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살아있을 때 난 존재하지 않았고,
내가 태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이곳에 없었다.
우리가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나 또한 그녀의 길을 따라 간다면
그곳에선 그녀와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니 설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는 내 까다롭고 높은 기준을 충족시켜줄까,
나는 그녀의 까다로운 기준에 충족되는 사람일까
존경하는 대상과의 관계는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허무하게 깨지기 쉽다.
그 이유는 '존경'이란 감정에 이미 놓여있다.
멋대로 기대하고,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강렬한 감정과 얽혀있을 때
인간은 그 기대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한다.
그럼에도 난 그녀와의 만남을 바란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그녀일지라도.
지금 현실에서,
적어도 현실이라 불리는 이 시공간에서,
내가 온전히 공명하여 고독에서 벗어나는 그 찰나를 흠뻑 만끽하게 해줄 존재는 그녀뿐이기에.
그녀 또한 죽는 그 순간까지 지독하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그 고독이기에.
그래서 난 지금 몸서리치게 그녀가 그립다.
그녀의 이름은,
전혜린이다.
우리의 영혼은 몹시도 목말라 있다. 한 개의 자매혼에, 이해하는 마음과 눈에 그것은 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과 영혼이 부딪칠 때, 그 찰나에 우리는 영원을 본다. 시간성을 느낄 수 없게 꽉 찬 순간ㅡ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감득될 수 있는 유일한 영원이다. 그 영원의 순간을 위해서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목말라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그녀의 독백을 생각할 때, 그리고 그녀가 짧은 생애를 통해 몇 번이나 이같은 자매혼과의 만남을 체험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인생은 결코 그녀에게 심술궂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삶은 때때로 그녀에게 미소를 던졌던 것이다.
우리가 마음속에 사랑이 넘쳐흐를 땐 똑같은 사물도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마음속이 어두울 때 주위의 모든 것이 어두워 보이는 것처럼. 아제베도를 만났던 당시의 일기에서도 당연히 그런 점이 반영되어 있다.
새벽부터 미치게 함박눈이 퍼붓고 있다. 지금도 ...... 끝까지 오거라! 눈이여! 젊음의 개가와도 같고 사랑의 축가와도 같이. 눈뭉치가 가끔 지붕에서 떨어진다. "그 여자는 놀라웁다. 언제나 남성적인 이성을 발휘하는 걸 보면"으로 시작하는 마담 누의 발라드를 종일 듣는다.
대체 이같은 행복을 그녀에게 선사해준 아제베도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ㅡ 그리고 교수는 제자의 진지한 질문에 대해 무언가 만족스런 해답을 해줘야만 했다. 두 사람의 희귀한 '만남'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적어도 이야기는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둘은 독일어 강의가 있는 매주 수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만났다'. 수요일은 두 사람이 만나는 날로 아주 정해놓고 있었다. 둘이 만날 때면 불꽃튀는 대화가 오고갔다. 무슨 얘기를 나누었을까? 서로 강렬하게 이끌리고 있는 남녀 사이에서 나눌 수 있는 모든 얘기를 다 했다. 혜린이 이 순수하고 열정적인 젊은 혼에게 이른바 '이데아(idea)의 수정'을 베풂으로써 정신의 충일을 맛보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그는 그녀에게 영감을 받아 넋 속에서 타오르는 창조적 불꽃에 스스로 도취되었다. 그는 그녀의 정신과 지성에 현혹되었고 경탄했으며 그녀는 그의 젊음과 정열에 매혹되고 자신에게 바치는 찬탄에 도취되었다.
한동안 둘은 몹시 행복했다. 이런 상태가 겨울까지 계속되었다. 아무런 장애도 재난도 없이. 그는 매일매일 산문시를 써서 그녀에게 바쳤고 그녀는 편지로써 그에 보답했다. 그녀 속에서 노상 그녀를 괴롭히던 심술궂은 악마도 이때는 잠잠했다. 한동안 운명은 그녀의 편인 듯했다.
이 신선하고 지적 욕구에 넘치는, 열정적인 젊은 혼과의 만남에서 혜린은 일종의 '초월'의 순간을 체험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고귀한 순간, 가득찬 순간이며 자기 의식과 타자 의식이 완전히 융합되어 하나가 된 대자즉자존재의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어떤 의미로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혜린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 순간만이 바랄 가치가 있고 그 순간은 포착되고 응결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생의 가치의 전부인 것이다. 마치 생 그 자체처럼 허무한......"이라고 혜린이 고백한 것처럼 그녀는 평생에 걸쳐 이 초월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끝없는 도전을 감행했다고 할 수 있다.
실상 이같은 초월의 순간이란 참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이고 혜린 자신 그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우리는 현실에서 초월의 순간을 '체험'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은 무수히 가능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는 대상과의 ㅡ 사랑하는 대상과의 합일 속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용이하게 그러한 순간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와의 만남에서 혜린이 그렇듯 희귀한 초월의 순간을 체험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당시의 일기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녀의 증언을 얻어볼 수는 없지만, 당시 그녀가 그에게 보낸 편지 속에는 이 '초월의 순간'이란 표현이 빈번히 나타났다는 것으로 미루어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의 절교 편지(이유를 정직하게 밝힌)에 대한 혜린의 회신은 요컨대 다음 같은 말로 끝맺고 있었다. "나는 한 마리 독수리가 날아온 줄로 알았더니 날아간 것은 한 마리 참새였어!" 이것은 어느 땐가 앙드레 지드가 로랭 롤랑을 일러 씁쓰레하게 내뱉었던 말, "한때의 독수리, 그대도 결국 둥지를 틀었구려!"를 생각나게 한다. 과연 혜린이다운 말이다. 결국 온갖 사랑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고 대상은 자신이 만들어낸 일루전일 뿐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따름이었다.
본질은 나이고
현실은, 태양은 나인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분신,
자아의 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혜린 역시 이같은 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음속 깊이에선 노상 자신이 매달릴 환상을 애타게 갈구하고 있었다. "일루전이라도 좋으니까, 아니 거짓이라도 좋으니까 순수한 고뇌를 바칠 수 있는 절대의 대상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아마도 그녀의 감정은 그녀의 정신에 반해서 너무도 자주 보통 여자가 되고 싶었으리라. 그녀라 한들 소박한 여성의 목가적 가정의 행복을 어찌 꿈구지 않았겠는가. "행복하게 시민적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을 볼 때 그 속에서 안분하는 지성과 깨달음과 겸허, 인간에의 근본적인 따스함......을 볼 때 부럽고 존경의 염이 일어난ㄴ다. 나는 영원히 그런 사회에로 문이 닫힌 것 같은 어두운 체념과 절망과 함께..... 무엇에도, 무엇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한쌍의 남녀가 만나서 자족하고 행복을 느끼는 생활 분위기를 구성하면서 일생을 보내도록 되어있는 동물인 것 같다. 그것이 정상이다. 만약 그렇지 못할 때, 즉 어딘지 병적일 때 그 인간과 세계와의 대립은 극대화되고 그 대립의 고뇌에서 예술이나 철학이 창조되는 것이고 그것을 창조하고 있는 사람의 나날은 몸서리치는 고독감에 뒤덮여 있을 것이다"라는 그녀의 고백을 읽어보라.
혜린에게 있어선 사랑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어디까지나 하나의 '매개' 역할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게다. 어떤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즉 초월의 상태, 꽉 찬 충일의 순간을 선사해주는 매개였던 것이다. 몸서리나는 고독과 냉엄한 실존의식을 잊게 해주는...... (그녀는 일생에 여러 번 사랑을 했겠지만 대체로 이같은 패턴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비록 "찰나에만 가능한 이해나 찬미나 친화력...... 그에 뒤따르는 보다 강한 고독의 쓴맛을 언제나 또다시 맛보게 되었으맂라도. 그러므로 이같은 초월의 순간을 체험케 해준 대상에 대해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원망의 마음을 가질 수는 없었다.
<어떤 날>
나의 운명이 고독이라면,
그렇다, 그것도 좋다.
이 거대한 도회의 기구 속에서
나는 허무를 뼛속까지 씹어보자.
몇 번씩 몇 번씩
나는 죽고 죽음 속에서,
또 새로운 누에가 눈뜨듯
또 한번,
또 한번!
하면서
나는 고쳐 사는 것이다.
다시 더!
하고 소리치며
나는 웃고 다시 사는 것이다.
과거는 그림자 같은 것, 창백한 것,
본질은 나이고
현실은, 태양은 나인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분신,
자아의 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작업합니다.
글과 사진, 영상 그리고 설치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