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을 이해해야 하는 측면이 큽니다.
상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역사적 분기점이란 면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과 3당 합당이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는데요.
그 이전에는....바로 유신 헌법이 있었습니다.
즉, 유신이라는 지금 기준으론 말도 안 되는 사건은 우리나라 정치 지형의 변화에 아주 중요한 축 중에 하나로 작동했습니다.
지금의 60대 후반 이상은 되어야 이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체감이 되지, 그 밖에는 이 때의 일이 생생하게 체감이 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거죠. 어떤 한 시기에 격렬한 데모가 있었는데 그 데모의 당사자인 대학생들과 같은 시대를 사는 대학생이 가장 잘 체감할 수 있지, 그 뉴스를 보는 당대의 40대나 7살 꼬마가 체감하는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처럼요.
유신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손에 꼽는 분기점 하나이자 독재에 대한 격렬한 저항 움직임이 본격화 된 시발점입니다.
이 때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고 할 정도로 평가의 측면에서 갈려 버리게 됩니다.
지나고 나서야 박정희의 치적으로 둔갑 되었던 많은 일들의 실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유신 이전에는 호남의 지지도 역시 높았습니다.
앞서 광주민주화 운동이 왜 또 다른 역사적 분기점이라고 하는지 이해하려면 이 부분을 알아야 합니다.
즉, 박정희 정권의 반대파에 대한 숙청이라던지 당대에는 감춰져 있거나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문제들 보다는 경제 발전에 대한 지지가 전국적으로 더 높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항은 그 전에도 있었고 후에도 있었고, 바른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끊임 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유신 때에 이르러 독재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본격 태동하게 됩니다.
부모 세대..... 제 기준으로 현재 80 세 전후의 세대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긍정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고, 이는 정보 유통에 따르는 인식 변화가 따라주지 못한 측면과
자신이 겪은 그 때의 기억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도 있겠습니다.
유신헌법 때문에 마냥 좋게 보던 이들도 일부 비판적 시각을 가지긴 했습니다만,
완전히 뒤집지는 못한 ...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유신 이후로 박정희 정권이 저지르는 무리한 일들이 급증 하게 되는데,
이는 장기 독재가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고,
비단 정권 밖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갈등을 생산하는 이유가 됩니다.
매일 밤 9시 뉴스에서 박정희를 첫째 기사로 10분씩 다루니까 자연 세뇌 되는 거에요.
아 맞다. 우리 민주화운동 세대는 그럴리가 없죠.
어르신들이 당시 대부분이 유신 찬성했다고 기억하시는게 이런 것 때문인 점도 있는것 같습니다.
시대적 한계 상 박정희는 여러가지를 포기하거나 배제했어야만 했는데 지금의 우리는 어떨까요? 진도빼려면 박정희를 추켜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보수층은 여기에 삐진거죠.
해방이후 태어나셨고 6.25이후 보리한줌 풀뿌리로 끓인 멀건죽 한그릇이 식사였는데
박정희가 밥을 먹게 해줬다 회고하시더라구요.
미국원조를 도장하나찍어 자신의 치적으로 변경시킨건
그당시 굶주렸던 세대에겐 별로 중요한게 아니었을겁니다.
중년 세대의 반응을 10~20대들은 이해 안해주죠.
역사는 돌고도는 ...
리플만 봐도 머.
벌써 세월이 이렇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