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암살 음모론이 생겨난 배경은 여러가지죠.
많이 언급되는 육영수를 피격한 총알 분실 또는 은폐와 이해안되는 허술한 보안 검색 등이 있지만..
그보다 제일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경호에 실패한 가장 큰 책임이 경호실에 있음에도 경호실은 문책을 받지 않고
오히려 권력이 더 강해졌다는 부분입니다.
박정희의 친위대로써 경호실, 중정, 보안사(군) 3곳이 큰 힘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중 대통령 경호실과 중앙정보부는 경쟁과 갈등이 극심했습니다.
초기 대응에 있어서는 경호실이 총알 회수 등 중요 정보를 장악했는데
이후 수사는 중정이 주도해서 진행했지요.
중정에서는 사고 직후 현장 경호를 맡은 경호실도 조사하려고 했지만 경호실이 거부하고 그것을
박정희가 묵인해줌으로 조사를 하지 못하고 중요 총알 회수도 안하고 서둘러 종료했습니다.
박정희는 실체적 진실보다는 사건 이후 정세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죠.
결국 경찰만 대거 짤리고 가장 책임이 큰 경호실은 박통의 뒷배로 더 힘이 강해지는 납득하지 못할 일이 생긴겁니다.
훗날 당시 경찰 감식계장이 정권차원의 조직적인 은폐가 있었다고 폭로하면서 음모론에 힘이 실리게 되죠.
결국 이후 권력의 무게 중심이 급격히 경호실로 쏠리면서 김재규가 차지철과 박통의 머리를 날리게 되는 탕탕절의
씨앗이 이때 심어졌다고 봅니다.
감독 인터뷰를 보면 중정내 암투를 그리고 싶었다는데 이런 권력 구조를 드러내고
잘 살릴수 있었으면 논란도 덜하고 설득력도 높아졌을텐데 다른 상황들을 우겨넣다보니
뒷 부분이 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실제 문세광이 조총련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지만 그 증거는 일본도 부정했고..오히려 문세광은 그 사건 이전에 이상한 행적이 너무 많아요.그리고 문세광은 실제 민단 소속. 그리고 그 당시 민단도 박정희에 극도로 부정적이었습니다.
박정희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저런 음모론에 대해 그러려니 하더군요. 그 시절 중정이나 경호실은 그랬을수도 있다고...ㅎㅎㅎ;;;;
오히려, 민주진영 지지층이 많은 클리앙에서 이렇게 호들갑인게 좀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그게 선동이죠
정치적 목적의 영화 이제 진자 조심해야합니다
좌우 할거없이 자신들 선동용으로 쓰기 시작하면 사회 망합니다
김정일이 자기 입으로 본인들이 했다고 말한 사실은 없습니다.
김정일이 박근혜에게 말한 것은 김신조 사건에 대한 유감입니다.
김정일이 육영수 시해 사과? 박근혜가 말한 사과는 '김신조 사건'
출처 오마이뉴스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70999
https://www.yna.co.kr/view/AKR20200929145100504
처음엔 김일성도 이 사건에 대해 회피로 일관하다가
김정일이 본인 입으로 시인한 거 입니다.
김일성이 그렇게 말했다는 증거는 없고,
박근혜 자서전도 "김신조"에 대한 이야기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기사는 '베이징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박 의원에게 "당신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고, 암살 음모는 하급자들이 관련됐으며 자신은 사전에 그런 음모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박 의원은 이같은 내용을 부인했다고 지지통신은 밝혔다. 보도 당시 박 의원 측이 이를 이미 부인했던 것이다. 이후로도 북한이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에 대해 사과한 일은 확인되지 않으며, 박근혜씨로부터도 비슷한 언급은 없었다."
"이후로도 박씨는 2004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 등에서 '김정일의 사과'를 재차 언급했고, 지난 2007년 7월 펴낸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도 이를 소개했다. 자서전에서는 김 위원장이 1968년 김신조 등 남파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얘기를 꺼내며 "극단주의자들이 일을 잘못 저질렀다. 미안하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고 박씨는 서술했다."
진보는 의심이 많아서 합리적인 증거로 인과 관계가 성립되어야 인정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