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신 분들을 위한 두괄식 2줄 요약>
1. 앵글로 색슨족 신문기자가 로마 후예들의 다채로운 '전장 먹거리'를 접하고 어안이 벙벙.
2. '먹고 마시기 대장' 이탈리아인들의 식도락 열정은 전쟁도 못 말려요.
얼마 전 영국 요리 글을 올렸습니다만 http://goo.gl/T9RSD
이번에는 정반대의 얘길 해볼까 합니다.
영국 종군기자가 직접 본 이탈리아군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의 독특한 행태에 대한 얘기들이 유머 게시물류로 만들어져 인터넷에 올라오곤 합니다.
일본쪽으로 짐작되는 출처미상의 야담성 가십들을 모아놓은 글의 진위여부를 놓고 지나친 과장과 비하가 섞여있다
는 반론과 함께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하는데요. 그중에는 최전선에서 파스타를 데쳐 먹고, 포로에게 와인을 곁들인
푸짐한 풀코스 식사를 대접했다는 등의 얘기들이 실려있습지요.
그래서 제가 이탈리아군을 직접 지켜봤던 영국 기자의 종군기에서 먹거리 내용을 찾아 발췌해봤습니다.
출처는 데일리 익스프레스 소속으로 대전 당시 가장 유명했던 종군기자들중 한 사람인 앨런 무어헤드 (Alan
Moorhead)의 저서 "아프리카 3부작(African Trilogy)"입니다.
무어헤드와 그의 종군기 아프리카 3부작
취재배경
북아프리카 전역 초기에 이탈리아군을 사실상 붕괴 위기로 몰아넣었던 영국의 "나침반 작전 (Operation
Compass 1940.12)"의 개시 첫날, 선봉을 맡은 英 기갑부대는 첫 공격 목표인 이탈리아군의 최전방 캠프인
니베이와(Nibeiwa)를 급습합니다.
아침 7시 포병의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제7 왕실 기갑연대의 마틸다 보병전차들이 보병의 엄호를 받으며 캠프로
돌격해 들어가지요. 아침 식사를 하다가 적의 전차와 조우한 이탈리아군은 우왕좌왕 하며 소총과 기관총으로
맞섭니다. 그러나, 변변한 대전차 무기도 없고, 심지어 캠프 내에 있던 수십대의 피아트 경전차로도 영국
전차에게대적상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캠프에 주둔중이던 기계화 부대 지휘관 말레티 소장은 잠옷 바람으로 기관단총을 들고 뛰어나오다가 전사했고
두어시간 가량의 짧고 격렬했던 전투가 끝난 후 2,000여명의 이탈리아군 전원은 백기를 들고 투항합니다.
이탈리아군의 막사 안을 들여다봤더니...
선봉 부대를 뒤따라온 기자는 캠프 안을 둘러보고 놀라운 광경을 목격합니다.
..."모래바람 속을 걸어 이 막사에서 저 막사로 가 보고 지하통로를 따라 이 참호에서 저 참호로
가 보았다. 가는 곳마다 놀라운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장교들의 침대는 깨끗한 시트로 덮여 있었고, 서랍장에는 린네르 내복과 온갖 고급 의류가
가득 들어 있었다. 옷장 안에는 황금색 장식끈이 달리고 사열식에서 뽐낼 훈장과 기장이 잔뜩
달린 정복과 화려한 박차를 붙인 승마용 장화가 잘 닦여져 있었고, 큼직한 장식 술이 달린
연한 푸른색 허리띠와 예장대, 그리고 화려한 모자들이 있었다.
인도 병사 하나가 은박, 금박장식을 넣은 예장대 하나를 걸치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파시스트들이
사열식에서 어깨에 걸치는 요란스레 반짝이는 물건이다. 발목까지 감싸주는 푸른색 커다란
기병 외투들도 있었고, 장교 막사의 화장대에는 온갖 향수와 은장식 손잡이가 달린 솔, 그리고
이탈리아 북부의 병기창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권총들이 널려 있었다."....
뭔가 범상치 않은 이탈리아인들의 요리관(觀)
앨런 무어헤드는 이탈리아군이 남겨놨던 진수성찬을 맛보는데요. 그는 사막 한가운데의 최전방 요새에서
이태리 전역의 명산지에서 온 다양한 종류의 식자재와 와인들, 심지어 광천수까지 떠다 먹으며 식후에는
에스프레소를 한 잔씩 끓여 마시는, '어떤 상황에서도 끼니만큼은 제대로 해먹겠고 말겠다는 이탈리아인들의
요리에 대한 남다른 집착'을 목격하고 이때 체험했던 경이로움을 종군기에 자세히 기록합니다.
..."우리는 탁 트인 모래밭에 앉아 노획한 식량으로 식사를 했다. 체리와 녹색자두의 병조림이
있었고 냉장 햄과 앤초비가 담긴 훌륭한 통조림이 있었으며, 사막에서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오븐에서 갓 구워낸 빵까지 있었다.
프라스카티(Frascati), 팔레르노(Falerno)와 키앙티(Chianti)에서 온 적백색 와인들이 있었고,
나폴리 위의 베수비오 산 기슭에서 온 라크리마 크리스티(Lacryma Christi)가 있었다. 달고
독하면서도 과일 향이 강한 브랜디가 든 나무통들, 그리고 그 밖의 각종 리큐르들이 담긴 짚으로
꼼꼼하게 잘 포장된 단지들이 있었다. 물은 이탈리아에서 최고로 치는 레코아로 광천수(Recoaro
minerals)가 병에 담겨 있었다.
이 모든 물건들이 다른 보급품들과 함께 수백 개의 상자에 담겨 배로, 자동차로, 그리고 당나귀
등에 실려 수천 마일의 바다와 사막을 건너서 여기까지 수송된 것이다.
전쟁 이전 이탈리아 식품점의 익숙했던 모습을 보듯이 스파게티는 길쭉한 파란 종이박스에 포장되어
있었고, 엄청난 양의 마카로니와 밀 제품들이 포대에 담겨 보관되어 있었다. 30cm 두께의, 손수레
바퀴만한 크기의 파르메산(Parmesan) 치즈들이 잘 정리되어 한 켠에 차곡이 쌓여 있었으며
이탈리아 요리에서 감초와 같은 존재인 에스트라토 뽀모도로 (Estratto di Pomodoro)가 10파운드
(4.5)kg가 넘어 보이는 큼직한 캔에 담겨 다른 식료품 캔들과 함께 벌크로 쌓여있었다.
파르메산(파마산) 치즈와 라크리마 크리스티
온갖 종류의 채소들이 있었다. 감자, 양파, 당근, 콩, 양배추, 부추, 호박 등 갖가지 채소들이
증기로 데쳐서 건조, 압축되어 있었다. 이들 채소들을 끓는 물에 넣으면 본래의 모습을 찾아서
사막의 성찬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험 삼아 외견상 말린 풀처럼 보이는 야채 한 꾸러미를
꺼내 스토브 위에 올려놓았고 이내 풍성한 미네스트로니(minestrone)를 맛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 완패한 패자가 밤새 먼 거리를 한숨도 못 자고 행군으로 달려와 허기와 피로에
지쳐있는 승자에게 와인과 별미들을 꺼내서 권하는 모습을 서술하는 대목에서는 어딘가 모를 상대적인
박탈감(?)과 아이러니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노획물로 푸짐한 식사를 마친 영국군들은 '이탈리아는 일개 상병이 우리 오코너 장군 (당시 야전 총휘관인
영국군 8군단장) 보다 호사스러운 식사를 하고 있다'고 한탄을 했다고 하지요.
한편 앨런 무어헤드는 이탈리아군을 자국군과 비교하며 매섭게 질타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이탈리아군 캠프가 왜 무참하게 유린되고 박살났는지를 설명해주는
이유라고 해야할 것이다. 말레티의 기갑부대는 동물원의 길들여진 늙은 사자와 같은 존재였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일부는 적군과 맞서 싸울 용기를 가지고 있었긴 하지만, 그들은 야전에서
가당치도 않은 삶을 누리고 있었다.
캠프로 진입했던 영국군들은 이탈리아군 병사들이 식사를 끝마칠 때마다 에스프레소를 끓여
음미할 수 있게끔 각자 자기만의 자그마한 모카포트(coffee percolator)들을 개별소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전쟁에 참전한 우리 영국은 장군들조차도 수 주일이나 단 몇 달만이라도 이탈리아 장병들과
같은 삶을 누리고 있지 않다. 영국군 막사에는 침대시트나 사열식용 정복이나 향수 따위 같은 것은
없다. 장군들도 국방색 반바지를 입고 국방색 양말을 신으며, 아침은 베이컨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점식과 저녁으로는 소금으로 절인 쇠고기를 끓인 스튜와 과일 통조림을 먹는다.
영국군 장군의 사치품이라고 한다면 라디오와 담배, 뜨거운 물을 탄 위스키 정도가 고작일뿐이다.
...(중략)
<앨런 무어헤드의 아프리카 종군기 3부작중
1부작 '지중해 전선' (Mediterranean Front 1941)에서>"
이렇듯 '사막 식도락'을 즐기던 15만명의 이탈리아군은 3만명이 넘는 파죽지세의 영국군에게
두 달이 넘게 쫓겨 다니면서, 싸움이 붙었다 싶으면 萬 단위의 포로를 내면서 말 그대로 녹아
내리는 신세가 되버립니다. (작전 10주 경과 후, 이탈리아군 포로는 도합 13만명!)
나침반 작전 중에 생포된 엄청난 수의 이탈리아군 포로들
: 대전 초기에 생포되서 영국 본토의 포로 수용소로 후송된 이들은 남은 4년의 시간 동안 삼시 세끼
영국 요리를 먹게 되는데~ (농담입니다. 취사는 포로들이 직접 해먹었다고 하는군요. ^^;)
결국 롬멜 장군이 이탈리아의 구원투수가 되어 아프리카로 긴급출동 하지요. :)
그 다음의 얘기들은 익히 다 알고 계신 전설이자 역사인지라 여기서 이만 접습니다.
킥킥대며 긁적이다 보니 글이 대책없이 길어졌네요.
시국 탓인지 분위기가 무거운 것 같아 요리와 전쟁 양쪽을 아우르는 글을 한 번 써봤습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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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이탈리아에서 직송된 이 별미들은 트럭에 실려 북아프리카 전선 각지의
지치고, 허기진 英 연방군들을 위문하는데 아주 요긴하게 쓰여졌다고 합니다.
덧주)
1. 와인쪽은 제가 문외한인지라 조예 깊으신 분들의 지도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2. 레코아로(Recoaro)
:이탈리아 북부 비첸차에 있는 일찌기 독일의 니체도 풍광의 아름다움을 격찬했던
유서 깊은 온천 명승지 '레코아로 테르메(Recoaro Terme)'에서 생산되는 광천수.
레코아로 온천과 지금도 생산중인 '아쿠아 레코아로(Acqua Recoaro)'
3. 미네스트로니(minestrone)
: 양파, 콩, 마늘, 토마토를 비롯한 각종 채소들과 올리브유, 파르메산 치즈, 파스타를
넣어 함께 끓여낸 이탈리아의 전통수프
4. 에스트라토 뽀모도로(Estratto di Pomodoro)
(이건 저도 궁금해서 구글링으로 찾아 번역해봤습니다.이렇게 만든다는군요.)
:시실리섬의 전통방식으로 만든 토마토 페이스트. 잘 익은 토마토를 따서 손으로 살짝 짓이겨
과즙이 천천히 흘러나오는 상태에서 햇볕에 말린다. 일몰 때 들여왔다가 다음 날 다시 햇볕에
내놓고 말린다. 사나흘간 손으로 토마토를 으깨고 휘저어가며 시실리섬의 맑은 햇볕에 말리는
과정을 되풀이 반복. 이윽고 볕에 익어서 걸쭉해진 토마토를 항아리나 병에 손으로 모아 담아
저장한다.
이렇게 천연자연 방식으로 만들어진 페이스트는 진한 버건디 와인 빛을 띄며, 햇살에 풍미가
짙어지고 그윽해진다.
5. 모카포트
비알레띠 '모카 익스프레스'의 초기 광고와 최근 모델인 '브리카'.
국가 기간산업 현대화를 추진하던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은 알루미늄을 중시했었다는데요.
1930년대에 비알레띠가 만든 저렴한 알루미늄 에스프레소 포트는 '주방의 현대화'를 상징하면서
값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기 힘들었던 일반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훗날 90%의
가정 보급율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막의 최전방에서도 절찬리에 애용되고 있을줄이야 !!!~ㅎ
저도 요즘 이태리제 모카포트를 매일 저녁 애용중입니다.
....이탈리아 만세!! (Viva l'Italia) ^^;
(당시 이탈리아의 장교용 키친세트보면 정말 말이 안나오죠..
그거 한세트만 가지면 지금도 캠핑장에서 제대로 파티를 할수있는지경..)
일반 병사들은 다른나라랑 똑같은 수준의 전투식량만 먹었다고 하더군요...
-흔히 알려진 사막 한가운데서 파스타를 해먹었다는 소리등등은 다 뻥이라고...-
전차에도 전열포트 설치해놓은 영국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