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내장」
불치병이란 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다행히 죽는 불치병은 아니었다.
시력만 잃을 뿐.
다행이었던 걸까.
진행을 늦추는 약은 있었다.
젊은 나이에 비해 이미 상태는 심각하다고 하였다.
약은 최대치로 써야 했다.
3개의 각기 다른 안약을 아침과 저녁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넣어야 했다.
아플 것도 없었고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술, 담배는 눈으로 가는 혈관을 수축시키기 때문에 병과를 악화시킨다 하였다.
그 이후 한동안은 가끔 가벼운 술만 적실뿐이었다.
그날도 난 외국계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던 중이었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 핵심부서 내 팀장과 임원들을 상대로 시장전망에 관한 발표를 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번쩍이는 9층 높이의 빌딩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멈출 수 없었다.
그 상상이 언젠가 내 몸을 움직일 것만 같았다.
살아야 했다.
왜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지켜내 온 생명이었는데.
게다가 내겐 이제 막 태어난 아이까지 있었다.
그날 이후로 사표를 내고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쓰레기더미 속에서 먼지를 들이마시며 일개 보조 잡부로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몸이 고생하더라도 기술만 익히면 될 것 같았다.
적어도 과거 내가 겪었던 껍데기와 알맹이 간의 간극은 적을 것 같았다.
세련된 용모와 태도를 한 채 내면을 거세한 채 불륜과 성매매는 들숨과 날숨이었던 그곳과는 다를 것 같았다.
정장만 차려입던 번듯한 직장인의 온몸은 오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닥치는 대로 인테리어 사무소에 전화를 했고 뭐든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여 처음 만났던 기술자는 당시엔 몰랐지만 관례와 어긋나게 무급으로 일을 시켰다.
몇 년이 지나 그는 부정한 짓을 저지르다가 자신의 알몸 사진이 나에게 전송될 수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사정했다.
먼지 속의 그 세계는 종류만 다를 뿐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모든 부조리를 세련된 포장지로 덮을지, 천박한 모습 그대로 드러낼지의 차이일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거친 뒤 마지막에 만난 사람들과는 끝까지 함께 일을 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러나 그때 내 무릎은 박살 나 있었다.
그렇게 더 이상 그 일조차 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살아야만 했다.
단절된 경력과 박살 난 무릎.
이렇게 살 순 없다는 아내의 절규.
내 시야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난 가정이 깨지고도 씩씩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와 아이는 내게는 이 세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나와 상의 없이, 아내는 주식에 대부분의 자금을 투자했다.
소중한 돈을 날릴 수는 없었고 이미 벌어진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난 분석하기 시작했다.
분석은 늘 내 마음을 안정시켜 줬다.
본질을, 내막을 알면 뭐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표면적으로는 투자로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면 분석을 통해 내 선택이 옳았음을 그저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어긋나는 내 삶이 정녕 틀리지 않았단 것을 내 눈으로 봐야만 했다.
어느새 우리의 집착은 한참 넘어있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그때 우리에게 남은 돈은 몇십만 원이었다.
생존.
해야만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이젠 갈피를 잡을 수도 없었다.
내게 남은 것을 돌아봤다.
차가 보였다.
첫 직장에서 구매했던 신차였다.
많이 몰지도 않아 멀쩡했다.
그렇게 그 차는 배달 일을 하는데 쓰였다.
사람과 엮일 일 없었고 운전을 잘하는 내게, 배달 일은 천직이었다.
답답하게 운전하는 사람들과 경비의 쓸데없는 시비를 제외하면 힘들 건 없었다.
그날도 시계는 새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눈이 펑펑 왔고 한기는 내 아작 난 무릎을 비롯해 대부분의 도로를 얼려버렸었다.
그날 난 기뻤다.
기상이 좋지 않을 때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기 때문에.
피곤해도 평소보다 좀 더 해야 하는 날이라 생각했다.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 비싼 단가로 배달을 수락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가던 중
가드레일을 박으며 차의 핸들축이 꺾여버렸다.
수리비는 내가 감당할 수 없었고 보험은 적용되지 않는 케이스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직장을 갈 때, 우리 가족을 편안히 옮겨주던 내 차는 그렇게 폐차되었다.
이제 난 담배를 피운다.
녹내장 약을 끊은 지는 반년이 넘었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쉽다 해야 하나, 내 눈은 멀쩡하다.
그간 뭐 하러 돈을 들여 매번 병원과 약국을 드나들고 안약을 넣었을까.
부질없었다.
난 지금도 네모난 파란색 수납장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작업합니다.
글과 사진, 영상 그리고 설치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
글과 사진, 영상 그리고 설치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 "가 보이는데 ai로 쓴 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