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보완수사권이 폐지되고 수사, 기소의 완전한 분리가 결정되면서 사회적 파장이 상당합니다. 국민들의 여론 속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만큼, 당장 일상의 법적 보호막이 얇아진 것 아니냐는 불안과 걱정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현상입니다.
실제로 보완수사요구권이나 일부 전건 송치 등의 보완책이 마련되었다고는 하나,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를 해주던 시절에 비해 국민이 체감하는 책임감 있는 수사의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보완수사라는 하나의 든든한 보루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고, 당장은 수사 지연으로 인해 서민들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겉으로 보기엔 커 보입니다.
하지만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왜 우리는 굳이 이런 불편함을 무릅쓰고 권력을 쪼개는 길을 택하는가?’
역사를 돌이켜보면 검찰의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은 효율적인 수사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통제 불능의 권력형 비리와 무소불위의 권남용을 낳았던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같은 전문 수사기관이 완전한 자리를 잡기 전까지의 전환기적 진통은 불가피하지만, 권력 독점의 폐단을 막기 위한 사회적 대가는 결코 공짜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효율적인 사회가 곧 좋은 사회'라는 생각입니다.
독재 국가나 비선진국의 법과 정책은 매우 단순하고 속도가 빠릅니다. 통치자의 결단 하나로 수사가 진행되고 판결이 내려지며, 절차적 걸림돌이 없기 때문에 겉으로는 극적인 효율성을 자랑합니다.
반면 선진국과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진입할수록 법 절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고, 권력은 사분오열되어 견제받으며, 행정 처리 속도는 답답할 정도로 느려집니다.
이는 시스템이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리고 특정 권력 기관이 사회 전체를 휘두르는 독재적 통제를 막기 위해 ‘의도적인 불편함과 지연’ 을 제도화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사회가 발전하고 고도화될수록 더 복잡해지고, 더 많은 절차를 요구하며, 결국 구성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체제입니다.
당장 보완수사권 폐지로 인해 수사가 더뎌지고 절차가 까다로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제도가 후퇴해서가 아니라, 권력의 독점을 해체하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세우는 과정에서 치러야 하는 ‘성장통’ 입니다.
효율성과 속도만을 추구했던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조금은 느리고 답답하더라도 권력의 남용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시스템을 안착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더 성숙한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기꺼이 감내해야 할 ‘불편함의 가치’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경찰로 권력이 집중되고 견제가 힘들어지는 구조로 간걸로 받아들이기에 그런거 아닐까요?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곧 검찰이 어떤 형태로든 직접 수사권을 가져야한다는 주장인건데, 저는 이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40년간 검찰이 해온 행태를 볼 때 검찰이 직접수사권을 가져야할만큼 정의롭다는 증거를 저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99만원 불기소 세트에, 유유성씨 조작기소사건, 이재명 대통령 에 대한 자의적 기소, 정경심 교수에 대한 소환 없는 기소에 이르기까지 전혀 브레이크 걸리지 않는 작금의 검찰의 악의와, 이에.공명하는 사법부의 악의만 봐왔을 뿐입니다. 검찰을 뭘 믿고 수사권을 남겨둬야 한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자정능력도 상실한 사람들인데요.
미드 로 앤 오더를 보면 검사가 경찰에게 "이정도로는 부족하니 다른 증거를 찾아오라" 고 보완수사를 지시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옵니다. 경찰 수사가 부족하면 검사(이제는 기소사 일까요?) 는 보완수사를 지시하면 됩니다. 직접보완수사를 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만 가져올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