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안상호는 친일파 행적으로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 안상호는 1916년 11월 29일 결성된 대정실업친목회에 윤치호 등과 함께 평의원으로 참여했다. 대정친목회는 1910년 일제가 강제로 조선을 병탄한 뒤 모든 결사를 금지시켰던 무단 통치기 시절의 유일한 단체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정친목회를 "서울에서 조직됐던 친일 단체"로 정의하고 조선 민중이 일제 무단정치에 순응하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했다고 설명한다.
안상호의 가족도 일제 동화정책 선전 사례로 등장했다. 매일신보는 1916년 10월 21일 조선인 유력자들의 일본인 학교 자녀 교육을 '일선동화' 성과로 선전하면서 안상호를 사례에 포함했다. 안상호는 1918년 12월 매일신보와의 추가 인터뷰 '완연히 내지화된 의사 안상호 씨의 가정'에서 "조선 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다"고 했다. 또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은 조금도 못 먹는다"라며 자녀들까지 일본식으로 양육하는 내선일체 생활상을 드러낸 바 있다. # 다만 해당 인터뷰 외 직접적인 친일 단체 활동 혹은 부역 행적이 입증 및 등재 기준을 충족할 정도로 밝혀지지 않아[9] 친일인명사전에는 등록되지 않았다.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직책은 자문이나 의결을 맡았는데, 당시 일제는 친일 단체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사회적 명망이 있는 인물들을 무단으로 명단에 올리거나 단순 이름만 빌리는 경우가 많았다. 안상호가 구체적으로 어떤 친일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했는지를 증명하는 실무 기록 역시 밝혀지지 않았으며, 1927년에 사망해 친일 행위를 했더라도 그 지속성을 판단하기에는 부족한 면모가 있다
위키 가보니 이리 바뀌어있는데 무단 도용하거나 이름 빌린다쳐도
일제강점기 초기 그것도 경술국치 바로 다음에 만들어진 조직에 이름 올라갈 정도면 그쪽에 친화적인 상당히 급높은 인사는 맞는것같은데..
2. 해당 인터뷰 외 직접적인 친일 단체 활동 혹은 부역 행적이 입증 및 등재 기준을 충족할 정도로 밝혀지지 않아[9] 친일인명사전에는 등록되지 않았다.
이 정도로 판단해야죠. 또 우르르 몰려가 마녀사냥하면 안되고요.
1921년 1월 대회에서 기구를 개편해 일본인은 고문으로 제일선에서 물러나고 주로 조선귀족·대지주·예속자본가들의 친일 단체로 탈바꿈하였다. 회장에 민영기(閔泳綺), 부회장에 조진태(趙鎭泰), 이사에 예종석(芮宗錫) 외 14명, 평의원에 백완혁(白完爀)외 27명, 평의장에 한상룡(韓相龍), 고문에는 이완용(李完用)·민영휘(閔泳徽)·이윤용(李允用)이 뽑히고 회원도 250명으로 늘어났다.
간부의 진용으로도 분명히 알 수 있듯이, 3·1운동에 반대한 대지주·예속자본가·조선귀족으로 구성된 명실상부한 친일 단체가 된 것이다. 강령도 고쳐 ① 조선인은 서로 친목하고 덕업을 서로 베풀며 어려움을 서로 구하자 ② 산업의 발달, 증식에 힘써 생활을 안전하고 튼튼하게 하자 ③ 교육의 보급에 힘써 문화의 향상에 이바지하자 등으로 하였다.
이는 곧 민중의 반일 독립 의식을 ‘한·일인 상호 친목’, ‘산업 발달 증식’, ‘교육보급·문화향상’이라는 이른바 일제의 정치 선전의 한 항목인 ‘실력 양성’의 방향으로 왜곡, 유도하려는 데 목적을 둔 것이었다.
일제는 한때 이들 친일파를 앞세워 ‘일선 융화(日鮮融和)’의 정치 선전에 이용하기 위해 『조선일보』를 대정실업친목회의 기관지로 인가해 주었으나, 『조선일보』의 젊은 기자들의 반발로 말미암아 목적은 제대로 달성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일제 당국은 『조선일보』를 잠시 송병준(宋秉畯)에게 인계시켰으나 결국 민족주의자 이승훈(李昇薰)의 손에 넘겨주지 않을 수 없게끔 되었다.
1924년 3일 25일 이들은 한민족의 독립 의식 말살과 일제의 총독 정치의 지지를 목적으로 하는 이른바 각파 합동을 꾀한 각파유지연맹(各派有志聯盟) 발기에 참가하였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4763
한국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무려 고문에 개만도 못한 이완용입니다 그려 ㅎㅎㅎㅎ
그냥 친일파가 아니라 이완용, 송병준과 함께 놀던 네임드 매국노입니다.
제가 예전부터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민족을 배반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 매국노들은 그 자식놈들까지 3족을 멸해야 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파묘에 나온 친일파 집안처럼 부를 누리고 살더라도 떠들지는 말아야지요. 저런 쓰레기 매국노들한테 탄압받아서 끔찍하게 죽음을 당하거나 고통을 받은 당사자들의 후손이 대한민국에 지금도 수십 수백만명입니다.
2. 고종의 전의였고 하필 그 시기에 고종 독살 의혹이 있다.
그냥 요정도로 기억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이 어느 입장인지 쉽게 말하기 전에 일찍 죽었어요. 내선일체의 롤모델같은 역할도 했지만 동시에 조선인 의사를 모아서 일본인 의사들을 상대로 권익운동도 하긴 했어서요. 한 10년 더 살았으면 위치가 확실해 졌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