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예전 클리앙 내 글 백업을 열어봤습니다. 처음에는 예전 아이폰 글이나 사진 몇 장 정도겠지 했는데, 2000년대 초반부터 2024년까지 글이 800개가 넘게 있더군요. 한참을 훑어보는데 기기 이름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결국 사람들 얼굴과 그때의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세이지 이야기가 정말 많았습니다. 오산에서 식당을 하면서 클리앙 분들과 와인 마시고, 무한도전 같이 보고, 영화도 보고, 맥주와 게임기 놓고 번개도 했습니다. 처음 오신 분이 다음엔 연인과 오시고, 나중에는 결혼해서 아이를 데리고 오시는 모습도 봤습니다. 온라인에서 닉네임으로 먼저 알던 분들이 어느새 친구가 되고, 가게의 오래된 손님이 되는 일이 신기하면서도 참 좋았습니다. 2010년 아이티 지진 때 열었던 와인모임과 자선경매도 기억납니다. 파스타 만들고 와인 마시고 웃고 떠들다가 회원님들과 함께 모은 돈을 긴급구호기금으로 보냈습니다.
세이지는 15년 만에 문을 닫았고, 저는 가족과 함께 강릉으로 왔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새 일을 시작하며 감자탕을 끓이고 온라인 판매를 배우고, 포장과 쇼핑몰을 직접 만지며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그 시작에 클리앙 분들이 정말 큰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주문도 해주시고, 조언도 해주시고, “강릉 놀러 가면 꼭 들러보고 싶다”는 말도 많이 해주셨지요. 그때 언젠가 꼭 이 마음을 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감자탕 나눔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과 자가격리 중인 클량 회원들에게 뜨거운 국물을 보내드리고, 재난 현장과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감자탕을 보냈습니다. 김경수 전 도지사님 영치금 모금 때는 감자탕을 무료로 제공하고, 판매 수익이 아니라 판매금액 전부를 모아 클리앙 이름으로 전달했습니다. 그렇게 보내드린 영치금이 천만 원 정도 되었습니다. 음식 한 그릇이 누군가의 마음과 또 다른 마음을 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참 큰 힘이 됐습니다.

잠시 다모앙으로 옮겨가 활동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클리앙 회원님들께 받은 마음을 돌려드릴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부족했던 서버비용을 위해 매달 수백만 원의 광고비와 브랜드 사용료를 내며 함께했고, 운영자분이 부가세를 미처 챙겨놓지 못해 어려운 상황이 됐을 때에는 감자탕 판매를 통해 회원님들과 부가세도 모아 전달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늘 많지 않았지만, 받은 도움을 조금이라도 다시 흘려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회원자격이 박탈되면서 약 1년간 커뮤니티 활동을 쉬게 됐습니다. 그곳 주인장이 보낸 법무법인 문서도 받아보고, 가게마저 박살이 났었죠. 그때 가장 아팠던 건 글을 못 쓰는 일보다도, 근 30년 가까이 쌓아온 추억과 회원님들과의 관계가 한순간에 끊긴 듯한 허탈함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많이 아팠나 봅니다. 작년 여름에는 몇 달을 출근도 못 하고, 바다가 보이는 절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때는 왜 이렇게 힘든지, 언제쯤 다시 괜찮아질지 잘 모르겠더군요.
올 봄 부터는 거의 방치했던 가게를 조금씩 추슬렀습니다. 최근에는 정신 차리고 다시 감자탕을 끓이고 있습니다. 아직 회복까지는 먼 길 이지만,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휴일인 오늘도 몇 군데 오픈몰 입점 준비를 하려고 아침부터 가게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오기 전 마눌님 눈치가 조금 이상했습니다.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병원으로 출근하며 힘들어하는데,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했거든요. 가게에 나와 청소를 해놓고 책상에 앉아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헐… 내일이 마눌님 생일입니다. 죽을 뻔했네요. 내일 어떤 이벤트를 해드려야 할지, 집에 가면 딸들과 비밀 작전회의를 해봐야겠습니다. ㅎㅎ
세월 따라 저도 클리앙도 계속 변하는 중이지만, 저는 클리앙을 쪼매 사랑합니다. ^^
집에서는 딸램이 뭔가 준비중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