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같이 동학농민운동 토벌 하셨는데 역사는 참 어렵습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yellow921024/222950878553. 블로그
출처: https://www.timenews.co.kr/article/1328524. 타임뉴스
아버지와 같이 동학농민운동 토벌 하셨는데 역사는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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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역사란.. ㅎㅎ 재밌어요
불의에 저항해서 일어난 프랑스 혁명도 혁명대의 불의에 저항한 사람들도 다 용감하고 가치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시대상과, 동학 특성을 감안하면... 서로 결이 많이 다르긴 했을거고, 꽤 많이 부딪혔을거 같네요.
안중근 의사는 양반이었던 분으로, 피지배층과 경험과 사고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동학을 현재기준으로 동학운동을 평가할때 민주자유의 가치에 부합하는 면이 있기에 긍정평가를 하는것이죠
이것으로 독립운동에 대한 안중근의사의 업적이 훼손되는것도 아니고 또한 동학을 나쁘게만 볼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굳이 민족이 자부심을 가질수 있는것에 대해 폄훼하는것이 더 악질이라 보입니다
사람을 죽이지 말고 재물을 손상하지 말라.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
라고 했습니다. 타도의 대상은 임금님의 눈과 귀를 멀게하는 간신배들이었습니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임금을 바라보는 농민군과
유교적 세계관에서 농민군을 반역자로 보았던 안중근.
둘다 같은 시대의 상식을 스스로 보인것 뿐입니다. 역사는 지금의 상식과 기준으로 보면 어렵고 당시 기준으로 보면 쉽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말고 재물을 손상하지 말라.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
는게 동학운동의 지도층의 아젠다였겠지만
군은 물자를 빨아먹는 괴물이며
삼국지의 황건적이나 유럽의 십자군같이 국가 단위의 병력이 아닌경우
백성들의 민중봉기가 그 보급을 이어가는건 약탈 이외에 방법이 없었을겁니다
민중봉기는 초창기에는 정당한 명분으로 들불처럼 퍼저가지만
아주 빠른시간내에 거의 없다 시피한 보급으로 인해 도적화 되어 갑니다
자연적으로 약탈이 성행했을것이고 거기에 피해를 본 지주층의 입장이 안중근 의사 집안이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