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토피 신약치료 생물학적 제제 듀피젠트 치료를 시작한 지 333일이 지났습니다.
333 이 숫자를 놓칠 수 없으니 오늘을 기록합니다.
9월 한 달을 더 보내면 대망의 1년이 됩니다.
아직 한 달이 더 남았지만 1년이 된다는 건 제게 굉장한 의미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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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무엇을 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 적어도 일 년은 보내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당연하게도 살아온 인생 모든 것에 적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부분에서 저만의 이 법칙은 늘 함께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도, 사람을 만났을 때도, 무언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기준은 최소한 일 년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보다 빠른 선택으로 얻은 결과는 늘 후회가 컸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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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이 될 무렵 큰형, 작은형을 따라 신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며칠하고 나니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더라고요.
시작했으니 딱 한 달만 하고 관두자 마음먹고 억지로 겨우겨우 한 달을 채웠습니다.
한 달이 되던 날, 보급소 소장님께 제가 사정이 있어서 더 못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네가 그럴 줄 알았다." 이러는 거예요.
어린 나이지만 그 말이 어마어마하게 싫더라고요.
그 소리를 듣고 나서 뭔 오기가 발동했는지,
"아니오. 더 할게요"
그리고 딱 일 년 동안 더 신문을 돌렸습니다.
그때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평생 잊히지 않을 정도로요.
시간이 가져다주는 경험이 굉장하다는 것을 처음 크게 알게 된 것 같아요.
기다리는 법도, 참아내는 법도, 기술적인 것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대로 배운 것 같아요.
시간은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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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를 앓으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망가진 피부가, 망가진 시스템이 복구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게 더 빠르게 되었으면 할 때가 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피부는 천천히 순서대로 회복되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고 무엇을 더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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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치료를 시작했을 때, 부작용 없이 잘 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알려진 부작용 중에 결막염이 있어서 양안 모두 수술한, 특히 망막수술한 오른쪽은
꽤 걱정이 되었고 실제로도 치료중간 즈음 결막염과 각막염이 한번 오기도 했기에
매우 아슬아슬한 구간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치료 시작하자마자 바로 효과를 보는군에 속했고, 그때로부터 일 년만 잘 지내보자 생각했어요.
가을에 시작해서, 겨울을 보고, 봄을 지나 여름의 중간을 넘어서는 동안 재발은 한 번도 없었고, 체중은 10킬로가량 늘었습니다.
333일 동안 매일 잠을 잘 잤고, 중간에 깨서 못 자거나 새는 날은 하루도 없었습니다.
이게 어마어마한 게, 거의 평생 동안 불면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지난 333일은 (기억나는 순간부터) 처음 잠을 잘 자는, 중간에 깨지 않는 첫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거든요.
덕분에 평생 새벽에 일하던 루틴이 깨지는 바람에 제 그림인생 중 가장 비효율적인 작업삶을 살고 있지만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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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을 잘 버티면
늘 괜찮은 결과와 만났습니다.
괜찮다는 게 성공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고
실패가 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제게는 적어도 일 년, 네 개의 계절입니다.
네 번의 계절을 잘 보내면, 참아내면, 견뎌내면,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치료도 일 년의 시간을 지내는 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11개월 동안 충분히 넘치는 의미가 생겼고,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하기도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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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이를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아토피중증, 알레르기꾸러기인 제가, 우리가 오랑이랑 같이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때, 첫날 하룻밤 지내면서 아토피가 심해지지 않는 걸 보고
그렇다면 '일 년만 잘 버티면 같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으로 매일매일 기록하다 보니
몇 개의 고비를 넘기며 네 개의 계절을 건넜고 그로부터 9년의 시간 동안 같이 살 수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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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붙잡고 세 개 반의 계절,
333일이 지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