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0 KST - Politico - 전세계의 표준, 글로벌 정보지식망이라는 인터넷의 평판이 무색한 국가별 인터넷 장벽에 대해 폴리티코가 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14세 포르투칼 청소년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이제 부모님과 함께 리스본을 출발해 코펜하겐에 있는 외갓집으로 여름 휴가를 즐기기 위해 기차를 탈 겁니다. 물론 유레일(Eurail)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지만 기차를 타고 유럽 각국을 경유해 가는만큼 즐거움도 크답니다. 자 이제 기차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러분의 스마트폰을 꺼낼 차례입니다.
잠깐만요. 여러분의 부모님은 좀 엄격하신 편입니다. 여러분의 조국 포르투칼은 13~15세의 SNS 사용을 부모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평소 행실에 대해 부모님께서는 아직 완벽한 신뢰를 가지지 않는 듯 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음악이나 들어야죠. 하지만 잠시만 기다리세요. 스페인 국경까지 2시간 남았습니다. 스페인에서는 14세 이상은 부모동의 없이 SNS 계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조만간 그 연령상한은 16세로 높아질 예정이긴 합니다.) 자. 이제 스페인 국경을 통과했습니다. 이제 부모님 눈치볼필요 없이 인스타그램을 다운로드하고 바로 계정을 생성하여 마음껏 피드를 넘나듭시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입니다. 기차는 프랑스 마르세이유로 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로그아웃 해야 합니다. 프랑스는 15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SNS 사용 금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기분이 막 나빠질려는 찰나 트위치에서 알게된 프랑스 친구 한명이 어라? 이렇게 말하네요. "프랑스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방금 내렸어. 그 법은 무효야" 다시 즐거워질려고 합니다. 그러나 범 피할려다 호랑이 만난다고 프랑스의 디지털 규제기관 ARCOM은 인터넷 콘텐츠 규제에 대한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세이유에 도착 전까지는 추천 알고리즘에 다양한 뮤직비디오, 영화소개-스토리 축약 영상 등이 여러분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지만 프랑스에 도착해서는 추천 알고리즘에 일절 그런 영상이 뜨지 않습니다. ARCOM의 강력한 저작권 보호 정책때문입니다.
마르세이유의 저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기차를 탑니다. 이탈리아를 경유해 취히리로 갈겁니다. 밀라노에서 환승하는 동안 여러분이 걱정해야 하는 건 오직 18세 성인인증을 포르노 관련 영상을 접할때마다 거쳐야 하는 겁니다. 나머지 콘텐츠 제한은 없습니다. 한창 피가 끓고 호르몬이 왕성하고 호기심이 넘치는 여러분이지만 만약 들켰을 경우 부모님의 등짝 스매싱이 날아들 끔찍한 생각에 여러분은 운을 시험해 보지 않기로 재빨리 결심합니다.
스위스 국경을 넘자마자 여러분은 이상한 것을 하나 경험하게 됩니다. 보통은 웹사이트마다 브라우저에 새로운 쿠키를 저장하기 위해 팝업메뉴 - 모두 허용/ 모두 거부 - 이 뜹니다. 이는 유럽의 개인정보 보호 요건에 따른 것인데 스위스는 스위스 고유의 디지털 개인정보 보호 네트워크 도메인 정책상 쿠키 거부 버튼이 없습니다. 스위스는 EU의 디지털 규제 체계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산맥들을 넘어 독일국경을 넘어 프랑크푸르트로 향합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에서 보여지는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은 그닥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뒷면에는 엄청난 것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온라인 상의 혐오 발언에 대한 매우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거나 증오선동 발언을 게시하면 최대 징역 5년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규제는 추천 알고리즘에도 적용되며 애초에 인스타그램에 사진하나, 글한줄 올릴때에도 엄격한 검열 알고리즘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젠 독일에서 만나는 인터넷의 냄새조차(애초에 인터넷에 냄새라는 게 있다면) 다르게 여겨질 정도입니다.
이제 코펜하겐 역에 도착했습니다. 역 대합실에는 친척들이 마중나와 오래간만에 서로 끌어안고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준비를 합니다. 서로 수다떨고 웃고 즐기느라 스마트폰 꺼낼 생각도 하지 못하시겠죠. 다행히도 덴마크에는 15세 미만 아동의 SNS 사용을 제한하는 법이 국회에 상정되었으나 아직 통과되지는 못했습니다. 어라... 하지만 어쩝니까? 친척들과 여기저기 놀러다니며 사진, 동영상을 찍느라 여러분의 갤럭시 스마트폰 용량이 다 차갑니다. 급히 삼촌집에 있는 오래된 Windows 7 컴퓨터에서 OneDrive 클라우드에 일주일치 소중한 추억들을 업로드하려고 했을때 좌절에 빠집니다. 삼촌은 덴마크 국가공무원인데 덴마크 국가공무원은 개인자격으로라도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제품 사용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오직 리브레오피스만이 사용가능합니다. 여러분은 멘붕에 빠졌습니다.
여러분은 EU연합 시민으로서 방금 7개국 국경을 넘나들었습니다. EU시민인 덕분에 여권에 도장하나 찍지 않았지만 7개국을 다니면서 모든 곳에서 같은 화폐를 사용했고 유럽 통신회사들간의 강력한 로밍협정 덕에 스마트폰 통화시간, 데이터 사용량은 아무런 문제없이 적용되었으며 먹는 음식도 같은 식료품 위생규격에 의해 제조되었으며 모든 식료품이 동일한 표기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다만 인터넷에서는 이같은 간편함도, 통일된 규격도, 편리함도 없이 국가마다 서로 더 높이 쌓을려고 노력하는 장벽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국경을 초월하는 거대하고 편리한 상호연결성이라는 구호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1993년, 스위스에 본부를 둔 정부관 연구기관 유럽 원자핵 공동연구소 CERN은 자사의 네트워크를 글로벌 도메인으로 전환했습니다. 초라한 NEXT 컴퓨터에서 처음 호스팅되었지만 이는 핵심기술이 국경을 넘어 전세계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될 것임이 분명해졌습니다. AOL같은 다이얼업 전화접속 플랫폼이나 프랑스 미니텔과 같은 전용 하드웨어로 사용자를 가둬놓는 폐쇄형 플랫폼에 종말의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개방된 인터넷을 원했고 전세계인들은 빠르게 확장되는 네트워크를 탐색하기 위해 "웹 브라우저"를 더블클릭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기업이나 기관도 웹사이트의 개설, 구축, 접속, 삭제 등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유토피아적인 비전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세계 누구나 동일한 도구를 사용해 동일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별로 다른 전원 콘센트부터 의료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각기 달랐던 것들이 인터넷이라는 바다에서는 놀랄만큼 서로 유사했습니다. 이 세계는 브라우저, 소셜 네트워크, 앱, URL구조, 심지어 프로그래밍 언어까지 모든 것을 동일하게 공유했습니다. 1993년 CERN의 작은 시도가 이 모든 혁명의 작은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뒤 미 부통령 알 고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해 ITU 국제전기통신연합 총회 기조연설을 합니다. 알 고어는 컴퓨터, 네트워크같은 첨단 기술과는 인연도 없고 인터넷을 발명한 이도 아니었지만 호기롭게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하며 새시대를 예고했습니다.
"전세계 통신사업자여러분, 전세계 ITU 회원여러분에게 강조합니다. 이제 우리는 전 세계의 모든 공동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기술적 혁신과 경제적 수단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제 가족과 친구들이 시간과 거리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 알 고어 미합중국 부통령 / 1994년 부에노스아이레스 ITU 정기총회 기조연설 -
그러나 오늘날 글로벌 인터넷은 1993년 초기의 개방성만도 못한 파편화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 META는 미국 각 주 검찰총장과의 법적합의로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의 이용시간, 야간사용차단 13세~17세 사용자에게 부과하는 정책을 적용합니다. 멕시코 일부에선 16세 미만 사용자의 SNS 연령제한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연방선거에 AI 사용제한을, 인접한 아르헨티나에서는 국가 데이터 프라이버시 법으로 암호화폐기업,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활동을 옥죄고 있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 쿠바의 국가 네트워크 방화벽을 바라보며 "10년도 못가 자멸할 것"이라며 비웃던 자유네트워크 세력들은 오히려 오늘날 파편회되고 더 세밀하게 구분되어진 인터넷의 현실앞에서 당황해합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하는 국가일수록 프라이버시 보호, 미성년자 보호, 공공질서 선호, 가짜 뉴스 처벌의 목소리가 높으며 기술 기업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세계인이 적어도 일부는 인터넷에 접근하는 권리와 능력 자체를 제한받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초기, 이상주의자들은 인터넷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독재정부일 거라고 여겼습니다. 트래픽을 통제하고 콘텐츠에 검열을 가해 체제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럽게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 방화벽 구축에 클린턴 대통령은 이렇게 비웃었습니다.
"중국은 부단히도 인터넷을 통제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어디 한번 잘해보세요(Good Luck)."
- 빌 클린턴 -
그러나 중국의 만리장성 방화벽이 자유로운 온라인을 탄압하는 것만큼이나 전세계 국가들은 한술 더떠 규제의 칼날을 휘둘렀습니다. 공공질서수호, 미성년자/약자계층 보호, 증오범죄예방이라는 수많은 명제로 사이트를 차단하고 트래픽을 제한하며 콘텐츠의 접근과 공유를 막았습니다. 싱가포르는 방송법을 개정했으며 독일은 인종증오범죄 예방차원에서 신나치 사이트 폐쇄 및 콘텐츠 접근을 차단했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인터넷이라는 이상을 지지하는 이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인터넷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을 그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서게 만들지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10여년간 서구시장에서는 테크 산업은 신뢰를 상실해 왔습니다. 이러한 패턴은 최근 AI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선진국의 소비자들은 개발도상국보다도 AI의 신뢰도가 낮습니다. 시민들은 허위정보, 인터넷중독, 에너지 소비, 혐오 발언,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이 가진 급진성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교묘하게 활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해왔습니다. 때문에 인터넷에 대한 규제와 관련해 항상 창의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고안해 내는 것은 권위주의 정권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들이었습니다. 입법부는 항상 새로운 법으로 규제를 만들었고 행정부는 기존 법률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규제를 늘렸으며 기업들은 소송에서 불리한 판례가 생겨서 영원히 손해볼까봐 미리 거액의 합의금을 주고 끝내는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에서 보통의 시민들에게 피해가 돌아옵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인터넷의 기반아래 성장해온 빅테크 기업들은 이제 자신들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자 각 국가별로 현지화를 통해 규제에 적응합니다. 그리고 엄청난 자본력으로 국가별 시장영역을 지킵니다. 아마존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신규 스타트업 기업들은 여기에 대응할 기회도, 능력도, 자본력도 없습니다. 단순히 전세계를 하나로 잇는 인터넷이라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바다앞에서 스타트업들은 그 생각의 크기를 작게 하도록 강요받습니다. 결국 월드 와이드 웹은 국경선 앞에서 멈추게 됩니다. 그 사이 전세계 각국은 빠르게 자국의 상황에 맞춰 국가 규제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1990년 인터넷이 태동하고 나서 대다수는 "글로벌 빌리지"라고 하는 이상이 도래하리라 여겼습니다. 이 글로벌 빌리지 - 하나가 된 글로벌 마을 - 에서 전자 시대의 개막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개성 중심의 문화에서 집단적 정체성이 전세계적 현상으로 전환이 될것이라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전세계를 통일시키지도, 국가적 이해관계를 조정해주지도, 전세계가 평등하게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국경을 넘어 서로가 소통하고 생활하는 인터넷이라는 기술을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국가 권력을 탄생시켰습니다.
오늘날에는 각 국가별로 예전에는 없었던 인터넷을 규제하기 위한 권한을 가진 국가별 행정부처,법률들이 새로 생겼습니다. 그와 함께 오늘날 전세계인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다른나라, 다른 지역의 정보들을 더 많이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적 특성과 개성, 그리고 고유정체성에 사로잡혀 이를 굳게 붙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국의 고유한 인터넷 환경을 형성하는 규제와 정책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사생활, 표현의 자유, 성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속 각인하는 고유한 가치관 등 모든 것이 그 자체로 문화와 정체성을 반영하는 규제에 의해 형성되며 나아가 이것이 국가적 차이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규제는 그 스스로 규제를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국가별로 지역정치가 점차 더 파벌화되고 민족주의 성향이 대두되면서 인터넷은 이러한 현상을 해소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반영하고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1990년대 인터넷이 처음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때 꿈꾸었던 글로벌 빌리지 - 자신들의 "마을"이 세계화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가장 큰 권력이 빅테크가 된 시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