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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제2차 세계대전을 '선한 전쟁'으로 기억하게 만든 미국식 서사의 이면 15

2026-09-12 13:18:53 수정일 : 2026-09-12 13:29:06 121.♡.180.210
lc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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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저자는 미국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2차대전에 참가한 게 아니라 

미국의 대기업과 파워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참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 미국의 대기업들(포드, GM, ITT, IBM, 스탠더드오일 등)은 나치 독일과 활발히 거래하며 재무장에 기여했고 전쟁 중에도 협력하며 이윤을 챙겼다

- 미국 엘리트층은 히틀러와 파시즘을 공산주의에 대한 방벽으로 보아 오랫동안 호의적이었다

- 제2전선 개시를 미룬 것은 독일과 소련이 서로 소진되어 망하기를 기다린 계산이었다

- 미국은 일본과 전쟁을 하고 싶어서 명분을 얻기 위해 일본의 공격을 유도했다.

- 대공황을 끝낸 것은 뉴딜이 아니라 전쟁 특수였고 그 결과 군산복합체가 탄생했다

-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소련을 겨냥한 외교적 시위였다

- 전후 미국은 그리스·이탈리아 등에서 좌파 레지스탕스를 억누르고 구 나치 인사들을 재활용했다


미국 기업들이 히틀러를 응원하며 협력하기도 했다는 건

오늘날 애플 등을 비롯한 미국 기업들이 중국 체제의 역량 강화에 기여한다는 걸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대리 소모전, 

유럽이 방위비를 올리며 그것이 산업정책이자 성장 전략으로 설명되는 현재의 상황도 떠오르구요.


하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너무 한 관점에 끼워맞추는 식이라는 반론도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 이익을 보았는가"라는 질문에서 곧바로 "xx가 그것을 의도했다"로 넘어간다는 점도 그렇구요.




아래는 출판사 리뷰입니다.


미국의 파워엘리트는 왜 파시즘에 호의적이었는가?


저자는 1939년 유럽에 전쟁이 발발하자 처음에는 중립을 지키는 것이 미국 파워엘리트들에게 이익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참전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이 된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처음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파시즘에 호의적이었다. 1930년대 대부분의 미국 기업체들은 대공황이라는 극심한 경제 위기를 겪으며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와 반대로 소련은 1930년대 완전고용과 노후 연금 등 사회보장 제도로 ‘노동자들의 천국’으로 불렸다. 1930년대 미국의 노동자, 지식인들은 소련의 이런 사회주의 실험을 일종의 대안으로 받아들이며 굉장히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미국의 파워엘리트는 나치의 파시즘보다 이런 소련의 사회주의를 훨씬 더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히틀러를 영혼이 통하는 친구로 여겼고, 그를 혜안을 지닌 사람이자 과감하게 진실을 말하는 정치인, 그리고 사회주의를 파괴하는 정책을 주저 없이 추진하는 지도자로 칭송했다. 그들은 히틀러의 두 가지 업적에 특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 첫째, 1933년 초 정권을 잡자 그 즉시 사회주의 정당과 공산주의 정당을 없애버리고 노동조합을 해체한 것이다. 둘째는 이후 몇 년에 걸쳐 고속도로 건설을 비롯한 다양한 공공사업과 재무장 등으로 독일을 대공황의 사막에서 빠져나오게 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이런 히틀러의 파시즘을 대공황에 빠진 자본주의의 탈출구이자 소련 공산주의를 물리칠 대안세력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미국 대기업의 경제적 활로를 열어줄 유력한 세력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히틀러에게 호의적이었고, 나치 독일에 많은 투자를 했다.


나치 독일은 미국 대기업의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


미국의 대통령 캘빈 쿨리지는 “미국이 할 일은 비즈니스”라고 말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기업에게 최대한으로 돈을 벌 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무엇이 미국의 산업, 사업, 그리고 기업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그것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실행하는 것이 미국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미국의 기업가들은 예나 지금이나 나라의 국내외 정책이 사업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없애고, 노동자들을 가능한 한 온순한 채로 유지하고, 임금을 최대한 낮추는 것을 원한다. 이런 의미에서 히틀러 치하의 독일은 미국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 미국 기업의 대독일 투자는 크게 증가했다. 1941년 말에는 투자액이 4억 7,500만 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코카콜라의 대규모 병입 시설, 제너럴모터스 오펠 자동차 공장, 포드의 포드-베르케, IBM 공장, 또는 스탠더드오일의 악명 높은 독일 협력사 이게파르벤 등 미국 기업들의 독일 자회사들과 협력사들은 노동조합을 쓸어버리고 재무장 계획으로 주문이 빗발치게 만든 히틀러 집권기에 크게 번영했다. 약 20개 정도의 유력한 미국 거대기업이 1930년대에 독일과 연관되어 큰 이윤을 남겼는데, 포드, 제너럴모터스, 뉴저지 스탠더드오일, 듀퐁, 유니언카바이드, 웨스팅하우스, 제너럴일렉트릭, 굿리치, 싱거, 이스트먼 코닥, 코카콜라, IBM, 그리고 ITT 등이 바로 그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은 히틀러에게 전쟁을 계속하도록 기술을 전해주기도 했다. GM과 포드는 전쟁에 필요한 모든 수송 장비뿐만 아니라 탱크와 장갑차 같은 전쟁 무기도 제공했다. IBM은 “추방 대상자인 유대인과 다른 희생자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강제수용소의 수감자를 등록하고, 강제노동자를 찾아내는 데” 사용된 홀러리스 계산기를 비롯한 여러 장비들을 히틀러 정권에 제공해 엄청난 규모의 홀로코스트가 발생하는 데 책임이 있다. 또 최첨단 정보처리 기술을 제공해 독일군이 전격전을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게 했고, 진주만 습격 이후에도 계속해서 나치 독일에서 사업을 이어갔으며, 그 과정에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친파시스트주의자인 소스신스 벤이 이끄는 ITT는 1930년대에 독일 군용기 포케불프의 4분의 1을 생산했다. 진주만 공습 이후, ITT는 미국의 외교 암호문을 해독할 수 있는 통신 시스템을 독일에 제공하여 미국에 해를 입히기도 했다. 미국의 석유 회사는 스페인을 통해 독일에게 석유를 공급했으며, 이 연료가 없었다면 나치는 모스크바 부근까지 진격할 수 없었을 것이고, 프랑스를 점령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미국 대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이 기업들이 이익을 얻는 데 꾸준히 지원을 해주었다. 전 세계 주요 국가 중 어떤 나라도 미국만큼 ‘기업’에 완전한 ‘자유’를 주고 자본주의가 진정으로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국가는 없다.


이익이 된다면 전쟁이라도 상관없다?


당시 미국 기업가들은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정책에 아무런 불만을 갖지 않았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당시에는 인종주의 국가이기도 했다. 군병원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혈장을 구분했으며, 아이젠하워와 마셜과 패튼을 포함한 장군들 상당수는 나치와 마찬가지로 백인의 우월성을 확신했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다른 인종 간의 결혼과 출산을 금지하는 법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던 미국의 여러 주들에서 유럽의 백인과 결혼한 흑인 참전용사들과 아시아인과 결혼한 백인들의 정착을 허용하지 않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반유대주의를 이유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독일을 탈출한 유대인들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헨리 포드는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였고, 그가 펴낸 반유대주의 책은 히틀러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전쟁 중에 독일과 독일이 점령한 곳의 유대인들의 운명에 거의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체계적인 집단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음에도 그랬다. 1945년 미국이 독일을 정복하고 독일이 항복한 바로 직후, 미국 정부 당국은 홀로코스트의 수많은 생존자들을 계속 강제수용소에 남겨두었으며, 생존자들은 그곳에 조직적으로 방치된 채 심지어 학대당하기까지 했다. 또 포드 독일 자회사는 노예노동을 통해 이윤을 남겼다. 외국인 강제노동자 수천 명은 일요일 12시간 휴식을 제외하고 매일 노예처럼 일하고도 임금은 아예 받지도 못했다.


유럽에서 발발한 전쟁은 미국 경제에 전례가 없는 기회의 창을 열어주었다. 이 수익성 높은 거래에서 이익을 얻을 기회에 몸을 던졌던 수많은 미국 기업들의 경영자와 소유주들이 히틀러에게, 민주주의보다 파시즘에 더 공감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40년 6월에는 미국에서 나치나치 승전 축하 기념 파티를 열기도 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과도 협력한다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은 미국 정치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전쟁 후 기업 출신들이 대거 정부 요직에 임용되었고, 사실상 미국은 ‘기업국가’가 되었다. 미국 정부의 주된 기능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업가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들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곧 전쟁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이 시스템 덕분에 종전 후 미국의 산업은 다시 위기를 겪지 않았다. 꾸준히 전쟁을 해야 미국 경제가 유지되는 이 시스템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시대에 빛을 발했고, 미국이 영구 전쟁을 도모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이 시스템의 주된 수혜자들은 워싱턴에 항상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들이었다. 전쟁 중에 그들은 펜타곤과 함께 대단히 수익성 높은 사업을 벌이는 법을 배웠고, 냉전 덕분에 더욱 엄청난 부를 쌓았다. 전쟁국가 시스템은 결국 일반 대중이 낸 세금으로 개인과 사기업들이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해주는 계획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히틀러는 서방세계를 구원해줄 구세주?


1939년 히틀러는 뮌헨협정을 깨고 폴란드를 침공했고,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이때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의 영토 확장을 용인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바로 히틀러가 소련을 물리칠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과 프랑스는 나치 독일보다 소련을 더 위험한 적으로 느꼈고, 히틀러가 소련을 공격할 것을 부추긴 것이다. 소위 ‘유화 정책’이라 불리는 이 정책을 눈치챈 스탈린은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을 맺는다. 침략을 방어할 귀중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고, 동유럽의 방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국과 프랑스, 미국은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히틀러를 돕기 위해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미국의 주류 언론도 모스크바를 본부로 하는 국제적 공산주의가 독일이나 이탈리아식 파시즘보다 자국에 훨씬 더 위험하다는 확신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주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개신교 정기 간행물뿐만 아니라 가톨릭에서도 “공산주의의 국가 전복”을 “국가의 큰 위협”으로 여겼고, 반대로 히틀러는 “볼셰비즘에서 구원해줄 구세주”로 찬양했다.


히틀러는 1940년 프랑스를 점령했고, 영국 정벌에 나선다. 이때부터 나치 독일은 상업적으로 미국의 ‘가장 귀찮은 경쟁자’가 되었다. 나치 독일은 프랑스와 북유럽, 동유럽 경제권을 장악했고, 그 이후로 독일은 더 이상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미국의 수출 상품이 들어올 문을 닫아버린 나라일 뿐이었다. 그러자 미국은 영국으로 눈을 돌린다. 1941년 영국과 렌드리스(무기대여 할부)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로써 영국은 미국의 최대 경제적 고객이 된다. 영국과 무기 거래 규모가 커지자 미국 기업가들은 점차 독일보다는 영국에, 히틀러보다는 처칠에게 더 호감을 가지게 된다. 미국에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는 유럽의 전쟁이 최대한 오랫동안 이어져서 거대기업들이 영국에 상품을 무한정 공급하는 것이었다. 헨리 포드는 “연합군도 추축군도 전쟁에 이기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으며, 어느 시점에서는 실제로 “양쪽이 다 멸망할 때까지 계속해서 싸우도록 장비를” 공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스탈린, 적의 적은 친구?


히틀러는 1941년 6월 22일 소련을 침공한다. 당시 미국과 영국은 히틀러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은 독일의 승리를 확신하며, 시베리아 등 독일의 점령에서 벗어날 것 같은 소비에트 영토에서 비공산주의 정부가 집권하게 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1917년 볼셰비키에 전복된 러시아 정부에서 일하다가 망명한 알렉산드르 케렌스키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련은 예상 외로 강했다. 소련은 1941년 12월 5일 반격에 나섰는데, 저자 파월은 이날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황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히틀러 자신도 전쟁에 승리할 수 없을 것이란 걸 깨달았을 정도다. 그리고 1941년 12월 11일 히틀러가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자, 소련은 미국의 적의 적으로서 자동으로 미국의 동지이자 동맹이자 일종의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1941년 말에는 이제 더 이상 나치가 소련에 승리를 거두기를 바라지 않았다. 독일이 갑자기 적이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1941년 11월 소련과 맺은 랜드리스 사업에 좋지 않은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나치의 승리는 렌드리스라는 풍요의 뿔에서 흘러나오는 수익을 위태롭게 할 수 있었다. 독일이 소련에 승리를 거두면 모든 회계장부의 결산표에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한쪽이 확실하게 승리를 거두지 않기를 바랐다. 서로 가능한 한 오랫동안 전쟁에 매달려 양쪽 모두가 쇠약해지기를 기대했다. 해리 S. 트루먼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독일이 이길 것 같으면 우리는 러시아를 돕고, 러시아가 이길 것 같으면 독일을 도와 가능한 한 양쪽 모두가 피폐해지도록 해야 한다.”


미국은 왜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허용했을까?


1941년 12월 11일 히틀러가 선전포고를 하기 전까지 미국은 유럽에 전쟁을 하러 갈 생각이 없었다. 히틀러가 선전포고를 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전쟁에 ‘끌려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달랐다. 미국은 일본과 전쟁을 하고 싶어 했다. 중국, 동남아 지역은 미국의 거대 시장인 동시에 석유, 고무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 미국은 일본이 중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 지역과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까지 그들만의 ‘자급자족 경제’에 편입시키려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국의 사업가들과 파워엘리트는 미국인들이 19세기부터 벌써 경멸하기 시작한 이 열등해 보이는 ‘황인종’ ‘일본 놈들’에게 극동아시아의 수지맞는 시장을 빼앗길 생각을 하니 극도로 화가 났다.” 이 때문에 1930년대 내내 독일과의 전쟁에 반대하던 권력층 대부분이 일본과의 전쟁 가능성에 대해서는 점점 더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일본과의 전쟁 계획은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미국의 파워엘리트는 일본과의 전쟁을 원했지만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일본이 먼저 침략 행위를 하도록 자극해야만 했다. 제일 먼저 일본에게 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미국 내에 있는 일본의 모든 자산을 동결하고 일본이 석유 제품을 획득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군에게 중국에서 당장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일본군은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이 요구를 거절한다. “미국 정부와 군 최고위층은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하여 일본 함대가 무엇을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하와이의 지휘관들에게 경고해주지 않고 1941년 12월 7일 일요일에 진주만 ‘기습공격’을 허용했다.” 결국 미국은 일본과 전쟁을 할 수 있었고, 1945년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항복을 받아내게 된다.


사실 미국은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않아도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을 위협하려면 원자폭탄의 위력을 실제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원자폭탄을 터트림으로 해서 소련이 아시아의 전쟁에 뛰어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로써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영토나 극동 및 태평양 지역 전체에 대한 처우를 결정할 때 소련에게 발언권을 줄 필요가 없어졌고, 미국은 그 지역의 완전한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드레스덴 공습, 왜 수십만 명이 죽어야 했을까?


1945년 2월 13~14일 밤 드레스덴에 대규모 폭격이 이루어진다. 세 번에 걸쳐서 총 1,000대가 넘는 폭격기가 동원된 이 공습의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엄청난 수의 주민과 우연히 드레스덴에 있던 수천수만의 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확한 사상자 통계는 알 수 없다. 지역 경찰의 비밀 보고서에 따르면 아마도 20만 명에서 25만 명 사이였을 거라고 한다. 그런데 그 도시를 강타한 죽음과 파괴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이렇다 할 군수공장도 없고 전략적 요충지도 아닌 드레스덴에 이런 엄청난 폭격을 퍼부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미국과 영국이 소련에게 무력시위를 하기 위해 폭격을 ‘보여준’ 것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얄타회담이 열리기 전 스탈린에게 많은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와 같은 일을 벌인 것이다. 이를 위해 수십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이때 소련은 이미 아주 큰 피해를 입은 상태여서 미국과 영국에 대항할 여력이 없었다. 소련의 희생자는 민간인과 군인을 합쳐 3,000만 명에 이르렀고, 이는 전쟁 전 인구의 15퍼센트에 달하는 수치였다. 국토의 상당 부분도 완전히 파괴되었다. 자기 나라가 그런 상태인데, 본진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당장 새로운 전쟁을, 그것도 드레스덴의 10배에 달하는 피해를 소련에 입힐 수 있는 공군력을 보유한 영국과 미국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스탈린도 미국과 영국에 대결하기보다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편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곧 드레스덴 폭격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사건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드레스덴 공습 참여는 정말로 불필요했다. 영국 공군 혼자서도 드레스덴을 쓸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불필요한 미국의 가세로 인한 ‘과잉살상’ 효과는 영국과 미국 공군력의 치명적인 힘을 (소비에트에) 과시한다는 목적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또한 처칠이 끔찍한 도살자라는 악명을 영국 혼자 지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것은 ‘공범’이 필요한 ‘범죄’였다.”


미국은 왜 반파시스트 세력을 억압했는가?


1943년 미국과 영국은 로마에 입성했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대중의 지지를 폭넓게 받고 있는 반파시스트 세력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소련의 참여를 배제했고, 이탈리아 반파시스트 세력을 무장 해제하고 정치 참여를 철저하게 막았다. 반파시스트 세력에 공산주의자들이 있고, 이들이 파시스트를 지원하던 교황청, 대지주, 은행가, 기업가 등을 제거하려고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특히 처칠은 유럽 대륙에서 급진적 개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결국 이탈리아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과 영국은 파시스트와 협력했던 세력들을 오히려 지원해주었고, 결국 무솔리니의 부역자였던 바돌리오가 이탈리아 정부를 이끌게 된다.


미국은 또 이탈리아 전체, 특히 시칠리아에서 마피아를 ‘반공산주의 방어 거점’으로 여기고 그들과 긴밀하게 협력했다. 이 마피아 작전의 주역은 악명 높은 뉴욕의 갱스터 럭키 루치아노, 그리고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였다. 이 시칠리안 계획으로 수익성 높은 마약 밀매 사업을 벌이는 국제 범죄조직과 미국 첩보기관 사이에 오랫동안 전후 협력 관계가 시작되었다. CIA는 수십 년 동안 이 협력관계로 얻은 돈을 전 세계의 반혁명 활동을 지원하는 데 사용했다. 마피아와 직접 결탁하여 계획한 피델 카스트로 암살 시도와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와 벌인 비밀 전쟁을 두 가지 예로 들 수 있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과 영국은 1944년 8월 프랑스를 해방시켰는데, 프랑스에서도 철저하게 레지스탕스 세력들을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가장 보수적인 드골을 선택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A. J. P. 테일러가 “전쟁을 한 번도 수행하지 않은 장군이자 단 한 번도 선거에 나서지 않은 정치가”라고 냉소적으로 지적한 바 있는 권위적인 드골은 그렇게 미국과 영국이라는 해방자들에 의해 프랑스를 다스리게 되었다.


미국은 왜 독일을 분단국가로 만들었을까?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독일을 분단국가로 만들었다. 소련은 독일이 분단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통일 독일에게 전쟁 배상금을 받는 게 소련에게는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은 세계 경제를 자신들의 주도하에 질서 있게 통합하고자 했다. 독일이 소련에게 전쟁 배상금을 지불한다면 미국 투자자들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니 이를 원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소련과 함께 독일을 재건하는 것보다는 경제적으로 앞선 서부 독일을 자신들의 지배 아래 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소련이 실제로 입은 전쟁 피해액 추정치는 1,280억 달러에 달하지만, 소련이 동서독으로부터 받은 배상금은 51억 달러에 불과했다. 결국 전쟁 배당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소련은 자력으로 경제를 재건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미국은 독일로부터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챙겼다. 독일 기업들의 노하우와 기술들을 약탈해간 것이다. 독일의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은 물론 사실상 독일 산업과 기술의 모든 측면을 빼돌려 전후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한마디로 독일의 분단은 미국 자본주의가 더 부유해지고 다시 활기를 띠게 해주었으나, 반면 전쟁에서 너무나 큰 고통을 겪은 소련에게는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미국은 또 다른 전쟁을 원하는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미국의 파워엘리트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단순히 좋은 전쟁이 아니라 정말로 환상적인 전쟁이었다. 20세기의 그 거대한 아마겟돈이 끝났을 때 미국은 위대한 승리자였고, 전 세계가 미국의 수출 상품과 투자자본에 문을 활짝 연 채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오는 팍스아메리카나는 미국의 지도자들이 종전 후에도 기업들이 영속적으로 수익을 올리고 보편적으로 번영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여기는 전 세계적 자유무역을 약속해주었다.


그리고 냉전시대가 열렸다. 미국 파워엘리트들에게 이 냉전 또한 완벽하게 좋은 것이었다. 소련을 미국 국민의 적으로 선언함으로써 모든 ‘반미국적’ 급진주의적 사상, 노동조합의 요구를 차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련을 끝없는 군비 경쟁에 끌어들여 소련 경제를 파멸시킬 수 있었다. 소련이 무너지자 전쟁을 해야 유지되는 펜타곤 시스템은 사담 후세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같은 새로운 적이나 1991년의 걸프 전쟁, 1999년 코소보 내전, 그리고 더욱 최근에는 2001년 9월 11일의 테러 공격 등의 도움으로 여전히 모든 엔진을 가동하고 있다. 시리아, 러시아, 중국, 북한 등도 언제든 ‘좋은 전쟁’의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도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군비 지출은 대기업들이 올리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높은 수익의 원천이며, 그것이 부유한 경영인들과 주주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있다. 게다가 이 지출 비용은 지금도 대부분 차관을 통해서 충당되고 있으며, 그 이자는 주로 채권을 구입할 여유가 있는 개인과 기업들에게 지불되고 있다. 그리하여 제2차 세계대전 때 이미 엄청나게 올라간 미국의 국가부채는 1945년 이후에도, 그리고 냉전이 끝난 1990년 이후로도 계속해서 증가해왔다. 그 모든 국가부채를 ‘떠맡는’ 것은 좋건 싫건 간에 세금으로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평범한 미국 시민들이다.


저자 파월은 책 말미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평화가 ‘발발’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끝없이 포위당했던 나라 소비에트의 사회주의는 살아남지 못했는데, 미국의 자본주의는 포위되지 않고도, 적이 없어도, 위협받지 않아도, 그것이 ‘좋은’ 전쟁이건 아니건 간에 전쟁을 하지 못해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이 지배한 20세기와 지금의 세계는 결코 평화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미국의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에 전 세계가 휘둘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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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
여름철개장수
IP 182.♡.67.152
13:31 2026-09-12 13:31:15
·
80년 쯤 지나니까 "Fuxxing Liberal"의 수정주의적 평가와 최근 미국의 뻘짓을 가지고 미국-영국 나쁜 놈 평가를 하려나보네요.

1. 메포 어음으로 따갚되 놀이하다가 그 끝을 전쟁으로 끌고 간 것은 독일입니다.
2. 하지말하는 짓만 골라하다가 ABCD 동맹 결성하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공식 선전포고 없이 진주만 때린 것은 일본입니다.
3.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을 정도로 스탈린과 히틀러가 히히덕 거리다가 서로 누가 뒷통수 먼저 때릴지 눈치게임에서 스탈린이 진거겠죠.
4. 소련이 독일에서 그대로 뜯어간 산업시설과 기술자, 그리고 철의 장막 동쪽의 위성국가들은 전리품이 아닌가 봅니다. 기술도 2-3류급이던 국가가 연합국 지원×기술도둑질 등으로 투 톱으로 등극한건데요.
5. 드레스덴이건 도쿄 대공습이건 민간인 피해없는 공격이란 불가능합니다. 그게 싫으면 무방비도시를 만들거나, 전쟁을 일으키지 말았어야죠. 저걸 비난 혹은 비판하는건 탁상놀음입니다.

그냥 리뷰만 봐서는 책이 시류에 편승해서 나온 느낌이네요.
lcoy
IP 121.♡.180.210
14:00 2026-09-12 14:00:10 / 수정일: 2026-09-12 14:35:12
·
@여름철개장수님
네, 이 책은 학술서라기보다는 기존 수정주의 문헌들의 종합,대중판에 가깝다는 말들을 하는 것도 같습니다.
정설이라기보다는 지배적 서사에 대한 의도적으로 강한 반론, 정치적 팜플렛으로 분류하는 것 같기도...

1~3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도 동의할 것 같습니다. 다만 "누가 전쟁을 일으켰나"가 아니라 "이긴 쪽은 어떤 동기로 싸웠고 전후에 무엇을 했나"에 더 관심을 두어 쓴 것 같고요.

4 같은 점에 대해서는 말씀대로 꽤 편향적으로 쓴 것 같습니다.

5의 경우는... 다른 선택지가 있음에도 선택한, 불가피한 부수피해가 아니라 명시적으로 선택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처칠 자신도, 영국 국교회 주교 조지 벨도, 미국 전략폭격조사단도 비판하거나 회의적으로 평가했었고...

참고로 이 책은 2002년에 나온 책이고 작가는 리버럴이라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 계열이라 합니다.
ABDA
IP 118.♡.5.123
13:41 2026-09-12 13:41:01 / 수정일: 2026-09-12 13:43:26
·
미국은 일본과 전쟁을 하고 싶어서 명분을 얻기 위해 일본의 공격을 유도했다. - 이 부분은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오히려 미국은 일본에게 정말 많은 기회를 주었습니다. 37년 7월 중일전쟁 개전 이후로 미국은 자국의 자산이 위협받지 않는 선에서 일본이 전쟁을 끝낼 것이라 생각하고 일본의 침략 행위에 대해 큰 제재를 가하지 않았습니다. 37년 12월, 파나이 호 격침 이후부터 구리 수출 제재를 진행하였고, 전쟁에 필요한 철강과 석유 수출 제재는 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41년에 일본이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유하며 서구열강의 이권지대와 미국의 직접적인 이권 지대에 대한 압박을 시작하였기에 미국은 대일 석유 수출 제재와 미국 내 일본 자산 동결, 철강 수출을 제재하고 헐 노트를 제시하였습니다. 물론 그것이 일본에게 강한 압박이었으나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일본의 욕망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에서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일본에게 4년이나 기회를 주었으나 그것을 걷어차고 전쟁을 일으킨건 일본입니다.
ABDA
IP 118.♡.5.123
13:49 2026-09-12 13:49:29 / 수정일: 2026-09-12 13:50:34
·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소련을 겨냥한 외교적 시위였다. - 이 부분은 부분적으로 옳습니다.

미국은 이전부터 큰 사상자를 피하기 위해 개구리 뜀 작전을 통해 태평양에서 일본이 점령한 섬 전체를 탈환하는게 아니라 중요도가 높은 섬만 점령하였습니다.

허나 오키나와 공방전에서 미국은 1만 2천명의 장병이 사망하고, 3만 6천명이 부상을 있었습니다. 이를 본 미국은 경악하고 일본 본토 공략전, 몰락 작전을 재고하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일억총옥쇄를 부르짖으며 결호 작전을 준비 중이었으며, 이는 일본 본토는 물론 한반도에서도 진행될 작전이었습니다. 만일 몰락 작전이 그대로 감행된다면 최소 수십만의 사상자가 예상되었기에 미국은 일본의 빠른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원폭 투하를 결정했습니다.
ABDA
IP 118.♡.5.123
13:56 2026-09-12 13:56:37
·
제2전선 개시를 미룬 것은 독일과 소련이 서로 소진되어 망하기를 기다린 계산이었다 - 이 부분도 이해가 안됩니다.

미국은 41년 12월에 발생한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연합국에 가입하여 아르카디아 회담을 진행했으며, 미국의 기조는 유럽 우선주의가 되었습니다. 일본에게 공격을 받아 전쟁에 참여했음에도 말입니다. 미국은 전체 전력과 생산력의 7할을 유럽에 배분하며 연합국과 소련에 무제한 랜드리스를 지원하였습니다.

미국이 44년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진행한 것은 42, 43년에 독일 유보트의 공격으로 인해 대서양 보급로가 불안정 했으며, 당시 미국에는 상륙 주정의 개념이 부족했고, 그 숫자 또한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42년 디에프 상륙 작전은 위력 정찰 상륙 작전이었으나, 독일이 당시 축조한 대서양 방벽이 연합국의 예상과 달리 너무나 단단하였고, 이에 디에프 상륙군이 큰 피해를 입으며 상륙 준비를 더욱 철저히 진행하였기에 그랬습니다.
lcoy
IP 121.♡.180.210
14:05 2026-09-12 14:05:19
·
@ABDA님
네, 말씀하신 세 가지 모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견해라 생각합니다.
이런 반대 근거를 (아마 의도적으로) 충분히 다루지 않은 거겠죠.
논쟁적 의도를 가진 책이고, 저자도 그걸 숨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비글K
IP 220.♡.58.154
14:02 2026-09-12 14:02:01 / 수정일: 2026-09-12 14:02:54
·
위에 잘 적어두셨네요.

저는 좀더 부정적 스탠스로, 기조에 반하기만 하면 일정 독자가 보장되는 걸 이용한 서적이라고 봅니다. 본문 내용만 보면 음모론에 가까운 책 같네요.

이정도 스탠스면 경술국치도 한국 잘못이라고 책 한권 쓸 수 있습니다 (...)
lcoy
IP 121.♡.180.210
14:08 2026-09-12 14:08:22 / 수정일: 2026-09-12 14:44:45
·
@비글K님
네, 저는 점점 생각하게 되는 게,
인간은 어떤 것도 증명 불가능하고, 각자의 뇌가 만든 매트릭스 안에 갇혀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누구든 어떤 주장이든 할 수 있죠.

뉴튼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더라도
아리스토텔레스 식의 '사과와 땅은 같은 속성을 갖고 있고, 그러니 서로 만나려고 하는 것이다'라는 설명이 자동적으로 반증된 건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제까지나 자기 주장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의 독재 '덕분에' / 박정희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발전한 것이라는 상반되는 두 주장도 가능하고,
정신병자도 자기 머리 속에는 세상을 완벽히 설명하는 체계를 갖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음모론이나 종교나 신화 같은 것도 언제까지나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일 거고,
우리는 서로 결코 설득되지 않을 수 있고.
희망소비자가격
IP 116.♡.220.191
14:16 2026-09-12 14:16:13
·
미국 남북전쟁의 원인을 노예제가 아니라 연방 정부의 권력 남용에 맞선 헌법적 권리 수호라고 주장하는 Lost Cause가 떠오르는 주장이네요
어딜 가든지 수정주의자들이 문제에요
lcoy
IP 121.♡.180.210
14:33 2026-09-12 14:33:18 / 수정일: 2026-09-12 14:38:17
·
@희망소비자가격님
수정주의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는 한데, 사실 이건 상대적인 위치를 가리키는 말이라서 그것 자체로 좋다 나쁘다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합니다.
판단 기준은 따로 있겠죠.
새로운 증거에 근거하는가, 반대 증거를 정직하게 다루는가 같은 거...

그리고 Lost Cause라면 수정주의라기보다는 부정론이 아닐까 합니다.
남부의 연방탈퇴 선언문들이 노예제를 명시적으로 이유로 적어놓았는데 그걸 정면으로 부정하는 작업이니까요.

게다가 '남부의 대의가 옳았다'까지는 남부 한정이었겠지만,
'노예제가 전쟁의 본질은 아니었다'라든가 '전후 재건기는 북부가 남부를 약탈한 암흑기였다'는 부분은 반세기 넘게 미국 학계의 정설이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등의 영화로 재생산되기도 하면서...
그걸 깬 쪽이 수정주의자들이니
이 사례는 오히려 '어딜 가든 수정주의자들이 문제'에 대한 반례에 가깝지 않나 합니다.

뭐 어차피 중요한 얘기는 아닐 거 같지만...
CloudST
IP 182.♡.73.35
14:45 2026-09-12 14:45:52
·
인류 전쟁사만 공부해봐도 얼마나 허접한 주장들인지 알수 있죠.

결국 수정주의는 현대적 관점에서 자기들이 보고싶은 것만 본 과거의 역사라

고대 수메르 시절부터 현대의 이란 전쟁까지 쭉 공부하면 얼마나 얼탱이 없는지 알수 있습니다
lcoy
IP 121.♡.180.210
14:57 2026-09-12 14:57:23
·
@CloudST님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크로체의 말,
역사 인식은 과거 행위자의 사고를 현재의 정신 안에서 재연하는 것이라는 콜링우드의 말,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역사가가 선택하고 배열할 때 비로소 사실이 된다는 E. H. 카의 말 같은 게 떠오르네요.

인식이란 언제나 '나'를 기준으로 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
(인간을 존재시키기 위해 신이 이 우주를 만들어준 것이고,
다른 종들은 마침내 호모 사피엔스가 되기 위한 진화 과정 속에 있었던 것처럼 느끼는 것도 그렇고...)

뭐 그렇다고 그것이 곧장 상대주의로 이어지지는 않겠죠.
이 책에서도 사실 검증이 가능한 것들과 관점이나 해석의 차이인 것들이 섞여있는 것일 테고...
CloudST
IP 182.♡.73.35
15:04 2026-09-12 15:04:20
·
@lcoy님 네 맞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기록들을 보는게 중요하죠. 어떤 한가지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것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것이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자료를 취사선택하는 일은 음모론에 불과합니다
페이퍼백
IP 14.♡.30.73
15:34 2026-09-12 15:34:01
·
원래 사학이 사료에 대한 해석이죠.

새로운 1차 사료나 의미있는 2차 사료가 나오고,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해지면 다양한 학설들이 나오는 건데
많은 분들이 특정한 역사 현상에는 확고한 해석 하나만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흥미로운 자료와 해석이 담긴 재미있는 책 같은데
그 책 소개 한 번 하셨을 뿐인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섬마을생산직
IP 106.♡.11.213
16:54 2026-09-12 16:54:21
·
다른 관점의 역사 해석이라기 보다는 무슨 대체 역사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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