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9월 11일은 아직 하루전이긴 하지만, 갑자기 그때 기억이 납니다.
오랜 해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이었습니다.
대한항공 비행기는 알래스카를 지나서, 막 날짜 변경선을 넘기 직전이었습니다.
저는 비행기에 타면 GPS 위성 항공 네비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날짜 변경선을 넘기 바로 전 비행기의 GPS 항적이 갑자기 거의 180도로 바뀌어 다시 앵커리지 쪽으로 휘어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한순간 네비의 오류라고 생각 했습니다.
곧 기장의 다급한 영어 방송이 흘러 나왔습니다.
기장의 영어는 너무나 최악이었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미국 뉴욕의 무역센터가 공격 받아 무너졌습니다"
"미사일 또는 항공기에 의한 공격으로 보입니다"
"우리 비행기는 즉각적인 착륙을 지시 받았습니다"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고, 기장의 영어 발음이 좋지 않아서 미국인들도 어떤 상황인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송 중간에 분명히 들리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Attacked by missile or plane..."
기장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딘가로 부터 메시지를 받아 방송을 하는 것 같았고 그러니 그 조차도 너무 황당한 상황이었을겁니다. 갑자기 착륙을 지시받은 것도 그렇고.
승객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내용을 정리하면, 미국 뉴욕이 미사일 또는 항공기 공격을 받았다는 것인데, 세상에 미국이 공격 받을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세계대전 밖에는 없었습니다.
비행기의 미국인들의 혼란은 몇배 더 심각했습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상황을 확인하고자 했으나 정보가 너무나 없었습니다.
비행기는 곧 앵커리지에 착륙 했습니다.
그곳에서 3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버스를 갈아타고 알래스카의 시골 바닷가 마을의 작은 호텔로 옮겨져 3일을 지내다가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앵커리지에 거의 남았습니다.
그때는 사건 발생 겨우 몇시간 지난 상태라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이고 전화도 불통이라, 우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전면적인 전쟁이 일어났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그곳에 남아서 어떻게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돌아가서 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행동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앵커리지에 내린 순간부터 최대 24시간 동안은 전화를 비롯한 모든 통신이 불가능 했던 것 같습나다. 가족들에게 연락도 당연히 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거의 아침 새벽에 회사로 부터 제가 도착했는지 전화를 받으셨는데, 미국의 상황을 아직 알기 전이셨죠.
회사가 꼭두새벽부터 전화 해서 아들이 왔는지 물으니 도대체 왜 그러냐고 계속 물었고, 그제서야 TV 를 켜서 뉴스를 보시라고 했답니다. 전화 연락은 그로부터 하루는 지나서 가능했으니 한국에서도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되었지만, 그때는 참...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상황이 좀 정리되었을 때 부터는 알래스카 시골 마을에서 나름 조용히 잘 있다 왔습니다. 공짜로 자고 먹고 유유자적 하면서 지냈습니다.
나중에 어렵게 가족과 회사와 연락이 되었는데, 부서장이 언제까지 거기 있을거냐며 당장 귀국하라고 했던 말이 생각 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귀국하라고 하는지 참 불만이었지만 그 당시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언제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던 터라, 버스를 찾아 타고 가까운 큰 도시로 가서 렌터카를 빌려서 캐나다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일정을 세웠습니다. 말이 쉽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방을 메고 그 넓은 알래스카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여 캐나다까지 가야 했습니다. 미국은 모든 비행기 운항이 중지된 상태었으니까요.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잠든 3일째 새벽에 요란한 호텔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는데 바로 이동한다는 전화였습니다.
추운 새벽에 갑자기 일어나 짐을 챙기고 몽롱한 정신으로 전세버스를 타고 다시 앵커리지 공항을 거쳐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알래스카를 횡단하여 캐나다를 거쳐 귀국하는 수고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9월11일만 되면 이때의 기억이 떠 오릅니다.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달렸던 광활한 알래스카의 산맥과 평원, 만년설이 쌓인 높은 산, 거세게 휘몰아치며 흐르던 빙하수로 가득한 계곡. 자기 나라에 닥친 전쟁에 망설임 없이 돌아가겠다던 사람들.
특히 기억에 남는 한 순간을 고르라면,
GPS 비행기 네비 화면상의 궤적이 다시 앵커리지로 향하던 순간 들려 오던 기정의 서투른 영어 방송 입니다.
아침에 사태가 발생해서 2~3일 근처 호텔에 계시다가 극적으로 자리 남아서 탈출하셨던 기억이
댄공에 도착편 계속 알아보다가 제가 그때 인천공항에 모시러 갔던 기억이 나네요
(보스턴 로건공항 發)
1990년대엔 미동부에서 바로 오는 직항이 없어 늘 앵커리지에 들러 주유하고 왔습니다.
덕분에 북극바람 쐬며 밖에서 담배 피워볼 수 있었죠.
그땐 보스턴에서 김포까지 무려 29시간을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었습니다. ㅡㅡ
저는 실리콘밸리에 살고 있어서 피해는 없었는데,
전미국이 충격이였던건 사실입니다.
엄청난 무용담입니다. ㄷㄷ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죄석 모니터에 비행기 운항 궤적 보여주는 그 화면 말입니다.당시에도 좌석 모니터에 그런 화면은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