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거리 이후 창, 이후 상황에 따라 칼.
이렇게 짧게 정리해봅니다. 상황 별로 다른 양상이 있을 수 있지만 대략적으로요.
주로 할 말은...
# 노다치의 도태
예전에 관련 글에서 어떤 분이 노다치가 이미 전국 시대 말기에 도태 되었음을 이야기 하신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선봉장 또는 돌격대, 장군의 호위대 등에서 제한적으로 쓰이던 노다치....
임진왜란 시기는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고, 군이 채택하지 않은 무기를 들고 싸울 병사는 없을 뿐더러... 지휘관급에서도 없었습니다.
즉, 지휘관의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큰 칼을 들고 있는 호위 종자가 일부 가능성이 있을 뿐,
기록에서 노다치를 들고 여럿을 베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과장 또는 왜곡입니다.
# 기록의 장도는 노다치가 아니라 우치카타나 또는 타치
옛 시절에는 1.8~2미터 근방의 큰 인물이 나게 되면, 마치 거인족을 본 것처럼 기록 된 케이스가 많습니다.
거인들이 사는 나라, 또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세계 곳곳에 있죠.
진짜 노다치가 일부 존재했다면 종자를 두엇 이상 대동 가능한 상급 무사라고 봐야 하고,
이 역시 과시용이라고 봐야 합니다. 실전에 쓰일 가능성은...낮아도 너무 낮아서 기록에 등장할 정도가 될 수 없습니다.
당대의 조선의 환도는 생각 보다 짧습니다.
즉, 왜군과 조선군의 길이에 대한 관념이 다릅니다.
기록에 적혀 있는 '장도'는 노다치가 아니라 카타나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아니 거의 쓰지도 않고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그걸 어떻게 목격하겠느냐는 것이죠.
칼날과 구분하지 않고 적힌 길이에 대한 기록을 잘 못 이해한 측면도 있는 것이고요.
# 정리
돌격 특수 부대라던지, 호위대라던지 제한적으로 쓰이던 노다치는
임진왜란 당시에 이미 일본 군 내에서도 보기 힘든 무기였는데,
그걸 조선까지 가져와서 기록에 남을 정도라고 보는 것은
무리여도 참 많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쓰일 일도 많지 않았고요.
아주 희귀한 가능성을 뚫고 누군가 가져와서 누군가 목격해서 기록에 남았다....
라는 것은 ... 꿈 같은 얘기라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