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7년 차, 5살 아이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외벌이라서 돈이 모이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 키울 때는 돈이 많이 들지 싶었습니다. 원래 돈을 모으거나 알뜰한 성격이 아니었어서 별 신경 안 썼었습니다. 이자 비용은 100만원 조금 안 되게 나갑니다.
그런데 작년 말쯤, 월급 실수령액을 전부 다 쓰는 것은 그렇다 쳐도 성과급까지 전부 생활비로 쓰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 싶어서, 앱에서 카드 내역을 뒤적거려 봤습니다. 가족 카드 발급이 가능한 신용 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아내 이름으로 발급해 준 신용 카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 이름으로 된 카드여도 앱에서 카드 내역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뒤적이게 된 계기는 우연히 앱에서 카드 내역을 보는데, 60만원 결제한 내역이 있더라구요. 뭐에다 썼는지 궁금해 하는 편은 아니긴 한데 처음에는 보이스 피싱 당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 금액을 쓰게 되면 이야기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들은 게 없었어서요. 나중에 물어보니 블랙프라이데이 할인이 많이 되어서 아이 옷을 전부 샀다네요. 몇년치 입을 수 있다고.
그리고 쭉 보다 보니 네이버페이 할부가 많이 걸려 있더라구요. 무이자 할부니까 쓰는 것은 이해가 갔는데, 그게 매달 계속 쌓이니까 순지출이 잘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할부 걸려 있는 건 일단 전부 결제해서 갚았습니다. 아내가 사치가 있는 편은 아닙니다. 순수 생활비 같았습니다.
거기에 본인 보험, 핸드폰 요금 등으로 쓰는 카드가 따로 있어서 한달에 150만원 정도 보내줬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달 나가는 비용은 실수령액을 넘게 되고 성과급까지 다 쓰게 되더라구요.
안 되겠다 싶어서, 아내 카드를 쓰지 말게 하고 가족 카드만 쓰게 했습니다. 기존에 자동이체 해놓은 것들은 결제 카드를 옮겨놓으면 되니까요. 아내는 기분 좋지는 않았겠지만, 저만 돈을 벌기도 하고 소비는 주로 아내가 하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카드 값 지출이 많아지니, 저까지 돈을 쓰면 안되겠다 싶어서 좋아하던 전자 기기도 안 사고, 옷 등도 안 사게 되더라구요. 암묵적으로 서로 개인 용돈이 30만원씩이지만, 개인적으로 쓰는 돈은 10에서 20 정도 되지 않나 싶었습니다. 친구 만나는 것도 1년에 몇 번 안되구요.
그렇게 몇 개월 하니, 월급만으로 생활이 간신히 되는 정도가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또 문득 든 생각이, 지금이야 아이가 어린이집 다녀서 일주일에 3번은 저녁까지 먹고 오고, 저도 월-금 내내 저녁까지 먹고 집에 들어오구요. 그런데 내년에 아이가 유치원 가면 저녁 챙겨줘야 하는데, 생활은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또 조금 지나면 학원까지 보내야 하구요.
그래서 8월 1일부터 수기로 가계부를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한달 정도 해보면 돈이 주로 어디에 쓰이나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지난 결제 내역들 훑어보면 배민, 식료품 사이트, 네이버페이 등이 제일 많더라구요.
아내 집에서 혼자 먹을 반찬들, 아이 간식, 과일 등 이겠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요즘 사실 집에서 밥을 먹지는 않습니다. 주말에는 사먹거나 파스타 같은 거 아내랑 아이 만들어주곤 합니다.
아내 요리가 입맛에 맞는 편이 아니고, 미슐랭 가게처럼 로스되는 식재료가 많더라구요. 사먹는 게 훨씬 싸게 먹히는 것 같아 웬만하면 사먹습니다.
가끔 냉장고 열어보면 이게 냉장고인지 음쓰 냉장고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집에 3L 짜리 음쓰 냉장고가 있는데, 같은 기능을 하고 있더라구요.
다들 비슷하게 살고 계시겠죠. 사실 이렇게 길게 한탄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조금 전 아내가 종종 이용하는 유기농 마트에서 십몇 만원 정도가 결제된 걸 보고 답답해져서 쓰게 됐습니다. 냉장고 열어보니 어제와 달리 깔끔해 졌더라구요. 오래된 반찬들 오늘 싹 음식물쓰레기로 버린 것 같았습니다.
너무 길게 쓴 것 같은데, 너무 개인적인 내용이 많은 것 같아 혹시 지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다가! 집사람이 (적은 보수지만) 직업을 가지고 그 받은 보수가 자기 통장에 찍히고 그 통장에서 자기 출장지 생활비를 지출하게 되니까 돈이 빠져나가고 잔고가 줄어드는 심적 스트레스를 체험하고, 제가 그동안 가게부를 연말 정리하고 말했던 것을 이제 이해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부부가 알아서 씀씀이를 적당하게 줄이고 있습니다.
남편이 10년 넘게 이야기해도 연말 정리 결과에 짜증만 내다가 직접 돈을 벌어보고 써 보니 동감하더군요. 무엇이든지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자기가 직접 체득하는 것이 효과가 좋은 것 같습니다. 그 때가 올 때가지 기다리시는 것도 한가지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