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1875~1955)
- 1차세계대전부터 명성을 떨친 베테랑. 1940년 5월 서부전선 대공세 당시 아르덴느 돌파를 주도한 A집단군의 사령관으로서 영국,프랑스,벨기에 연합군을 패닉상태로 몰아넣어 붕괴시키고 아라스 전투에서 승전을 거두어 프랑스 점령까지의 독일군 진격을 총지휘했습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저지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그해 12월 아르덴느 대공세를 지휘해 미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1945년 3월 서부전선 총사령관에서 해임되었고 전후 조용히 은거하다 1955년 사망합니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1887~1973)
- 1940년 아르덴느숲을 돌파해 프랑스를 기습 침공하는 '낫질 작전'을 고안해낸 명장입니다. 1942년 6월 독일 제11군을 지휘해 크림반도의 소련군을 격퇴하고 세바스토폴과 케르치 반도를 점령했습니다. 그해 겨울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된 제6군의 구원작전을 맡아 크게 선전했으나 제6군이 구원군과의 합류 신호에 응하지 않아 철군했습니다. 43년 3월 하르코프 제3차 공방전에서 니콜라이 바투틴의 소련군을 격퇴했으며, 쿠르스크 전투에서는 남부전선을 맡아 소련 보로네슈 전선군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그러나 1943년 중반 이후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의 후퇴가 계속되자 히틀러에 의해 전격해임되고 재기용되지 못했습니다.
하인츠 구데리안(1888~1954)
- 전격전 개념을 도입하고 독일군의 기갑병과를 중흥시킨 주역으로서 1940~1942년 독일 기갑부대의 쾌속진격은 구데리안의 공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41년 10월 모스크바 진격을 맡아 분투했으나 소련군의 반격으로 진격이 지체되자 히틀러에 의해 해임당합니다. 1943년초 독일육군 기갑병과총감으로 재임용되었고 처음엔 쿠르스크 전투에 반대했으나 히틀러의 의지가 확고하자 일단 기계화부대를 재편성하여 소련군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1944년 7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독일육군의 참모총장을 맡았습니다.
헤르만 호트
- 1940년 5월 제16기갑군단장으로서 프랑스군 주력을 격퇴하고 아라스전투에서 영국군 전차부대를 섬멸해 큰 명성을 떨쳤습니다.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선의 남쪽에서 소련군 방어선을 돌파하고 프로호로프카 전투에서 이반 로트미스트로프의 제5기갑군에 큰 손실을 입혔습니다. 일선 장병들로부터 '파파'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습니다.
에르빈 요한네스 오이겐 롬멜
-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29세에 중령으로 진급하고 연대장을 맡은 요아힘 파이퍼
100여명의 미군포로와 4천명의 소련군포로를 학살한 전범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