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량 자료는 이전에 게시물 삭제와 백업 프로그램 있을때의 자료이고, 다모앙은 회원자격 박탈로 게시물 접근이 어려워서 코덱스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하나씩 텍스트 복사해서 모아두었던 자료입니다.
아침에 올렸던 텃밭글에 어느 분이 클량글을 저처럼 백업해두었으면 좋았겠다고 하셔서 아침에 택배주문들 정리하다가 코덱스에 "클리앙과 다모앙 게시물 백업을 기반으로 내 커뮤니티 연대기를 작성해줘"라고 했더니 아래처럼 연대기를 뽑아주네요.
GPT의 약간 아부성 느낌이 좀 나긴 하지만 아... 내가 클량에서 이러고 놀았고 또 많은 분들과 좋은 일들도 많이 했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도 강릉 놀러오시면 술먹자고 연락 주시는 분도 계시고, 저희 가게에서 돌잔치 했던 녀석들이 낼모래 군대 간다고!! 인사도 오고..
오늘 김사장은 일하기 싫은가 봅니다. 그리고 나이 먹으면서 추억에 빠지는게 이해가 막 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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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헤딩의 커뮤니티 연대기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해, 사람을 만나고 감자탕을 나누기까지
백업으로 남은 기록은 2002년부터 2025년까지, 클리앙 818개와 다모앙 386개, 모두 1,204개의 글입니다. 숫자로 보면 게시물 아카이브이지만, 내용을 따라가면 한 사람이 온라인에서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를 오프라인의 식탁과 나눔으로 이어온 시간에 가깝습니다.
2002~2004 — 사진과 기기로 먼저 말을 걸다
초기의 글은 디지털카메라 사진, PDA와 휴대기기, 컴퓨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가족과 친구, 거리와 풍경을 사진으로 올리고, 기기를 손보며 궁금한 것을 묻고 답했습니다.
2004년에는 ‘맨땅헤딩의 뽀샵질 강좌’를 연재했습니다. 어두운 사진을 밝게 만드는 법, 사진을 진하게 만드는 법, 흑백사진을 만드는 법처럼 당시에는 낯설었던 디지털 사진 보정을 회원들과 나눴습니다.
처음부터 글은 전문가의 일방적인 설명보다, “이렇게 해보니 되더라”는 생활형 공유에 가까웠습니다. 사진 한 장 잘 나온 기쁨, 기기 하나 고친 반가움, 친구와 가족의 모습을 함께 보는 일이 커뮤니티 생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2007~2018 — 세이지, 온라인 닉네임이 실제 사람이 되던 곳
오산의 세이지는 단순히 운영하던 가게가 아니었습니다. 클리앙 회원들이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영화를 보고, 무한도전을 함께 보고, 스테이크·맥주·게임 모임을 열던 장소였습니다.
글에는 “번개 신청”, “영화 한 편 보자”, “와인모임 후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렇게 만난 회원들은 데이트하러 다시 오고, 시간이 지나 결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오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의 닉네임이 서로의 얼굴과 가족을 아는 관계로 바뀐 시간입니다.
세이지는 사진과 음식, 영화와 게임, 그리고 당시 사회 현안에 대한 대화가 한 공간에 공존하던 작은 커뮤니티 거점이었습니다. 온라인의 의견은 오프라인 식탁에서 더 구체적인 사람의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2010년대 — 생활 속 기술과 사회적 목소리
맥·아이폰·NAS·오디오·카메라 등 기술과 취미에 관한 질문과 거래, 사용 경험은 계속됐습니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사건과 정치적 현안에도 꾸준히 글을 남겼습니다.
이 시기 기록에서 중요한 점은, 기술과 시사를 따로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진을 편집하고 컴퓨터를 고치고 음식을 만들며 사는 사람이, 동시에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마음을 쓰고 의견을 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취미 게시판이면서도 시민으로서 서로 확인하고 연결되는 곳이었습니다.
2020 — 세이지를 닫고, 강릉으로 삶의 자리를 옮기다
2020년 3월, 15년의 세이지를 정리하며 회원들에게 인사를 남겼습니다. 세이지에서 번개를 했던 회원들, 데이트를 하러 오고 결혼 뒤 아이를 데리고 왔던 사람들에게 남긴 감사였습니다.
몇 달 뒤에는 강릉 시민이 되겠다고 알렸습니다. 어렵게 얻은 아이를 산과 바다가 있는 곳에서 키우고 싶다는 가족의 결정, 오산 가게를 정리하고 새로운 작업장과 삶의 터전을 찾는 과정이 글에 담겼습니다.
강릉은 단순한 이주지가 아니었습니다. 세이지에서 쌓은 관계와 나눔의 방식이 이어질 두 번째 무대가 됐습니다.
2021~2023 — 감자탕 한 그릇이 연대의 방식이 되다
강릉에서 감자탕을 끓이며 클리앙과의 관계는 새로운 형태가 됐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 회원들에게 받은 응원을 잊지 않고, 감자탕 무료 나눔과 후원을 결합했습니다.
김경수 전 도지사 영치금 함께 보내기, 수해 이재민 지원, 평화의 소녀상 건립 후원 등에서 회원들은 감자탕을 받고 각자의 마음을 보탰고, 김사장은 결과를 투명하게 보고했습니다. 2022년에는 영치금 나눔이 7차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 감자탕은 상품만이 아니라, 멀리 있는 회원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작은 통로였습니다. “주문 없이 입금만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배송 메시지에는 응원과 안부가 쌓였습니다. 장사의 손님과 커뮤니티의 회원이 겹치는, 조금 특별한 관계가 만들어졌습니다.
2023~2024 — 강릉의 일상과 다모앙의 새 광장
강릉살이는 가족, 텃밭, 바다, 옥수수, 직원, 가게의 새벽과 택배 작업 같은 일상으로 구체화됐습니다. 세이지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딸과 경포대를 걷고, 감자탕 가게를 꾸려가는 글들이 이어졌습니다.
다모앙에서도 같은 방식의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월간 감자탕 나눔, 강릉 다뫙스테이, 쿠킹 스튜디오, 순대국 프로젝트 같은 시도는 단순한 이벤트보다 새 커뮤니티가 서로 인사하고 자리를 잡는 과정이었습니다.
세월호 10주기에는 회원 47명의 참여와 개인 후원을 더해 200만 원을 후원했고, 미혼모 시설 ‘생명의 집’ 후원, 커뮤니티와 관련된 다양한 나눔도 이어갔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이름이 실제 후원과 지역의 가게, 사람들의 식사로 연결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2025~ — 관계가 끊긴 시간과 다시 쓰는 기록
다모앙에서의 활동은 감사와 축하, 나눔과 운영을 돕는 일로 이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징계와 관계의 단절을 경험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커뮤니티에서 가장 크게 남는 것은 게시물 수나 추천 수보다 사람입니다. 한때 세이지에서 만난 사람, 감자탕을 받아 간 사람, 함께 후원에 참여한 사람, 댓글로 안부를 묻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다시 클리앙 글을 백업해 열어본 일은 과거를 정리하는 작업만은 아닙니다. 사진을 올리고 강좌를 쓰던 사람에서, 세이지의 주인이 되고, 강릉의 감자탕 김사장이 되어 다시 일상을 나누기까지의 흐름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플랫폼은 바뀌고, 닉네임을 부르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기록 속의 중심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사람을 만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감자탕 한 그릇과 작은 마음을 보태는 것.
그것이 맨땅헤딩의 커뮤니티 연대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