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검열의 주체가 종교, 정부였습니다.
그때는 금서가 있고, 상영금지가 있고, 제작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때로는 신체적 위해를 가했죠.
이제는 그러면 크게 다른가 하고 보면
이제는 불매가 있고, 광고사에 민원넣기가 있고, 여전히 제작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때로는 테러를 가하기도 합니다.
그냥 주체만 달라진거죠. 대중으로 검열의 주체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위험합니다. 보도 지침이 있던 시절에는 보도 지침을 지키면 적어도 삶의 위협은 받지 않았고, 적어도 어디 물어볼데라도 있었죠.
지금은 제작자가 스스로 판단해야됩니다. 이거 만들어도 과연 대중들이 나를 가만히 놔둘지 어떨지.
예측 가능한 위험과 예측 불가능한 위험은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의 대중검열은 제작자가 의도한 부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폭탄이 터집니다.
암살자들 논란? 뭐 감독의 속내야 모르겠습니다만 감독 본인이 말하기로는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죠. 하지만 폭탄은 터졌습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도 그렇습니다. 과연 만평 하나가 그런 테러로 이어지리라고 과연 담당자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페미 논란들 봐도 대부분 그렇죠. 게임사들이든 어디든 실제로 그걸 의도해서 넣는 회사가 있을거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일부 조직원들의 일탈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주류가 그럴 의도를 갖고 그렇게 만든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여성혐오 논란도 그렇습니다. 정말 그럴 의도로 그런것 아니어도 별 이상한 논리를 붙여서 여성 혐오가 됩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죠.
이제 제작자들은 강력한 정부와 권력이라는 검열기관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훨씬 까다롭고 예측 불가능한 대중검열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죠.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존중된다면, 거꾸로 그에 대한 비판의 표현의 자유도 존중하라는 논리도 있긴 합니다만
어디까지가 과연 허용될 수 있는 비판의 수위인지 모르겠고, 적정선이란게 지켜지지도 않습니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나오는 비난의 수위는 당연히 적정수위를 넘어서는것이 많고, 또 그 압도적인 수의 폭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냥 한두사람이 비난, 비판을 쏟아내는게 아니죠. 대한민국의 0.01%만 부정적으로 반응해도 수가 몇만명이 됩니다.
미디어, 컨텐츠 산업이라는게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대중의 반응에 신경써야 한다는 말도 틀리지야 않겠습니다만 이런 모든 변수를 사전에 신경써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과거에 비해서 검열에 걸렸을때 가해지는 압력은 작아졌을지언정, 검열이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는 예측불가능성은 훨씬 커진 시대죠.
서로 손잡고 합의라는 게 있어야 될 텐데요
이런 문화가 확산되면 결국 콘텐츠의 경쟁력이 죽을 거 같아서 걱정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41859.html
「"흔히 민주적 과정으로서 다수결을 말하지만 다수결은 결코 만능의 방법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다수결 결정을 하기 전에 대화를 통해 인식의 차이를 좁히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설득과 타협을 거쳐 충분한 토론과 조정이 이뤄져야 다수결 절차에 합의를 이루게 되고, 표결 결과에 대해 흔쾌히 승복은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적극적 방해는 하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공동체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하는 소극적 의미의 관용을 넘어 다름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체의 가치와 이해관계로 통합해 나가는 적극적 관용의 원리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전 김대중 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좌도 우도 지금 김대중 정신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상대 진영의 유산을 전면 부정하고, 좋은 것은 인정할 생각을 하지 않네요.
서로 적정선을 지키는 사회로 발전해가는 거지요
옷색깔로 구분지어 무채색으로 만들고 니편내편만 부르짖고 있으니까요
잘못된걸 바로잡는 것은 규제라고 생각되지만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도 못하고 표현도 못하게 하는것
이게 과연 민주주의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영화뿐 아니고 이전에도 상영금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꽤 많았던거 같은데요
그때마다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