를 쓰는 걸보고 복제해서 따라 쓰기 시작합니다.
형태나 운용면에서는 동일하죠. 화력덕후답게 불랑기자체는 더 키웠지만.
포가에 얹어서 운용하는 것은 전수받은대로 운용합니다.
당시 유럽 사용방식이랑 똑같아요.
후기로 가면 포가를 유럽방식보다 더 좋게 개선합니다. (하멜이 인증)
유럽 -> 명 , 명 -> 조선 전부 전수받은대로 운용하는데
포르투갈한데 다이렉트로 받은 왜인들은 자기들 멋대로 막 매단다고요? ....그럴 가능성이 없는건 아니지만 굉장히 낮죠.
서양연구가들 조차도 일본애들이 불랑기포를 쓸 때 저렇게 포가에 얹어서 운용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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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1576년에 포르투갈에서 일본에게 준거라고 전해집니다.
어쨌든 불랑기포죠. 화포 아래쪽을 보시면 고정핀이
근데 일본애들이 전국시대에는 대포 자체를 잘 안 썼습니다.
야전에서는 머스킷테크트리를 밟아 일제사를 하거나했고, 위력을 발휘할 공성전에서도 불랑기포 몇 대로 깔짝대보는 수준을 벗어나질 못했죠. (대포의 위력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
그러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대포를 곧잘 쓰게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리 끝장낼 때 대포를 대량 운용하고 오사카성을 함락하는데 효과를 보죠.
갑자기 안 쓰던 대포를 쓰기 시작했다.....이건 조선, 중국 포술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그 전엔 아예 대포를 쓰는 역량자체가 없었다는 거.
배에 대포하나도 제대로 거치할 능력이 없어서?
라기 보다 함대전에서 대포를 사용한다는 발상자체가 아예 없고 그거 실을바에 병력을 더 싣겠다고 하니
대포를 거치하는 배가 없는것이고 있어봐야 극소수만 운용하는 게 당시 왜군의 상황이었던 거로 봐야겠죠.
일본애들이 그냥 대포와 포술, 함포전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포를 어딘가에 매달아'서 쐈다는 이야기는 딱히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하고 볼 게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재미있는 정보 잘 보았습니다. :-)
그 카메라가 더 보고싶네요. ㅋㅋ
#CLiOS
근거가 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언급하신 그 그림은 고작해야 100년전에 그려진 그림일 뿐인데, 그 그림 자체가 근거가 되긴 어렵죠. 일본에도 그런 기록이 없고, 조선, 명에도 없고 프로이스가 남긴 기록에도 그런 이야기는 없습니다. 딱 저 그림 하나밖에 없어요. 백년전쯤에 누군가가 그린.
일본배의 단면도나 불랑기사용묘사 그림은 자체가 근거가 아니라 이해를 돕는 그림일 뿐입니다.
그 '조선전역해전도'가 '근거'라는 이야기는 1960~70년도에 그린 '민족기록화'에 등장하는 거북선이나 조선수군의 모습이 '근거'가 된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죠.
그외에도 이 그림에 나오는 일본 전투함이 대포를 대들보에 밧줄로 매달고 쏘는 묘사 때문에 한동안 일본 배는 구조강도가 약해서 포를 갑판에 설치할 수 없다!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는데, 최근 신재호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은 화가가 사료를 오독해서 잘못 그린 것이고, 실제로는 그정도로 일본 배의 구조강도가 약하지는 않았으며 대포도 정상적으로 갑판에 거치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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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선전역해전도'에 관련한 엔하위키글인데, 이 경우는 엔하위키가 근거가 아니라 임진왜란 연구가인 '신재호'의 견해가 근거인 이야기가 되겠죠. 화가가 사료를 오독해서 잘못 그린 것이라는 평가이고, 저 그림처럼 '대포를 매달았다'라는 이야기의 근거(?)가 될 기록물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