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절망만 있다면 되려 버틸 수 있어
낙차가 없는 곳엔 위치에너지가 작동하지 않거든
절망이란 단일 요소는 하나의 방어막으로 충분히 대응 가능해
드릴이 이빨을 뚫고, 잇몸을 뚫고, 턱뼈에 닿으며 갈리는 소리가 진동할 때는
이런 일이 정말 내게 벌어진다는 그 비현실감이 겹쳐져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걸
네 고통의 한계는 더 먼 곳에 있단다
그럴 때면 난 네게 아주 약간의 기쁨과 희망을 주곤 해
그 한 방울에 신이 난 너는 싱싱한 새싹을 피우려 하잖아
수많은 꿈을 꾸고 모든 것들을 흡수하려 할 때 짓밟아주는 게 난 그렇게 좋더라
넌 찍소리조차 제때 내지 못하거든
유리 너머의 사람들은 그런 너를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어
'반응하고 싶은데 꾹 참는 것 봐, 이번엔 저 부위가 경련하네'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티 한 잔을 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널 낳아준 사람들,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람들, 추억 속의 인연들, 존경하던 사람들, 경멸했던 사람들, 연민을 느끼던 사람들
모두가 같은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쳐
모두가 같은 얼굴, 같은 표정으로
치마를 올리고 웅크린 채 쉬하는 사람들과 지퍼를 열고 꼿꼿이 선 채 더 멀리 보내려 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야
그 축축함을 느끼며 넌 꼼짝달싹 못해
거품이 톡톡 터지는 소리가 네 귀에 들려
천천히 소변이 증발해, 냄새가 네 코에 들어가
눈을 감았다 떴구나
어떠니 더 이상은 눅눅해 보이지도 않구나
다만 웬 벌레가 꼬였는지 네 몸을 기어 다니는구나
슬슬 괴롭히는 것도 지루해지니 마무리를 해볼까
그때 유리를 깨고 당신이 나타나
벌레들은 놀라 모두 도망가
이곳으로 들어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야
당신은 내 입에 성수를 들이켜줘
당신은 내 몸을 거품 내어 닦아줘
당신은 뚫린 내 턱을 거즈로 채워줘
당신은 말끔한 정장을 내게 입혀줘
거울을 보니 제법 사람 같아 보여
난 고개를 돌려 당신을 한참 쳐다봐
이제 때가 된 거지?
난 당신의 손에 닿아있던 새끼손가락을 떼어 내
당신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내 목을 졸라
숨 막히는 것보단 까딱하다간 뼈가 부러질 것 같아
그래, 이거구나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고통이구나
난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차분한 미소를 지어봐
한 가지 문제 의식을 다양한 매체로 풀어내는 작업을 합니다.
글과 사진, 영상과 회화 그리고 설치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