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너무 길게 하지 않기 위해 생략했지만
현대 이전의 모든 시대를 말합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 방화가 유용한 지점이 왜 발생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어둠
- 인구 수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주변이 아주 어두워집니다.
좋은 예로는 번성하던 시절의 대도시와의 대비를 들 수 있겠습니다.
당나라 때나 일본이 에도 시대의 수도는 번화하여서,
현대 이전의 시기 중에 가장 밝은 밤을 볼 수 있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대부분의 시기의 대부분의 지역은...
어둠 자체가 기본적으로 짙게 깔려 있었다고 보면 되지 싶습니다.
여기에 인구 수까지 현저하게 적었죠.
이미 기원 전 한참 전에 1억대를 넘긴 중국 같은 곳도 있지만,
우리나라만 해도 지금 대비 비교도 안 되게 적은 수였기에
방화에 매우 취약했습니다.
누군가 불만을 품고 불을 지르면.... 막기가 쉽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권력가 중 위세가 대단한 경우 사병을 많이 두었는데,
방화 및 여러 위험을 상시 대비하기 위함도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반면 대단한 권력가가 아닌... 경우,
어설프게 갑질하다 누군가 악의를 품고 방화를 저지르면... 속수무책...
그래서 관련 수사 기법도 발전합니다.
이게 왜 통하느냐면,
범행을 저지르는 자들 중 영화에 나오는 머리 좋고 잔꾀를 불이는 전략가형은
현실에서 아주아주아주~~ 드물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이런 정도로 머리가 없나 싶을 정도의
기이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꼬리를 밟힐 만한 행위를 하여 수사 하면 잡아 낸다는 말이죠.
여기에 가혹할 정도의 연좌죄와 극형을 병행합니다.
아무리 대비를 해도 자주 방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어떻게든 최소화 하려는 방책 중 하나가
매우 강한 처벌과 연좌죄였던 것입니다.
조선의 경우 씨족이 같이 사는 문화가 뚜렷해지던 시기부터는
서로 간의 감시가 더 수월해집니다.
또한 방화 발생 후에 조선의 향촌 사회는
유학을 근간으로 하는 공동의 배움터...
쉽게 말해 오늘 날 말하는 혈연, 학연이 겹치는 관계로,
상호 협력을 통해 대질 심문이 수월하고,
다른 한편으로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가혹한 심문과 조사를 통해 범인을 색출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을 때 이고,
여러 해 흉작으로.. 소위 말하는 굶어 주는 이들이 많아지는 시기에는
방화는 가장 유용한 저항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권력가일수록 이럴 때 수탈을 완화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더 많이 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그러면서 동시에 사병을 늘려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