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읽은 책을 말하는 법
부재 : 너무나 불안한 2030. 정병의 시대 라는 경향신문 특집기사를 읽고서
기사 링크 : https://www.khan.co.kr/article/202610060700001
기사의 일부내용 발췌.
요즘 "외모정병 최고치"라는 윤유진은 불안을 떨칠 처방을 보톡스에서 찾는다. '착실히 살면 더 나은 미래가 올까'란 질문에 "아뇨!"라고 딱 잘라 말한 그에게 외모는 몇 안 되는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다. "더 열심히 한다고 더 받는 것도 아닌"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그의 월급은 노력한다고 쉽게 바꿀 수 없다. 반면, 사각턱은 10만원이면 바뀐다.
사각턱, 자갈턱, 침샘, 이마, 입꼬리, 콧볼, 미간, 측두… 윤유진은 사회가 정한 '예쁨'이 잘게 구분한 얼굴 곳곳에 보톡스를 맞았다. 피부과에만 가면 "뭔가에 씐 것처럼" 돈을 쓴다. 비교적 직관적인 '불안 처방' 같지만, 정작 만족한 건 사각턱뿐이었다. 그마저도 6개월이면 효과가 사라진다. 어느 날 갑자기 동안 공식으로 자리 잡은 '짧은 중안부'처럼 예쁨의 기준이 어떻게 또 바뀔지 모른다.
- 중략 -
이런 기사를 2030 세대들이 찾아서 읽을까요?
아니면 이런 자녀를 둔 세대의 부모가 더 읽을까요? 저는 후자가 더 많이 읽을것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이런기사가 2030을 더욱 '불안' 속 으로 밀어넣는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불안" 이란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라기보다는
타인의 눈에 자신이 하찮거나
무가치 하게 비칠까 두려워하는, '
사회적 평가에 대한 결핍감'에서 비롯되는 듯 합니다.
스토아 철학의 3대거장 에픽테토스가 전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라"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불안은 통제 불가능한 영역(타인의 평판, 경제 상황, 미래의 결과)을 억지로 통제하려 할 때 발생하며, 오직 나의 선택과 태도에 집중할 때 마음에 단단한 고요가 깃든다는 통찰은 오랜 고민의 끝에서 얻을 수 있는 답 인것 같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켄 윌버의 《무경계》,
라이언 홀리데이의 《스틸니스》
알랭 드 보통, 《불안》
팀 페리스 의 《타이탄의 도구들》
를 읽고 내린 저의 결론 입니다.

여전히 여러가지 포기하면서 살고있지만 제가 결정한것이라고 믿을수있다면 상관없더라구요. 모든 불안도 제 믿음이자 제 선택일수 있구요.
종교가 사람들의 불안을 맹신으로 다독여줬었더라면, 이제는 그런것도 안믿는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걸 믿고 살아갈까, 그것에 가장 민감한게 젊은 사람인것같아요. 2030은 어때라고 프레임 씌워지는것도 이해가되는데, 나 약한거 맞는데 왜이렇게 기분이 찝찝할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