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전설적인 포르노 스타 '린다 러브레이스'의 일대기를 다룬 '러브레이스'가 개봉했습니다
포르노의 황금기(The Golden Age Of Porn)를 열어젖힌 인물인데, 포르노의 황금기란 보통 1970년대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 이전까지의 포르노란 대게 스토리나 대사도 거의 없는 10~20분까지의 단편이었고, 대게는 구석의 후미진 전용상영관에서나 보던게 전부였는데,이게 어느순간 35m 필름으로 촬영되고 또 그게 언더를 벗어나 주류 상영관에 버젓이 상영되고 기록적인 흥행을 하던 시기입니다.
사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황금기였죠. 그리고 그 시기를 열어젖힌 이가 바로 린다 러브레이스 입니다.
그녀의 남편에 의해 포르노의 길에 입문한 러브레이스.. 그녀를 마주한 제작자는 단번에 그녀의 '특별한 기술'을 눈치채고,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35m필름에 스토리를 갖춘 장편영화로 촬영하고, 그걸 또 주류상영관에 거는 모험을 단행하는데요.
제작자가 탄복한 그녀의 '특별한 기술'은 다름아닌 'Blow Job'(설명해야 하나요? ㅋㅋ) 이었고 그중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하드코어한 'Deep Throat'(입안에서 머무는 수준을 벗어나 말그대로 뿌리채 목구멍 깊숙히 집어 넣는)였습니다.
영화는 그 기술을 그대로 제목에 달앗고(Deep Throat), 영화는 공전의 흥행을 기록하며 포르노의 황금기의 태동을 알립니다.
그 때가 바로 1972년 이었는데, 이 해에는 러브레이스 못지않게 포르노역사의 환 획을 그은 또 한명의 전설이 탄생했습니다.
마치 동시기에 미분학을 창시한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관계처럼, 러브레이스와 그녀또한 역사의 비중에서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는데요
또 한명의 그녀는 바로 마릴린 챔버스(Marilyn Chambers)입니다
.
헐리웃 스타였던 시빌 셰퍼드를 닮앗다는 이유만으로 포르노에 캐스팅된 그녀는, 마침 그녀가 과거에 찍었던 사진이 대기업 P&G광고 사진으로 쓰이게 되면서 우연치않게 '연예인 포르노'의 효시가 되고 맙니다.
(제작자의 잔머리에 의해)P&G의 광고모델로 전미적 인지도를 갖춘시기에 개봉한 그녀의 첫 작품 'Behind The Green Door'는 '목구멍 깊숙이'를 넘어서는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단순 흥행을 넘어 칸느영화제에 초청받게 되었고, 그렇게 칸에 초대된 최초의 포르노가 되면서 작품성마저 인정받게 됩니다. 포르노 역사에 전례가 없는 큰 획을 그었죠
.역시 당대의 스타가 된 그녀는, 러브레이스와는 달리 이후에 몇편의 헐리웃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작가로서,, 뮤지션으로서도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게되지만 결국 2009년 50대 중반의 나이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합니다.
여담이지만, 러브레이스를 포르노의 세계로 인도한 그녀의 남편 '척 트레이너'는 그녀와 이혼한 후 마릴린 챔버스와 재혼하게 됩니다. 인연 혹은 악연 이랄까요? 뭐 척 트레이너가 복 받은 넘일지도?
그렇게 린다 러브레이스와 마릴린 챔버스 두명의 대스타로 인해 촉발된 '포르노의 황금기'는 그 황금기를 이어줄거라 기대하던 또 한명의 스타로 인해 그 짧은 전성기의 막을 내리고 암흑기로 접어들게 되는데요.. 그 인물이 바로 '트레이시 로즈'(Traci Lords)입니다
8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진저 린'을 누르고 'Porn Queen'의 반열에 오른 그녀는, 포르노 역사상 가장 화려한 기술을 가진 여배우로 평가받는데요..
당시 배우들조차 꺼려했던 'Anal'은 물론 'Double Penetration'까지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등 과감한 테크닉으로 많은 팬덤을 확보하며 탄탄한 입지를 확보하게 됩니다.
당시 그녀의 새비디오가 출시되는 날은 지금의 아이폰 출시에서나 볼 수 있는 긴줄이 비디오샵 앞에 늘어섰다고 하네요.
그렇게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던 그녀는 어느 날 경찰들에 의해 긴급 체포되고 마는데요.. 그 이유는 나이를 속였기 때문입니다.
트레이시 로즈가 포르노에 데뷔하던 나이가 법적 성년인 18세가 아닌 16세 였다는게 밝혀진거죠.
당연히 전미의 비디오 샵에서 그녀가 미성년때 찍은 포르노 작품은 모조리 수거되고 폐기되었습니다.
물론 민증 위조는 그녀 스스로 자행한 것이지만, 그녀가 법정 증언에서 '포르노 업자의 강요를 받아 위조하고 데뷔했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 포르노 산업 전반에 거센 파장을 불러오게 됩니다.
수많은 포르노 업자들이 구속되었고, 맹비난에 시달리게 됐으며 급기야 포르노 산업이 올스톱되는 사태까지 맞이하게 됩니다. 트레이시 본인도 업계로부터 퇴출되고 청부살해 위협에 시달리게 되죠
결국 업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당대의 스타로 인해 포르노의 황금기는 그 짧은 전성기를 뒤로하고 암흑기로 접어들게 되었죠. 이 후 포르노 산업은 침체기를 서서히 벗어나며 다시금 활황기를 맞게 되지만, 주류 문화로부터 완전하게 배척당하며, 비주류의 음지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솔직히 제 자리를 찾은 거죠.
하지만 이후에도 자신의 화력한 이력을 앞세워 주류를 꿈꾸며 도전장을 던진 이들이 있었으니 그 대표적 인물이 '아시아 카레라'(Asia Carrera)입니다.
아마 포르노 역사상 가장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추측되는데요. 일본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그녀는 IQ155의 멘사회원이기도 하면서 어릴적 피아노 신동으로 불리우며 그 서기 힘들다는 '카네기 홀'에서 무려 두번이나 공연을 가진 경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약관의 나이로 대학강단에 서기까지. ㅎㄷㄷ
그 화려한 이력을 앞세워 틈나는대로 주류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곤 했는데요. 여성해방, 여권신장의 상징적 인물로 포장되기도 했습니다. 헐리웃 진출을 꿈꾸며 가끔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역시 주류 문화의 냉랭한 반응속에 결국 그녀 또한 꿈을 이루진 못했죠. 2003년 은퇴하고 이후 포르노 감독및 제작도 가끔 한걸로 알려졌습니다.
뭐 일단 여기까지 입니다. ㅎ 주로 포르노의 황금기(The Golden Age Of Porn)과 관련된 인물을 다뤄봤는데요.나이가 어느정도 있고 추억의 만화방 상영관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떠오르는 인물도 몇몇 있으실 겁니다.
아마 여기 거론된 인물들은 미국 포르노및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그리고 드라마틱한 삶등을 고려할 때 아마 나중에 영화로 다뤄지지 않을까? 추측.. 혹은 기대 하고 있구요.. 이외에도 포르노의 황금기를 수놓은 굵직한 스타들도 많습니다. 세카, 줄리엣 앤더슨, 케이 파커, 진저 린, 앰버 린등... 언젠가 시간이 난다면 이들에 대해서도 썰을 한번 풀어봤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셨으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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뽐뿌에 올렸던 글인데, 클리앙에도 퍼와 봅니다. 시간날 때 심심풀이로 읽어 보시길..ㅎ
포르노의 황금기(The Golden Age Of Porn)를 열어젖힌 인물인데, 포르노의 황금기란 보통 1970년대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 이전까지의 포르노란 대게 스토리나 대사도 거의 없는 10~20분까지의 단편이었고, 대게는 구석의 후미진 전용상영관에서나 보던게 전부였는데,이게 어느순간 35m 필름으로 촬영되고 또 그게 언더를 벗어나 주류 상영관에 버젓이 상영되고 기록적인 흥행을 하던 시기입니다.
사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황금기였죠. 그리고 그 시기를 열어젖힌 이가 바로 린다 러브레이스 입니다.
그녀의 남편에 의해 포르노의 길에 입문한 러브레이스.. 그녀를 마주한 제작자는 단번에 그녀의 '특별한 기술'을 눈치채고,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35m필름에 스토리를 갖춘 장편영화로 촬영하고, 그걸 또 주류상영관에 거는 모험을 단행하는데요.
제작자가 탄복한 그녀의 '특별한 기술'은 다름아닌 'Blow Job'(설명해야 하나요? ㅋㅋ) 이었고 그중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하드코어한 'Deep Throat'(입안에서 머무는 수준을 벗어나 말그대로 뿌리채 목구멍 깊숙히 집어 넣는)였습니다.
영화는 그 기술을 그대로 제목에 달앗고(Deep Throat), 영화는 공전의 흥행을 기록하며 포르노의 황금기의 태동을 알립니다.
그 때가 바로 1972년 이었는데, 이 해에는 러브레이스 못지않게 포르노역사의 환 획을 그은 또 한명의 전설이 탄생했습니다.
마치 동시기에 미분학을 창시한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관계처럼, 러브레이스와 그녀또한 역사의 비중에서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는데요
또 한명의 그녀는 바로 마릴린 챔버스(Marilyn Chambers)입니다
.

헐리웃 스타였던 시빌 셰퍼드를 닮앗다는 이유만으로 포르노에 캐스팅된 그녀는, 마침 그녀가 과거에 찍었던 사진이 대기업 P&G광고 사진으로 쓰이게 되면서 우연치않게 '연예인 포르노'의 효시가 되고 맙니다.
(제작자의 잔머리에 의해)P&G의 광고모델로 전미적 인지도를 갖춘시기에 개봉한 그녀의 첫 작품 'Behind The Green Door'는 '목구멍 깊숙이'를 넘어서는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단순 흥행을 넘어 칸느영화제에 초청받게 되었고, 그렇게 칸에 초대된 최초의 포르노가 되면서 작품성마저 인정받게 됩니다. 포르노 역사에 전례가 없는 큰 획을 그었죠
.역시 당대의 스타가 된 그녀는, 러브레이스와는 달리 이후에 몇편의 헐리웃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작가로서,, 뮤지션으로서도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게되지만 결국 2009년 50대 중반의 나이로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합니다.
여담이지만, 러브레이스를 포르노의 세계로 인도한 그녀의 남편 '척 트레이너'는 그녀와 이혼한 후 마릴린 챔버스와 재혼하게 됩니다. 인연 혹은 악연 이랄까요? 뭐 척 트레이너가 복 받은 넘일지도?
그렇게 린다 러브레이스와 마릴린 챔버스 두명의 대스타로 인해 촉발된 '포르노의 황금기'는 그 황금기를 이어줄거라 기대하던 또 한명의 스타로 인해 그 짧은 전성기의 막을 내리고 암흑기로 접어들게 되는데요.. 그 인물이 바로 '트레이시 로즈'(Traci Lords)입니다
8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진저 린'을 누르고 'Porn Queen'의 반열에 오른 그녀는, 포르노 역사상 가장 화려한 기술을 가진 여배우로 평가받는데요..
당시 배우들조차 꺼려했던 'Anal'은 물론 'Double Penetration'까지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등 과감한 테크닉으로 많은 팬덤을 확보하며 탄탄한 입지를 확보하게 됩니다.
당시 그녀의 새비디오가 출시되는 날은 지금의 아이폰 출시에서나 볼 수 있는 긴줄이 비디오샵 앞에 늘어섰다고 하네요.
그렇게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던 그녀는 어느 날 경찰들에 의해 긴급 체포되고 마는데요.. 그 이유는 나이를 속였기 때문입니다.
트레이시 로즈가 포르노에 데뷔하던 나이가 법적 성년인 18세가 아닌 16세 였다는게 밝혀진거죠.
당연히 전미의 비디오 샵에서 그녀가 미성년때 찍은 포르노 작품은 모조리 수거되고 폐기되었습니다.
물론 민증 위조는 그녀 스스로 자행한 것이지만, 그녀가 법정 증언에서 '포르노 업자의 강요를 받아 위조하고 데뷔했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게 되면서 포르노 산업 전반에 거센 파장을 불러오게 됩니다.
수많은 포르노 업자들이 구속되었고, 맹비난에 시달리게 됐으며 급기야 포르노 산업이 올스톱되는 사태까지 맞이하게 됩니다. 트레이시 본인도 업계로부터 퇴출되고 청부살해 위협에 시달리게 되죠
결국 업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당대의 스타로 인해 포르노의 황금기는 그 짧은 전성기를 뒤로하고 암흑기로 접어들게 되었죠. 이 후 포르노 산업은 침체기를 서서히 벗어나며 다시금 활황기를 맞게 되지만, 주류 문화로부터 완전하게 배척당하며, 비주류의 음지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솔직히 제 자리를 찾은 거죠.
하지만 이후에도 자신의 화력한 이력을 앞세워 주류를 꿈꾸며 도전장을 던진 이들이 있었으니 그 대표적 인물이 '아시아 카레라'(Asia Carrera)입니다.
아마 포르노 역사상 가장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추측되는데요. 일본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그녀는 IQ155의 멘사회원이기도 하면서 어릴적 피아노 신동으로 불리우며 그 서기 힘들다는 '카네기 홀'에서 무려 두번이나 공연을 가진 경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약관의 나이로 대학강단에 서기까지. ㅎㄷㄷ
그 화려한 이력을 앞세워 틈나는대로 주류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곤 했는데요. 여성해방, 여권신장의 상징적 인물로 포장되기도 했습니다. 헐리웃 진출을 꿈꾸며 가끔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역시 주류 문화의 냉랭한 반응속에 결국 그녀 또한 꿈을 이루진 못했죠. 2003년 은퇴하고 이후 포르노 감독및 제작도 가끔 한걸로 알려졌습니다.
뭐 일단 여기까지 입니다. ㅎ 주로 포르노의 황금기(The Golden Age Of Porn)과 관련된 인물을 다뤄봤는데요.나이가 어느정도 있고 추억의 만화방 상영관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떠오르는 인물도 몇몇 있으실 겁니다.
아마 여기 거론된 인물들은 미국 포르노및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그리고 드라마틱한 삶등을 고려할 때 아마 나중에 영화로 다뤄지지 않을까? 추측.. 혹은 기대 하고 있구요.. 이외에도 포르노의 황금기를 수놓은 굵직한 스타들도 많습니다. 세카, 줄리엣 앤더슨, 케이 파커, 진저 린, 앰버 린등... 언젠가 시간이 난다면 이들에 대해서도 썰을 한번 풀어봤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셨으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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뽐뿌에 올렸던 글인데, 클리앙에도 퍼와 봅니다. 시간날 때 심심풀이로 읽어 보시길..ㅎ
역사공부좀 해야겠어요...
from CLIEN+
트레시 고딩때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ㅋ 제가 클래식을 좋아하는건지도
택시걸에 나오는 낸시수터 여사를 보면서 사진모으기 취미도 했었는데, 쩝
주제를 벗어나서 글을 참 잘 쓰시는 분이시네요.
( 당시 BJ는 2차 대전 당시에 일본에 의해서 보편화(?)가 된 케이스 )
척 트레이너가 당시의 포르노계의 잡스처럼 혁명(?)이었다고 봅니다
.. 라고 들었어요..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