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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프레이저 보고서 원문 요약 8

1
2013-10-20 21:47:41 221.♡.110.31
성당기사단장

 

 아래 박정희 경제정책에 관한 프레이저 보고서 내용이 나와서 예전에 원문이 요약된 것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물론 링크에 원문이 있으므로 읽어보실 분들은 읽으셔도 좋습니다만 동영상 내용과 프레이저 보고서 내용은 생각보다 많이 다릅니다.

 

 

이승만의 몰락(17 페이지)

장면정부는 미국의 경제자문관들과 함께 장기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지만 쿠데타로 인해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으로 병합되었다고 보고서는 기술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언급되지만 제1차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장면정부의 계획이 기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레이저 소위는 장면정부 아래서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어 통일논의와 논쟁이 본격화되자 군부 일각에서는 이를 북한이 남한의 약점으로 인지할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하였으나 미국이 감지한 북한의 특이동향은 없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군부쿠데타(18페이지)

미국 정보당국은 박정희가 이끄는 군부의 쿠데타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장면정부에 알려줬으나 치안공백도 없는 상황으로 장면은 쿠데타가 현실성이 없고 단지 뜬소문이라고 무시했다고 합니다.
쿠데타 발발 후 미국대사관은 본국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즉각적인 쿠데타 반대 성명을 냈으며 이는 미국이 쿠데타 주역들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박정희의 공산주의 전력이 이런 불신을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대사관에서는 장면정부가 이승만정부에 비해 올바른 방향을 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면정부가 보다 민주적이고 미대사관이 보기에 현실적인 방향으로 경제, 국방, 외교정책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더나아가서 더 많은 국방비용을 분담에 동의한 점도 보고서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실 뒤에 기술하고 있지만 프레이저 소위는 어떻게 하면 한국이 좀 알아서 돌아가는 나라가 되어 미국의 국방비와 식량원조 부담을 줄일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행정부도(세부적으로는 부서별로 온도차이가 있지만) 이런 정책목적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미대사관의 장면정부에 대한 지원은 어떻게 보면 장면정부를 비록 체질이 허약하지만 미국과의 소통도 좋고 사실 고분고분한 전형적인(?) 친미정권으로 인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결국 강력한 친미군사정부가 나서자 미대사관의 핵심그룹은 방향을 선회하게 됩니다.

군사정권과 미국과의 관계(20-22페이지)

박정희는 쿠데타 성공 후 미국의 지지를 열망하지만 초기에는 오히려 미국 주요인사의 반대성명만 얻습니다.
하여간 소위는 쿠데타 과정에 CIA가 개입했는지 조사하는데 CIA는 장면정부를 더 선호했다는 증언외의 개입단서는 못 찾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쿠데타 성공 후, 최고위원회가 부패 사범으로 민간인 17,000명 장교 2,000명(장군 40명)을 구금하는데 미국이 대부분이 친미인사였던 장군들은 풀어주도록 개입했다는 점입니다. 풀려난 군 장성들 대부분은 미국방부의 비용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으며 상당수는 그후로도 미국에 남았다고 합니다.
한국국민의 즉각적 반응은 우선 방송미디어가 통제되고 있어서 알아내기가 힘들었으나 첫 1주후 미대사관의 보고에 따르면 한국국민은 쿠데타에 대해 무관심(apathy)하거나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passive acceptance)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한달후 보고에서는 농촌지역은 지지하는 분위기였으나 도시지역은 의심과 우려(doubt and apprehension)의 분위기였답니다.
 

당시 한국 재정의 50%와 국방비의 70%이상이 미국원조였기에 쿠데타 세력은 미국관계 회복을 최우선으로 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새대사로 사무엘 버거가 임명되면서 미국은 버거 대사를 통해 원조의 조건으로 박정희에게 권력의 민간이양, 경제개혁조치 등의 압력을 넣습니다.
민간이양 약속 등을 통해 미국의 추인을 받은 박정희는 장면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을 밑바탕으로 1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립합니다.

중앙정보부 창립 및 민주공화당의 기원(22-24페이지)

중앙정보부 창립 후 주요 임무중에는 LA 한인사회의 지지를 얻는 것이 있었네요. 그리고 쿠데타 당시 미국주재 무관이며 CIA와 밀접했던 이후락을 부패혐의로 일시 감금하면서 이후락과 미국과의 친밀도를 시험한 이야기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쿠데타세력이 반부패를 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62년 2월까지 미대사관은 김종필의 중정이 개입된 여러가지 부패사건 정보를 듣게됩니다. 워커힐 건립, 일본으로부터 자동차 수입, 주식시장조작 건들입니다.
박정희가 민정이양 약속을 저버리고 63년 3월 군정4년연장을 시도하자 미국은 원조를 중단(케네디 대통령이 직접 반대했군요)하면서 압력을 행사합니다.
결국 63년 10월 15일 대통령선거가 진행되었으며 이 선거에서 박정희는 46.7%와 윤보선은 45.1%를 각각 득표했습니다. 보고서는 이 선거가 일반적으로 볼때 공정했다고 보고 있습니다.(The election was generally considered to have been fair)
그후 11월 26일의 총선에서는 민주공화당이 175석중 110석을 얻었고 야당은 11개 정당으로 난립한 상황이었답니다. 이는 민주공화당의 인적, 재정적 우월함과 선거제도의 유리함이 승인으로 보고서는 보고 있습니다.

1963-67 박정희 대통령 1기(25-28페이지)

미국이 원조감축의 대안으로 일본을 고려하고 있었기에 지속적으로 대일국교정상화 압력을 넣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1차경제개발계획이 당초 7.1% 성장을 넘어서는 8%를 달성하고 1인당 GNP도 96달러에서 131달러로 늘어나자 민심을 얻었다고 합니다. 당시 경제성장(1차경제개발)에는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였으
며 특히 박정희 정부와 미대사관 및 대외원조창구인 AID(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의 협력이 주효하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선호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원조제공을 지렛대로 삼았다고 합니다.
 

당시 정책변화의 주요 방향은 AID 원조의 단계적 감축과 무상공여에서 차관으로의 성격변화였습니다.
2차경제개발계획은 1966년 여름에 공포되었으며 정치적 반대자까지 환영하는 수용하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67년 대선을 준비하면서 김종필과 김성곤이 공화당을 대표하여 미국기업으로부터 돈을 갈취하였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Gulf Oil Corp.으로부터 1967년 백만달러, 71년에 3백만달러를 받았다고 합니다.
1967년 대선은 박정희가 51.4%를 얻어 41%의 윤보선을 앞섰으며 소위는 67년 선거를 비록 인적자원과 재정적으로 월등한 위치였지만 63년 선거처럼 일반적으로 공정한 선거로 평하고 있습니다.
다만 6월에 이어진 총선은 매우 부정했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1967-71 박정희 대통령 2기(29-30페이지)

1967년까지 박정희 정권은 견조한 경제개발정책을 수행하고 있는데, 급변하는 대내외 안보지형 변화로 인해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고 하네요. 파트 B의 나머지 부분은 다음기회에 마무리 하겠습니다.

Part C. IV. Economic relations

도입부(158 페이지)


프레이저 소위는 한국 정부에게 제공된 미국내 잉여농산물 원조프로그램(PL 480)의 의문스런 사용과 관련하여 기존 한미간 경제관계를 조사하게 되었음을 모두에 밝힙니다. 이는 잉여농산물 원조가 실제 과도하게 이루어졌으며 소위의 주요 관심사였던 박동선이 이 사업을 독점적으로 담당하면서 성장(미의회로비로 조사가 촉발됨)하였기에 더더욱 소위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부정사용 의혹에도 불구하고 소위는 한미간 경제관계는 이런 의혹을 뛰어넘는 중요성이 있다고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소위 경제관계 조사의 주된 대상은 한국 원조의 주요 창구였던 AID(예전에 이들 돈으로 만들어진 AID 아파트도 있었죠)와 미농무부, 국무부, 국방부임을 밝힙니다.
 

소위는 도입부에서 AID의 역할과 원조가 1960년대초에는 한국경제 운영에 핵심적이었으나 경제개발이 진행되면서 70년대 들어서는 자문역할이 주된 기능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소위는 잉여농산물 원조가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는 분명 부적절하게 집행되었다고 결론을 맺습니다. 한국 경제가 발전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원조가 필요하지 않았는데 닉슨정부의 섬유수입 제한조치(자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로 인한 한국 정부 무마수단, 미국방부의 한국 방위 분담에 따른 이해관계(원조가 다시 미국방부로 흘러가는 먹이사슬), 미의회 의원의 이권, 한국정부의 지속의지(저임금을 위한 농산물 가격 정책) 등의 요인으로 불필요(또는 필요이상 과도)하게 지속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소위는 미국의 군사원조가 사변후 60년대 초까지 한국 국방비의 2/3를 담당하였는데 이는 그후 한국의 경제개발로 인해 과도한 비율이었음에도 한국정부와 미국방부의 요구로 비율을 줄이지 못하고 원조프로그램을 왜곡시켰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미국 납세자의 돈이 불필요하게 원조로 사용되었음을 문제로 삼고 있습니다.


1945-1961 한국경제(159 페이지)

분단후 남한은 10% 정도의 산업화된 자산과 농업만으로 한반도 3/5 인구를 먹여살려야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비료공장은 북한에 있었고 일본과의 외교단절로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경제였다고 보고서는 기술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45-48년 사이에 5억달러를 원조했는데 90%가 의복, 연료, 비료, 식품에 사용되고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단지 10%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하여간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53-62년 사이에 미국은 매년 최소 2억달러 이상을 원조했으며, 57년이 피크였는데 3억7천만달러에 달했다고 합니다. 당시 원조의 목표는 하루속히 한국경제가 자생력을 갖도록 해서 원조를 줄여나가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한국전쟁 이후로 기본목표를 경제개발이 아닌 통일로 설정하면서 전후복구 이외의 경제개발에는 관심이 없고 광범위한 부패속에 오로지 더 많은 원조만 요구하여 AID의 rat hole(쥐구멍)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1961년 군사쿠데타 직전 시점을 보면 60년 수출액이 3천3백만달러로 1인당 GNP는 90달러에 불과했다고 보고서는 적고 있습니다.

1961-1963 한미경제관계(161 페이지)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한 후, 이승만의 통일 목표 보다 장기적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소위는 박정희의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장면정부의 계획을 가져다 썼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AID의 동의하에 수입대체전략이 아닌 노동집약적인 수출주도형 경제를 추구해야 경제적 성공을 얻을 수 있다고 결론을 냈다고 합니다.


프레이저 소위는 70년대 들어 수립된 3차/4차 경제개발계획(중화학공업 육성이 핵심)은 미국의 자문이 없었으며, AID의 공헌도 미약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The Korean Government formulated its Third and Fourth Five-Year Plans with virtually no U.S. advisory assistance, and the AID contribution to the implementation of these plans was minor, 181페이지)

결론적으로 프레이저 소위의 한미경제관계 분석은 동영상에서 나온 킬렌 AID 책임자가 63년 세제개혁에 압력을 넣은 것을 제외하고 한국의 경제개발계획(특히60년대말 이후)에 미국이 전적으로 주도했다는 언급은 찾아 보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원조, 자문, 교육 등을 통해 경제계획에 영향을 미쳤다는 총론적인 언급은 서론과 결론에 나오긴 합니다. 무엇보다 수출주도형 경제를 미국이 입안하고 박정희에게 이를 일방적으로 따르게 했다는 내용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오히려 161페이지에서 AID의 동의하에 박정희 정부가 이런 수출주도전략으로 결론을 냈다는 언급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경제의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는 중화학공업을 기반으로 한 재벌체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적 개입은 적어도 프레이저 보고서에서는 없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동영상에서도 포항종합제철소의 건설을 미국이 반대하였음을 언급은 하고 있습니다.

프레이저 소위의 한국경제 분석은 사실 미국 납세자의 돈을 이미 고속성장을 하고 있던 한국에 불필요하게 낭비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미국민의 세금을 탈탈 털어먹으려는 박정희 정권의 몰염치(?)와 미국 국방부의 방조가 한 몫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프레이저 보고서에서 본 한국경제의 성공은 한마디로 단호한 결의를 갖은 중앙정부의 리더쉽과 잘 교육받고 근면한 국민 때문이며 그래서 더 이상 원조할 필요가 없다라고 결론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A number of factors contributed to this remarkable achievement. Foremost were the Korean people themselves: Educated, industrious, disciplined; they were Korea's greatest natural resource. The Korean Government deserved credit for having placed a priority on economic growth and directing the economy with firm resolve. 205페이지)
================================================================= 

 즉 동영상이 언급하고 있는 건 프레이저 보고서 내용을 가지고 평가했기 보다는 다른 루트의 것들을 근거로 영상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반대파들도 제대로 원문을 안 읽어봤는지, 프레이저 보고서가 없다느니 어쩌고 하면서 부정하는 양상입니다. 그냥 지금 보안 해제된 문서인데도 이게 논란이 되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지요.

 

 오히려 박정희는 미국보다는 일본식의 관 중심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가져왔고, 겉으로는 성공적으로 보이지만 이때부터 한국의 경제정책은 안에서부터 곪기 시작한거죠. 민주적인 국가에서 저런 말도 안되는 국가 중심의 탄압과 몰아주기 식 정책은 불가능했을테니까요. 결국 이제 일부 터진게 imf사태였지요.

성당기사단장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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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8]
withsword
IP 115.♡.110.103
10-20 2013-10-20 21:50:03 / 수정일: 2017-04-30 12:12:58
·
솔직히 주기적으로 프레이저 보고서 영상이라며 올리시는 분들 있는데

이젠 그냥 반박하기도 귀찮아서 지켜봅니다.

그 동영상 내용대로라면 미국짱짱맨 ^^ 이라

박정희 옹호가 아니라 동영상 자체에 대한 비판인데

그걸 박정희 쉴드로 받아드리시는 분들이 많아서 토론이 어렵더라구요
성당기사단장
IP 221.♡.110.31
10-20 2013-10-20 21:58:07 / 수정일: 2017-04-30 12:12:59
·
사실 박정희 경제정책 부분은 저런 보고서 말고 그냥 통계자료들 가지고도 반박할 수 있는데, 음모론적인 시각인 것도 있구요.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왜 저런 제목을 붙였을까 의아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루트의 자료라면 그 부분을 썼으면 됐을 것 같은데, 거의 인용안한 보고서가 대표적으로 나오고 있으니;;;
withsword
IP 115.♡.110.103
10-20 2013-10-20 22:02:47 / 수정일: 2017-04-30 12:12:59
·
그냥 아무생각없이 보는사람들한텐

미국이 먹히거든요. 통계수치 이런거나 경제 어쩌고보다는

증거를 중시하는 클리앙에서도 미국에서도 인정했어요

어쩌구저쩌구로 이야기 시작하는분들이

보이는데, 하물며 일반네티즌이야
Dngul
IP 125.♡.154.150
10-20 2013-10-20 21:54:11 / 수정일: 2017-04-30 12:12:58
·
이성적이지 못한 의견은 반대파에게 논박의 빌미를 줄 뿐이죠.. 그게 안타까워요. *
성당기사단장
IP 221.♡.110.31
10-20 2013-10-20 21:55:45 / 수정일: 2017-04-30 12:12:59
·
이게 상대방이 궤변을 늘어놓는다고 자신도 궤변을 해선 안된다고 보거든요. 그 영상 덕분에 나머지 친일파에 대한 것도 가짜다!라고 헛소리 하는 인원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ung0325
IP 182.♡.246.14
10-20 2013-10-20 21:55:29 / 수정일: 2017-04-30 12:12:59
·
동영상 말도 더빙...
Santacroce
IP 122.♡.206.43
10-20 2013-10-20 22:05:12 / 수정일: 2017-04-30 12:12:59
·
제가 작성한 글이 인기가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긴 한데 그래도 출처표시가 전혀 없이 이렇게 보니 약간 낯서네요.
게다가 마지막의 "즉 동영상이 ~~ imf사태였지요."는 제가 쓴 것이 아니라서 원문이 변형되는 문제도 있네요.
인용부분과 본인의 의견을 구분해서 수정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당기사단장
IP 221.♡.110.31
10-20 2013-10-20 22:13:01 / 수정일: 2017-04-30 12:12:59
·
아까 글 링크 올렸었는데, 그냥 링크가 이상하게 들어가면 깨져서 다시 링크를 바꾸려고 재부팅했네요. 죄송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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