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어디까지 재창조 가능한가 - 1
일본의 역사 판타지 게임을 접하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왕》이나 《귀무자》 같은 게임에서는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전국시대의 무장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역사적 영웅이 괴물로 변하거나 주인공의 적이 되기도 한다. 《전국 바사라》에 이르면 실존 인물들은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지닌 화려한 캐릭터로 재탄생한다. 역사적 사실은 이야기의 출발점일 뿐, 그 이후의 전개는 창작자의 상상력에 맡겨진다.
이런 작품을 접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한국에서는 왜 이와 비슷한 게임을 찾아보기 어려울까. 이순신이나 척준경이 초인적인 무력을 발휘하고, 홍길동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요괴화된 탐관오리를 징벌하는 게임이 나와도 재미있을 것이다. 실제 역사와 설화, 판타지를 결합할 만한 소재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게임에서는 이런 시도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이를 단순히 한국 사회가 역사적 인물의 재해석에 보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한국과 일본의 게임 산업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콘솔 게임을 중심으로 역사 액션과 전략 게임이 오랫동안 제작되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PC방 문화와 온라인 게임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MMORPG가 산업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리니지》로 대표되는 온라인 게임의 성공은 개발사들이 지속적인 운영과 이용자 간 경쟁을 중심으로 사업을 구성하도록 만들었다. 한국에서 《귀무자》와 같은 게임이 드물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인들이 역사 판타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게임 밖으로 시선을 돌려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역사 드라마는 오랫동안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용의 눈물》이나 《허준》, 《대장금》 같은 작품은 상당한 극적 각색을 가하면서도 역사적 시대와 인물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극의 모습도 달라졌다. 《다모》와 《성균관 스캔들》, 《해를 품은 달》 같은 작품에서는 실제 역사에 대한 충실성보다 인물의 관계와 허구적 사건, 새로운 장르적 재미가 중요해졌다. 물론 퓨전 사극이라고 해서 모두 가상의 왕조를 배경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대가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변화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 분야가 웹소설이다. 한국의 대체 역사 웹소설에서는 현대인이 과거로 이동하거나 역사적 인물에게 빙의하고,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전쟁의 결과와 국가의 운명을 바꾼다. 조선이 산업화를 앞당기거나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이제는 결코 낯설지 않다.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과감하게 바꾸는가가 오히려 작품의 매력이 되는 장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특징이 나타난다. 역사적 사건과 결과는 자유롭게 바꾸면서도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존의 도덕적 평가는 쉽게 뒤집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종과 이순신처럼 존경받는 인물은 대체로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작품의 주인공 역시 그들의 업적을 돕거나 더 큰 성공을 이루도록 이끄는 경우가 많다.
세종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체 역사 웹소설 9편을 분석한 한 연구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생각하게 만드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분석 대상 작품들은 세조의 즉위를 막는 방향으로 역사를 바꾸면서 세종의 정치적 유산과 정통성을 지닌 왕위 계승을 지키려 한다. 실제 역사에서 일어난 비극을 허구 속에서 바로잡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작품들이 그 역사를 평가하는 도덕적 기준에서는 비슷한 방향을 선택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9편의 작품만으로 한국의 모든 대체 역사물이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장르적 관습이나 독자층의 취향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사례는 대체 역사가 반드시 기존의 역사관까지 뒤집는 장르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역사적 사실을 바꾸는 것과 그 사실에 대한 가치판단을 바꾸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중국에서도 발견된다. 중국의 무협 소설은 오래전부터 실제 역사와 허구를 자유롭게 결합해 왔다. 김용의 《사조영웅전》에는 칭기즈 칸과 몽골 제국의 역사가 등장하고, 《의천도룡기》에서는 원나라 말기의 혼란과 명나라 건국이 중요한 배경이 된다. 곽정과 장무기 같은 허구의 인물들이 실제 역사 속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작품의 세계를 지탱하면서도 그 안에서는 무공과 비전, 기상천외한 모험이 펼쳐진다.
선협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도교와 불교, 중국의 신화와 민간 신앙에서 소재를 가져오지만 특정 왕조나 역사적 사건에 얽매이지 않는다. 신선과 요괴, 천계와 인간계가 존재하는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고, 수련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펼친다. 중국의 역사 판타지가 반드시 실제 역사를 재창조하는 방식으로만 발전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반면 중국의 대체 역사 웹소설에서는 한국과 유사한 소망 충족의 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소재가 촉한의 천하 통일이다. 실제 역사에서 제갈량의 북벌은 실패했고 촉한은 위나라에 멸망했지만, 가상의 역사에서는 유비와 제갈량이 끝내 한실 부흥의 뜻을 이루거나 유선이 새로운 능력을 발휘해 나라를 구한다. 《삼국지》의 역사적 결과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실패한 영웅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경험이 된다.
한국의 대체 역사물에서 세조의 즉위를 막는 것과 중국의 삼국지 대체 역사물에서 촉한을 승리시키는 것은 서로 다른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그러나 두 이야기에는 공통된 정서가 있다. 독자가 안타깝게 여기는 역사를 바꾸고, 응원하는 인물에게 실제 역사에서는 얻지 못한 결말을 선물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중국 독자가 촉한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조조와 위나라를 선호하는 독자도 있으며, 촉한의 정통성 자체도 역사적으로 논쟁의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역사관이 보편적이라는 주장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역사적 평가가 새로운 이야기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역사 판타지 게임과 한국의 대체 역사 웹소설, 중국의 무협과 선협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역사와 허구를 결합해 왔다. 실존 인물을 초인적인 존재로 만들거나, 허구의 영웅을 실제 역사 속에 등장시키고, 이미 일어난 사건의 결과를 뒤집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를 자유롭게 재창조하는 일이 반드시 기존의 역사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대체 역사를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역사만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되었어야 한다고 믿는 역사이기도 하다. 역사의 결과를 바꾸면서도 그 역사를 바라보는 도덕적 판단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결국 역사 판타지는 과거를 자유롭게 바꾸는 장르인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꾸고 싶어 하는지를 보면, 우리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만이 아니라 어떤 과거를 정의롭다고 믿는지 확실히 드러난다.
=========================================================================================
요즘 친구가 귀무자 신작을 열심히 플레이하는 걸 화면 공유로 보다가 문득 든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2부도 기대해 주세요! ㅎㅎ
선협에 등장하는 불교는 최소 못된 무리 거나 그에 준하는 정도로 나오고, 극히 일부만 긍정적으로 나오고, 심지어 부처는 주인공과의 대척점에 있는 중간 보스나 끝판왕 급으로 종종 나옵니다.
또한 하나의 중국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화이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설정이 많습니다.
능력도 부족했었죠.
그리고 게임의 기반이 될 만한 만화시장도 일본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작았으니까요.
그나마 상품화 가능했던 콘텐츠가 바람의 나라 정도였고
그래서 pc통신시절 mmorpg로 나름 성공할 수 있었었죠.
우리나라도 이제 자연스럽게 그렇게 가지 않을까 싶고...지금 좋은 흐름이 오래가서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만이 아닌 문화콘텐츠로 풍부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