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방선거는 지역의 현안을 중심으로 정책대결을 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정책보다는 대통령과의 친밀함을 가장 큰 무기로 내세웠지요.
내란 이후 민주진영의 우세가 확정적인 상황이라서, 민주당의 당내 경선이 본선보다 더 치열했던 지역이 많았는데, 예비후보들은 정책은 뒷전이고 누가 더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인가를 강조하는데 열을 올렸습니다.
민주당 전당대회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누가 더 대통령의 뜻을 잘 알고 함께 하는가가 핵심이었고요.
선거 기간 내내 친명과 반명이 핵심 키워드였죠.
그리고 아직도 그 여파가 계속되네요.
예전에 박근혜 정부 때 국민의힘 의원들이 서로 자기가 진짜 친박이라고 싸우던 일이 생각납니다.(윤석열 정부의 친윤 싸움도 똑같고요.)
국민의힘은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많이 부족하니까 응당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비웃었는데, 민주당에서도 그러하니 참 씁쓸합니다.
2.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민주주의는 시민(국민)이 주권자인 정치체제입니다.
주권은 사회의 약속(법)이나 행위(정책) 등을 결정하는 권리죠.
그러니까 우리 사회의 법과 정책을 결정하는 주체는 바로 우리 시민(국민)인 거죠.
다만, 시민의 수가 너무 많아서 모두가 직접 결정에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한 겁니다.
국민의 대표(국회의원)로 의회를 구성하고, 행정부의 수장(대통령)을 뽑아 국정을 운영하게 한 거죠.
이렇게 권리를 위임받은 자(대통령, 국회의원)에게는 위임받은 수만큼의 권한(권력)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한 개인의 권리를 넘어서는 거대한 권력은 남용의 유혹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남용을 막을 장치가 반드시 필요한데, 관련한 여러 장치들을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견제·감시·비판”입니다.
3.
행정부(대통령)와 입법부(국회)는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입법부에는 감사, 청문, 예산 심의 등의 강력한 견제 권한이 있고, 행정부에는 법률에 대한 거부권이 있습니다.
간혹 이것을 대립 관계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완과 지원의 관계입니다.(감시 대신 모니터링이라고 하면 뉘앙스가 달라지지요.)
입법부가 ‘사회의 가치를 실현하고 공공의 이익이 되는 정책’을 입법하면 행정부는 예산을 편성하고 관련 조직을 만들어서 적극 운영해야 하고, 행정부가 어떤 올바른 정책을 시행하려고 하면 입법부는 입법이나 예산 심의·의결로 이를 지원해야 합니다.
만일 어느 한쪽의 역할이 지지부진하면 반대쪽에서 독려하거나 쓴 소리를 해야 하고, 어느 한쪽이 아예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것 같으면 이를 비판하고 바로잡기 위한 노력(보완)을 해야 합니다.
권리를 위임한 국민의 이익(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죠.
4.
일반적으로 국회의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여당일 경우, 당의 정책 방향과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큰 틀에서 같기 때문에 국정운영이 수월(입법 및 예산 의결 등)할 수 있고, 반대로 야당이 다수당일 경우 특정 정책에 대해서 반대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당이든 야당이든, 대통령의 정책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이 설 경우 강력하게 지원해야 하고, 잘못된 정책이라는 판단이 설 경우 비판하고 수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물론 그 판단은 사적인 판단이 아닌 숙의 과정(공론화)을 거친 공적 판단이어야 하고요.(기득권·언론이 의도를 가지고 조장한 여론에는 거리를 두어야겠지요.)
무조건적인 찬성, 무조건적인 반대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며, 직무유기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여당이라고 해도 견제와 감시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의구심이 들면 바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야당이라고 해도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올바른 정책이라는 판단이 서면 적극 지원해야 하고요.
입법과 행정이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우리 사회가 안전하고 공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5.
입법부와 행정부의 강력한 상호 견제·감시·비판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며, 이는 권리를 위임받은 자의 책무입니다.
그런데 여당이라고 해서 반드시 대통령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요?
대통령의 정책이 공론화를 거친 의회의 판단에 부합된다면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거나 보다 적극적으로 반론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정을 요구하거나 아예 반대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의 뜻에 따르는 게 아니라 주권자(국민)의 뜻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국민의 뜻이 대통령의 뜻이 될 수는 있지만, 대통령의 뜻이 국민의 뜻이 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의 뜻에 따르는 자는 충신이고, 반대하는 자는 역적이라는 논리는 권위주의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반민주적인 가치관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위 친명과 반명을 구분하는 행위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아주 잘못된 행위라고 판단합니다.
개인적으로, 만일 그런 것을 용인하는 대통령이 있다면 그는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독재자라고 생각합니다.(박근혜, 윤석열이 그러했죠.)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친명 혹은 반명 중 어느 쪽을 더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구분 자체가 반민주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라면, 사안별로 주권자의 목소리를 듣고 판단해야지 대통령의 뜻에 따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국회와 대통령은 상호 보완과 지원을 위한 수평적인 관계이지, 제왕에 종속된 관계가 아닙니다.
국회의원은 주권자로부터 결정 권한(주권)을 위임받은 독립된 헌법기관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게 입법하는 여당 의원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응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권자인 국민의 이익이 보호됩니다.
6.
지금까지의 내용은, 민주주의 시스템 내에서 입법부의 역할·책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최근 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일부 지지자들의 행태를 비판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아니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비판입니다.
무릇 비판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판의 타당성(혹은 부당성)을 검증하려는 토론(반론) 또한 건강한 현상이고 민주적 절차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비판하는 행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반민주적인 행위입니다.
민주당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수준이 국민의힘보다는 높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부 의원들이나 지지자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7.
예전보다는 많이 성숙해진 최근에도 이런 반민주적인 세력 다툼이 유효한 것은, 논리 대신 우상화를 선택한 지지자, 세력 다툼이 있어야 줄을 대고 자신의 이익을 꾀할 수 있는 실력 없는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부를 알기는 어렵겠지만, 잘 드러나는 일부 정치인들의 발언이나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이 국민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인지, 사욕을 탐하는 정치인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에 가까운 정치인은 국민의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에도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정치인을 국회로 보낸 것은 국민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방 발전 위해서는 수도권의 비난을 감수하고 진행하는 것 외에 다른 길도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옳지만 개개인들의 반대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사안도 있는겁니다.
우리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약점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민주주의의 약점(이기적 다수)은 시스템이 가진 불가피한 약점이 아니라 시스템을 잘 운영하지 못함에서 발생하는 보완할 수 있는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약점에 대한 이해가 더 깊이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합니다.
지방 발전이 나라를 위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수도권 주권자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그들의 이익이 될 수도 있고요.(평생을 수도권에 살고 있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얼마나 충분한 정보를 가졌고 얼마나 충분한 토론을 했는가 생각해보면 저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의 재정 자립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인구, 충분하고 안전한 생활 인프라, 일자리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방 발전의 기본 방향이고 이것이 국가(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왜 필요한지 쉽게 떠올리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상대적 다수는 아니라고 봅니다.
만일 충분한 정보와 치열한 공론화 과정이 있었는데도 과반이 반대한다면 설득에 실패한 것이고, 그것이 옳다는 것은 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지 전체 주권자의 옮음은 아닙니다.
물론 훗날 선택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건 주권자의 책임이고요.
반면에 올바른 숙의과정이 없었다면,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득권의 방해 때문이든 주권자의 무관심 때문이든, 정보 부족과 부실한 공론화 과정에서 나온 결과를 두고 이를 민주주의 시스템의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권위주의 문화가 민주적 사고를 방해한다고 해서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운영의 문제점은, 언젠가는 어느 수준까지 극복되어질 것이고, 더디지만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 때 국민의힘 의원들이 서로 자기가 진짜 친박이라고 싸우던 일이 생각납니다.(윤석열 정부의 친윤 싸움도 똑같고요.)
이부분은 100%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