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만년 떡밥인데요
요약하면 세종의 총애로 면천하고 측우기,자격루 등 숱한 과학적 업적을 이룬
장영실이 난이도 하의 임금가마 개량하다 가마가 망가져 장형 80대에 삭탈관직된 후
역사기록 일체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건입니다.
황희 정승의 경우에서처럼,
흠이 있어도 한번 신뢰하는 사람은 끝까지 믿고 쓰며 신분차별없이 인정이 많은
세종 자신의 스타일과도 맞지않아 , 도대체 무슨일로 흔적도 없이 '제거'되었는지
진짜 궁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몇가지 알려진 세간의 추론에 따르면
1. 천문관측은 중국외 나라에서는 금기시되어왔는데 이 금기를 조선이 깨어 명나라와 조정중신들의 압박이 있었고 이에 굴복하며 장영실을 그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설.
2. 신분차별이 유독심했던 조선 전기에서 노비출신 장영실이 더이상 크는 것을 막기위한 기득권세력의 모략에 희생되었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위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정황으로, 실제 장영실 실종이후 그가 만든 여러 과학 기물들이 방치 및 폐기 되기 시작했으며 장영실 필적할 과학기술관료가 조선말(까지 끝내 등장하지 않은 점.
장영실 실종 이듬해 (1443) 훈민정음 반포될때에 조정중신들이 일제히 신분제 위협한다며 반대하며 상소가 빗발쳤던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리를 말씀드리면,
장영실 실종사건은 앞에서 언급한 이듬해의 '훈민정음반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훈민정음 반포는 중국중심 세계관에 대한 도전이자, 당시의 엄격한 신분제를 흔들 수 있는 메가톤급 의제라..
세종 자신도 반발이 두려워 오랫동안 '출시일'를 고민해왔을것으로 보이고
훈민정음과 그 내재된 위험성격이 비슷한 장영실을 반대자 측에 희생양으로 넘겨주고
훈민정음 반포에 따를 반발력을 미리 누그러뜨리는..
말하자면 탱크의 '반응장갑' 같은 역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편 실각한 장영실이 왕의 의도를 읽었다면
완벽하게 잊혀진 존재로 남은 생을 사는 삶을 선택했을 지도 모릅니다.
... 노령에 장형 80대나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