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톺아보기

질서를 지키지 않는 노인과 학생들

오차원고양이 ·

조회 1,968 · 공감 7 · 댓글 8

제가 어린 시절 보낸 80년대는 줄 서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줄 선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하철보다 버스를 주로 타던 시절이라 버스가 오면 줄 서지 않고,
좀비에게 쫓기듯 살기 위해 버스 타는 모습이라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줄서기 공중도덕은 세계 최상위 수준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목요일, 여전히 80년대를 사는 듯한 노인과 중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세미나 참석차 오랜만에 마곡지구까지 가야 해서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탔습니다.
그날따라 고장인지 중간역에서 멈춰, 내려서 다음 지하철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내린 승객들은 당연히 기존 대기 줄 뒤로 하나둘 붙었습니다.


그런데 한 노인만 줄을 서지 않고 앞으로 갑니다.
좌우 두 줄 사이, 승객이 내리는 가운데 자리였습니다.
억울하게 중간에 내렸으니 가장 먼저 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야만의 시절인 80년대로 순간 착각한 건지도 모릅니다.


중간에 들른 한 정거장에는 견학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학생들이 가득했습니다.
계속 쏟아져 내려오는 아이들 사이, 여중생들 뒤에 줄을 섰습니다.
잠시 뒤 교복을 대충 걸치거나 다른 옷을 껴입은, 껄렁해 보이려는 남학생 네댓 명이
차가 도착하자 앞의 여학생들을 제치고 먼저 탔습니다.
제 뒤로도 줄은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순간 욱해서 소리쳤습니다.
"저런 개념 없는 것들, 줄을 서야지."
아이들은 무시하고 타더니 다른 칸으로 사라졌습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만큼 공중질서를 잘 지키는 나라가 되었고 그것이 일상인데도,
여전히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줄 서지 않던 중학생은 훗날 아까 본 노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나 한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면 불쾌한 기분이 이상하게 오래갑니다.
모두가 버스에 미친 듯 달려들던 시절이었다면 당연했을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왔습니다.


미꾸라지 한둘이 흙탕물을 만듭니다.
침묵 속에 질서와 상호존중을 지키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 혼자 나댄 사람은
승리감이든 특별하다는 착각이든 무언가를 얻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 훨씬 많은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도 사실입니다.

댓글 8

  1. 조국수호이 · · 공감 1
    무단횡단하는 노인들 칼같이 단속하고
    주택가 실선 주차도 칼같이 단속해야
    나름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죠.
  2. 오차원고양이 ·
    @조국수호이님 맞아요. 노인들 중 무단횡당은 권리처럼 하는 분들이 적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줘.
    제 아내는 운전하는데 어떤 노인이 차가 생생대로애서무단횡단으로 튀어나와 놀라서
    브레이크 밟아고 접촉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 넘어졌는데 타박상 주장해서
    보험으로 처리해주었어요 (황당)
    타인에게 피해는주말라고, 정말 죽고 싶어도 물귀신처럼 타인에게 피해주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3. 불취무귀 · · 공감 1
    중국 극혐 하면서 하는 행동은 중국인 따라 가나 보네요.

    이젠 누가 친중 인지.
  4. 오차원고양이 ·
    @불취무귀님 우리나라도 한때 어글리코리안이라고 해외에서 출입거부 당한 적이 성장기 초반에 많았다고 하더군요. 중국도 예전 중국은 아닐 것 같고, 모든 사람을 다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질서를 지키지 않는 부류들은 있는 것 같아요.
    뉴욕도 무단횡당이 심각했던 기억이 나는데 벌써 8년전이니 지금은 나아졌을지 모르겠네요.
  5. 엔진결함통풍시트 · · 공감 2
    여자들도 만만치 않죠 노인 중년 젊은 여성 불문하고 뭔 새치기를 은근히 많이 하는지 저만해도 일년에 몇번씩 당합니다. 공간만 나면 누가 먼저 온건지 신경도 안쓰고 심지어 마트 계산대에서 자기가 물건이 적으니 먼저 계산해달라고 하던 아줌마도 생각 나네요 거기에 앞문 안잡아주는건 한국사람(주로 여성)말고 본적이 없네요
  6. 오차원고양이 ·
    @엔진결함통풍시트님 저는 겪지는 않아서, 그런 부류들이 아무리 나라가 발전해도 있는 것 같습니다.
  7. judosan · · 공감 1
    지하철에서 양쪽에 서서 문열리고 내리고 대기중에도 앞에서 들어가면 차근차근 들어가는데 갑자기센터로 돌진하는 분들 많아요
    그 자리하나 앉으려구요.
    앉으면 좋다고 자기들끼리 도취해서 말이지요
    가끔이지만 그런거 볼때마다 남녀노소 구분없다는걸
    느낍니다.
    이게 차끌고 다니는 도로로 마찬가지구요
    물롬 일부입니다.
  8. 오차원고양이 · · 공감 1
    @judosan님 대부분은 잘 지키시는데 소수의 돌연변이 같은 분은 계속 존재하네요. 그것까지 법으로 다 막을 수는 없으니 누구라도 이야기해야하는데 큰소리 내면 싸움이 나니 뭐라고도 하기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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