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지식에 대한 소양이 부족한 사람이 자주 하는 짓 중 하나는 엉터리 비유를 가져오는 것이예요. 견강부회라고 하죠.
9.18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뉴욕(경제수도)과 D.C.(행정수도) 사례를 들어 한국의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을 미화한 논리도 그런 오류 중 하나입니다.
국가 간 역사적 맥락 차이를 간과한 잘못된 비유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건국 초기 13개 주들이 모여 연방을 구성할 때 특정 주의 권력이 연방정부에 집중되는 것을 막는 것이 핵심 과제였습니다. D.C.는 필라델피아나 뉴욕 등등과는 달리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 연방 직할지로, 권력의 분산과 주 연합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정치적 장치로 탄생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연방국가가 아니라 수백 년간 서울을 중심으로 모든 권력이 집중된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입니다. 중앙정부의 권한이 막강한 체제에서 단순히 행정 부처를 물리적으로 지방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미국처럼 정치와 경제가 자연스럽게 분리되고 지역간 균형을 이루게 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게 아니죠.
그리고 세종시는 그 출생비화부터가 석연치 않습니다.
석연치 않은 출생의 비밀이 있다고 해서 행정수도의 자격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출발은 1970 년대 박정희 정권 2 인자였던 충청도 출신 JP 였어요. 수도이전론은 JP 와 충청권 대지주들의 협잡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출생의 동기부터가 불순했던 것이죠.
명분은 안보(휴전선과의 거리)였지만 진짜 이유는 대통령 등 권력집단의 안전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수도권 인구를 내팽개치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한다는 구상이었지요. JP 등은 이 논리로 1.21 사태때 혼비백산한 박정희를 설득했어요.
당시에도 이 수도이전론은 엄청난 부작용을 예상했던 사람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는 바람에 흐지부지됐었습니다.
협잡으로 출생한 이 수도이전론은 1998 년 DJP 연합정권이 출범하자 또 국무총리가 된 김종필 씨에 의해 다시 등장합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새천년민주당 지도부는 JP 가 DJ 와 결별하고 떠나면서 남겨놓은 수도이전에 관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가 2002 년 무렵 노무현 후보에게 넘겨줍니다.
2002 년 노무현 대선캠프는 이 자료를 검토한 후 그럴듯하다고 판단하고 수도이전을 행정수도이전으로 명칭만 바꾸어 공약사항으로 구체화한 문건을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서울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복잡한지 그 세밀한 부분들을 미처 알지 못했던 노무현 대선캠프는 단순하게 그저 청와대 – 행정부, 국회, 대법원만 옮기면 수도권 집값이 잡히고 지역균형발전이 되는 것으로 착각을 했던 것이죠.
1970 년대 당시 행정수도이전 협잡을 주도한 충청권 대지주 및 유력인사 중에는 내란검찰 총수였던 작자의 부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우여곡절을 거치며 세종시가 외형적인 정부 부처 이전을 이루어냈지만 현실은 한심합니다.
반쪽짜리 수도라는 태생적 한계는 둘째치고 국가행정망의 물리적 분절은 국가위기대응속도를 저하시키고 막대한 행정비용 낭비만 초래했습니다.
당초 목표대로 수도권 인구가 충청권으로 분산되었나요?
전혀 아니죠.
실제로는 수도권 인구보다 대전, 청주, 공주 등등 주변 충청권 인구와 자본을 더 많이 흡수하는 엉뚱한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정주 여건이 새로 조성된 세종시로 인근 지자체의 젊은층과 중산층이 대거 이주하면서 국토 전체의 균형 발전을 이루기는 커녕 오히려 충청권 내부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이 더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도시를 스스로 굴러가게 하는 자족생태계가 절대부족한 이 도시는 상가는 공실이고 주말에는 공동화되는 유령도시로 전락합니다.
당연하죠.
민간 기업이나 대규모 산업단지, 주요 대학의 유치가 턱없이 부족하고 도시의 내외부를 연결하는 도시전철망조차 전무한 처지에서 행정청 건물이나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섰다고 도시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행정수도이전..
그것까지는 좋은데, 왜 그게 지방분산과는 별로 관계없는 쓸데없는 짓일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무모한 짓인지 몇 달 전 정리한 제 글 하나를 링크합니다.
북한이랑 사이도 안좋아서 통일이나 종전까지는 휴전선에서 더 멀리 둬야하는것도 맞구요.
수도가 휴전선과 너무 가까워 안보상 취약하다는 주장은 1970년대 김종필이 했던 주장이죠.
그 시대에는 그 말이 맞았을 수 있어요.
전차와 재래식 포병전력이 중심이던 시대에는 당연한 사고방식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조선이 핵무기와 고도화된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오늘날의 현대전 환경에서 수도와 휴전선 간의 거리는 방위적 의미를 상실한 낡은 개념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극초음속, 회피기동 미사일 등 압권의 전투력을 가진 최신무기들은 물론이고 방사포를 미사일화한 전술유도방사포를 가지고 한국 전 지역을 타격권으로 삼고 있죠.
현대전의 방위목표는 영토도 영토지만 네트워크와 자산을 보호하는 것 입니다.
수도가 서울이든 부산이든 현대전 상황에서는 별 의미 없습니다.
일단 세종만해도 북한군이 밀고 내려오려면 시간이 걸리죠.
세종으로 넘어가면 휴전선에 지금처럼 육군의 절반을 전진 배치할 이유도 없죠.
옳은 말씀이긴 하나,
이쯤해서 제가 쓰기 망설였던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군요.
수도를 이전하거나 새로운 행정 중심지를 건설하더라도 한국 사회 특유의 서열의식과 중심지 지상주의가 해소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지역균형 발전은 요원합니다.
세종시의 현실이 이러한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죠.
세종시가 당초 내세운 대의명분은 수도권 과밀해소와 지방분권이었잖아요.
근데 뚜껑을 열어보니 어떤가요?
세종시는 전국의 인력과 자원을 골고루 흡수하기보다 인접한 충청권 인구와 경제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동했습니다.
충청권의 우수한 청년층과 중산층이 정주여건과 공공기관 인프라가 좀 더 나은 세종시로 대거 이동하면서 오히려 충청 지역 내의 또 다른 빈부격차와 불균형을 심화시켰죠.
정작 공무원들은 서울에 집과 가족을 그대로 둔채 출퇴근하는 현상이 벌어졌고요.
비거주 때려잡는다니 그 사람들 요즘 고민 많을 겁니다.
세종시에서 이재명 지지율이 밑바닥을 기록하는 것도 다 이런 것과 연관이 깊을 거고요.
참 특이한 점인데요.
한국에서는 어디에 살고 어떤 인프라를 누리느냐를 서열화하는 경향이 강해 새로운 거점이 생기면 그곳이 곧 새로운 상위 서열 구역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저는 이해가 잘 안가는 문화지만 거기 사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합니다.
이러니 수도를 옮기든 공공기관을 옮기든 그 지방 전체의 자생력을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중앙집권적 틀 안에서 서울에 준하는 또 하나의 특권 구역을 하나 더 복제해 놓은 것에 불과한 셈입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골고루 인구를 유입받는다는 건 너무 이상적인 시나리오 같아요. 현재 거주지에서 물리적으로 가까워야 심리적으로도 가깝지 않을까요? 한양 천도 이후에 한양으로 유입된 인구도 주로 경기권의 농민들이었대요.
또 하나의 특권 구역을 복제하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해서 탄생한 도시 하나가 서울 단일 집중화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울을 왕복하는 출퇴근 문화 같은 건 아직 세종시가 서울만큼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예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녀가 중고교 이상인 분들은 대체로 주말에 상경하는 기러기 신세였지만,
자녀가 없거나 초등학생인 분들은 대체로 지방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으로 인한 인구분산 효과는
단기간으로는 그 효과가 적게 나타나고 역효과도 적지 않지만(주말부부 문제 등),
중장기적으로는 그 효용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도 수도권 과밀 현상이 심각한데,
세종시 건설이나 공공기관 이전 등이 없었다면,
그 과밀화 정도는 더 심했을 것입니다.
또한 중앙집권적 특성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전지역의 균형 성장에는
전국의 모든 지역과 연접해 있는 충청권이 유리한 부분이 있습니다.
신수도권이 연접한 지역에 존재한다면,
굳이 이주하기 보다는 각자 생활하던 지역에 거주하면서
필요한 경우에 왕래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유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주위에 있는 경기 지역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지요.
분단된 한반도 기준으로 북서쪽에 치우쳐 있는 서울에 비해
충청권은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이기에
서울 중심의 발달된 경제권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세종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행정수도 건설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미리 교통망을 잘 계획한다면 신행정수도에서는 수도권에서 나타나는 교통체증 현상을
대폭 줄일 수 있음).
신행정수도 중심의 교통 인프라 구축은
침체기를 겪고 있는 건설 산업에 수십 년 간 활력소를 제공해 준다는 잇점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