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차 세계대전사를 좋아하는 초보 역덕입니다.
AI를 활용하여 작성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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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미국은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을 잠재적인 적으로 판단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영국의 붕괴만은 막아야 한다고 보았지만, 소련을 구하기 위해 미국의 공장과 선박을 내줄 생각은 없었다. 미국의 무기와 차량, 식량과 연료는 영국으로 향했으나 소련에는 단 한 척의 수송선도 보내지지 않았다.
렌드리스가 사라진 소련군은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전차와 야포는 계속 생산됐지만, 그것들을 움직일 트럭과 기관차, 무전기와 항공유가 부족했다. 병력은 있었으나 필요한 곳으로 제때 이동하지 못했고, 전선에 도착한 병사들에게 식량과 탄약을 공급하기도 어려웠다.
1942년 겨울, 스탈린그라드에서 역사는 갈라졌다. 소련군은 독일 제6군을 포위하려 했지만 작전을 지속할 차량과 연료가 부족했다. 반대로 독일군은 남부전선에 남은 기갑예비대를 집중해 소련군의 포위망을 돌파했다. 스탈린그라드는 함락되었고, 독일군은 이어서 코카서스 유전지대를 차지했다. 석유를 얻은 나치 독일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1944년, 독일군은 모스크바를 점령했다. 수도를 잃은 소련 정부는 우랄산맥 너머로 후퇴했지만,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할 힘이 없었다. 영국은 홀로 유럽 대륙에 상륙할 능력이 없었고, 미국도 독일과의 전면전을 피했다. 결국 소련은 유럽 러시아 대부분과 주요 유전지대를 나치 독일에 넘기는 조건으로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우랄산맥은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의 새로운 경계가 되었다.
그러나 승리한 나치 독일에서도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나치 지도부 내부에서는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군부와 친위대, 당 관료들은 광대한 점령지를 누가 지배할 것인지를 두고 충돌했다. 히틀러는 자신이 길러낸 권력집단들의 음모 속에서 암살되었고, 그의 뒤를 이은 2인자는 새로운 총통으로 취임했다.
새 정부는 히틀러 개인의 광기 대신 더 차갑고 조직적인 제국을 만들었다. 나치 독일은 점령한 유럽과 러시아 서부를 여러 행정구역으로 분할하고, 현지인을 강제로 이주시키며 독일인 정착촌을 건설했다. 겉으로는 전쟁이 끝났지만, 동유럽에서는 저항과 학살이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다.
소련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패전 책임을 둘러싼 숙청이 이어지던 중 스탈린이 암살되자 공산당의 권위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중앙아시아와 캅카스, 극동의 여러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했고, 남아 있던 러시아 지역에서는 군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권력을 차지하려 했다.
수 년 간의 내전 끝에 러시아 공화국이 성립했다. 유럽의 옛 수도들을 모두 잃은 러시아는 노보시비르스크를 새로운 수도로 정했다. 우랄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광대한 국토를 보유했지만 인구와 산업시설 대부분을 잃은 러시아는 한동안 거대한 난민 국가에 불과했다.
유럽이 나치 독일의 지배 아래 재편되는 동안 태평양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했고, 미국은 마침내 전면전에 돌입했다. 전쟁은 원래의 역사와 비슷하게 흘러갔다. 일본 해군은 미드웨이와 필리핀해에서 항공모함 전력을 잃었고, 미군은 태평양의 섬들을 차례로 점령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성공한 미국은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일본 정부는 무조건 항복했고, 일본 제국은 해체되었다. 조선은 해방되었다.
소련이 이미 붕괴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을 대신할 강력한 우방이 필요했고, 러시아 공화국 역시 독일과 일본 사이에서 완충국이 될 통일 한국을 원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한반도 전체뿐 아니라 조선인 거주자가 많았던 간도 지역까지 영토로 인정받았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넓은 만주 평원과 맞닿은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강대국들의 국경과 마주한 전선국가로 출발했다.
중국에서는 국공내전이 끝나지 않았다. 공산당은 베이징과 만주 서부를 중심으로 북중국을 장악했고, 국민당은 난징과 상하이, 광저우를 중심으로 남중국을 지배했다. 양측은 서로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주장했지만, 어느 쪽도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리지 못했다. 동아시아에는 두 개의 중국, 통일 대한민국, 재건된 일본, 그리고 노보시비르스크의 러시아 공화국이 불안하게 공존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군사국가에 가까운 길을 걸었다. 한반도 북부와 간도의 넓은 평원을 지키려면 강력한 기갑전력이 필요했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기술과 자본을 받아 전차와 자주포, 장갑차와 유도무기를 집중적으로 개발했다. 수십 년 뒤 한국군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기갑부대를 보유한 군대로 성장했다.
한국군의 전쟁계획은 언제나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독일군이 우랄산맥을 넘어온다면 누가 시베리아 평원에서 그들을 막을 것인가?’ 21세기에 들어서자 그 질문은 더 이상 가정이 아니게 되었다. 나치 독일은 유럽 러시아의 석유와 곡물, 산업시설을 이용해 세계 최대의 대륙제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독일 지도부는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우랄 동쪽에는 철광석과 석탄, 천연가스와 희귀금속이 묻혀 있었고, 시베리아의 숲과 강, 광대한 토지는 독일 제국이 마지막으로 차지하지 못한 공간이었다.
나치 독일은 수십 년 동안 우랄 국경에 철도와 고속도로, 비행장과 미사일 기지를 건설했다. 러시아 공화국에서는 국경을 넘어오는 정찰기, 독일 특수부대의 활동이 급증했다. 2020년 봄, 독일 총통은 러시아 공화국이 테러리스트와 반독일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군은 국경에 집결했고, 며칠 뒤 수천 대의 전차와 장갑차가 우랄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진격했다.
제3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독일군의 목표는 명확했다. 노보시비르스크를 점령하고 러시아 공화국을 붕괴시킨 뒤, 시베리아 전체를 독일의 영토로 만드는 것이었다. 러시아 혼자서는 독일의 공세를 막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과 남중국, 북중국, 일본, 몽골과 시베리아의 여러 독립국은 독일군이 태평양 연안까지 진출하면 자신들도 차례로 위협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랜 적대관계에 있던 국가들은 독일의 침공 앞에서 동북아시아 연합군을 결성했다.
연합군 내부에서는 누가 독일 기갑부대의 주공을 막을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러시아는 넓은 영토를 갖고 있었지만 병력과 장비가 부족했다. 두 중국은 거대한 육군을 보유했지만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일본은 강력한 해·공군을 보유했으나 대규모 지상전에 투입할 중기갑부대가 많지 않았다.
결국 시베리아의 중앙 평원에서 독일군과 정면으로 맞설 임무는 대한민국 육군에 맡겨졌다. 한국군은 정예 기갑사단과 기계화보병, 자주포와 방공부대를 북쪽으로 이동시켰다. 간도에서 출발한 군용열차와 수송대는 만주와 몽골을 지나 노보시비르스크 서쪽으로 향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서쪽 지평선은 독일군 전차가 일으킨 먼지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두 군대는 노보시비르스크로 이어지는 광대한 평원에서 마주했다. 제3차 세계대전의 향방과 시베리아의 운명, 그리고 나치 독일의 마지막 팽창을 결정할 거대한 충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