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프런티어 AI 경쟁에 못 뛰어든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자본력, 빅테크의 인재풀, 수십조 원짜리 클러스터 앞에서 한국은 애초에 체급이 다르다는 거죠.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 주장은 숫자를 하나씩 따져보면 성립하지 않습니다. 프런티어 모델 개발에 필요한 것은 결국 네 가지입니다. 컴퓨트, 하드웨어 접근성, 인재, 데이터. 하나씩 보겠습니다.
[1] 컴퓨트: 판은 이미 깔리고 있습니다
프런티어급 모델이 실제로 얼마나 큰 자원을 요구하는지 계산해보겠습니다. 10T 파라미터 MoE(활성 275B) 모델을 300T 토큰으로 학습한다고 가정하면 필요 연산량은 약 5×10^26 FLOPs, GPT-4의 대략 25배 규모입니다. 이 10T라는 가정은 임의의 숫자가 아닙니다. 지금 화제인 차세대 프런티어 모델들, 그러니까 클로드 미토스(Mythos)급이나 GPT-6급의 사이즈가 유출 문서와 커뮤니티 분석 기준으로 최대 10T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공식 확인된 수치는 아니지만, 업계 추정의 상단이 대체로 여기에 수렴합니다). 즉 이 계산은 '언젠가의 가상 모델'이 아니라 '지금 세계 최고 랩들이 만들고 있는 바로 그 체급'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B200 20만 장, 전력으로 환산하면 약 500MW급 클러스터로 돌리면 사전학습에 4~6주, RL 후처리까지 포함해도 3개월 안팎이면 끝납니다. 학습 비용은 2조 원 내외입니다(GPU 클러스터 구축비 약 13~14조 원을 4~5년 수명으로 상각해 3개월 점유분을 배분한 총비용 기준으로, 전력비 자체는 1천억 원대에 불과합니다). 천문학적으로 들리지만, 국가 단위에서는 감당 못 할 숫자가 아닙니다.
이제 한국의 계획을 보겠습니다. 정부는 2029년까지 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에 550조 원을, 2035년까지는 총 18.4GW에 1,000조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SK 5GW, GS 2.4GW, 네이버 1GW가 1단계에 참여하고 2028년 착공, 2029년부터 단계적 가동입니다. 8.4GW면 위에서 계산한 '프런티어 학습용 500MW 클러스터'가 16개 이상 들어가는 전력입니다. OpenAI 스타게이트 1단계 캠퍼스가 1~2GW인 것을 감안하면, 국가 단위로는 전혀 밀리지 않는 인프라입니다. "인프라가 없어서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이제 계산이 안 맞습니다.
[2] 하드웨어: 중국이 갖지 못한 것과 미국이 잃어버린 것을 다 가진 나라
여기서 자주 간과되는 결정적 이점이 있습니다. 한국은 엔비디아 최신 GPU를 제한 없이 수입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중국은 미국 수출통제 때문에 B200급 최신 칩을 합법적으로 살 수 없어서, 화웨이 어센드 같은 자국 칩으로 몇 세대 뒤처진 하드웨어를 몇 배의 전력을 태워가며 따라잡는 중입니다. 반면 한국은 2025년 APEC에서 엔비디아가 삼성·SK·현대차·네이버 등에 GPU 26만 장 이상 공급을 발표할 만큼 최우선 공급망 안에 있습니다. 심지어 그 GPU에 들어가는 HBM 메모리를 만드는 SK하이닉스와 삼성이 한국 기업이니, 엔비디아 입장에서 한국은 고객이기 이전에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입니다. 협상력이 다릅니다.
에너지 쪽은 더 극적입니다. AI 인프라 경쟁의 최종 병목은 GPU가 아니라 전력이라는 게 이제 업계의 상식입니다. 18.4GW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그만한 발전소를 새로 지어야 하는데, 미국은 대형 원전을 예산과 공기에 맞춰 짓는 능력을 사실상 잃었습니다(30년 만의 신규 원전인 보글 3·4호기는 예산 2.5배 초과, 7년 지연 끝에 완공됐습니다). 한국은 UAE 바라카 원전을 예산과 공기에 맞춰 지어낸, 원전 수출 실적을 가진 몇 안 되는 나라입니다. 최첨단 파운드리(3nm급)와 최첨단 메모리(HBM)를 자국 기업이 동시에 보유하면서 원전까지 제 값에 제때 지을 수 있는 나라는, 엄밀히 따지면 지구상에 한국뿐입니다. 미국은 원전이 발목이고, 중국은 첨단 반도체가 막혀 있고, 대만은 원전이 없고, 일본은 첨단 파운드리가 없습니다. AI 시대의 산업 풀스택, 즉 칩·메모리·전력을 한 나라 안에서 다 조달할 수 있다는 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전략 자산입니다.
혹자는 "미국이 언젠가 한국에도 수출통제를 걸면 어쩌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가능성은 낮지만, 그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한국에는 플랜 B가 존재합니다. 퓨리오사AI와 리벨리온 같은 자체 NPU 기업들이 이미 상용 칩을 내놓고 있고, 결정적으로 이 칩들을 찍어낼 파운드리와 거기 붙일 HBM이 전부 국내에 있습니다. 중국이 화웨이 어센드로 증명했듯, 자국 칩이 엔비디아만 못해도 설계-생산-메모리 수직계열이 자국 안에 있으면 프런티어 경쟁에서 퇴출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수직계열은 첨단 공정이 막힌 중국보다 조건이 좋습니다. 지금 당장 프런티어 학습을 국산 NPU로 하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어떤 지정학 시나리오에서도 게임에서 쫓겨나지 않는 하방이 깔려 있다는 얘기입니다.
[3] 인재: 이미 밑바닥부터 만들어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프런티어 모델은 GPU만 있다고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 점에서도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우선 한국은 자국어 파운데이션 모델을 밑바닥부터(from scratch) 만들어본 몇 안 되는 나라입니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LG AI연구원의 엑사원, 업스테이지의 솔라가 그 증거입니다. 특히 업스테이지 솔라는 오픈소스 리더보드에서 세계 1위를 찍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입증했고, LG 엑사원은 산업 특화 영역에서 꾸준히 세대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도 네이버클라우드, LG AI연구원, SK텔레콤, 업스테이지 등이 정예팀으로 참여해 국가 차원의 모델 개발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해본 적 없는 나라"와 "규모를 아직 못 키워본 나라"는 출발선이 완전히 다릅니다. 한국은 후자입니다. 스케일링은 자본과 인프라의 문제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연구 저변도 탄탄합니다. CSRankings 기준 2020~2026년 AI 분야에서 KAIST는 세계 10위권입니다. 그런데 이 순위표의 상위권은 중국 대학들이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2026년 글로벌 톱10 중 7자리가 중국 대학입니다. 다시 말해 중국을 제외하면 KAIST는 사실상 세계 3위권의 AI 연구기관이라는 뜻입니다. NeurIPS, ICML 같은 최상위 학회에서 한국 연구자들의 논문 수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고, 이 인재들이 매년 산업계로 흘러들어가고 있습니다.
[4] 데이터: 원본은 공공재고, 격차는 지금부터 만드는 것입니다
"고품질 데이터가 없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이 반론은 데이터의 구조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프런티어 모델 사전학습의 뼈대인 웹 데이터는 Common Crawl 같은 공공 아카이브로 누구나 통째로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 랩이라고 인터넷을 더 가진 게 아닙니다. 진짜 격차는 세 군데서 생기는데, 셋 다 '이미 쌓인 자산'이 아니라 '지금부터의 실행'의 문제입니다. 첫째, 같은 원본에서 좋은 토큰을 뽑아내는 정제·필터링 파이프라인. 둘째, 모델이 모델을 가르치는 합성 데이터 생성 능력. DeepSeek이 증명했듯 이건 자본이 아니라 엔지니어링입니다. 셋째, 서비스를 운영하며 쌓이는 사용자 피드백 데이터인데, 이것도 자국 시장에서 서비스를 키우면 쌓이는 것이지 출발선에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이 남들이 못 가진 데이터를 쥐고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다음 격전지로 꼽히는 피지컬 AI에서는 제조 현장 데이터가 곧 경쟁력인데,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밀도를 가진 나라입니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배터리 공장에서 나오는 현장 데이터는 미국 빅테크가 돈 주고도 못 사는 자원입니다. 데이터는 하루아침에 안 되지만, 꾸준히 모으면 반드시 쌓이는 자산이고, 한국은 그걸 모을 산업 기반과 국가적 의지를 둘 다 갖고 있습니다.
남은 과제, 그러나 본질은 바뀌었습니다
물론 낙관만 할 일은 아닙니다. GPU 물량 확보 경쟁은 치열하고, 최상위 인재의 해외 유출은 현실이며, 학습 한 번에 수천억~조 단위의 기회비용을 감수할 수 있는 자본 조달 구조도 아직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프런티어 랩 하나를 유지하려면 연간 수조 원의 지속 투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논점을 정확히 하겠습니다. 이것들은 "불가능"의 근거가 아니라 "실행"의 과제입니다. 5년 전 한국의 문제는 '인프라도 없고, 만들어본 팀도 없고, 판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문제는 '판은 깔리는데 그 위에서 얼마나 과감하게 베팅하느냐' 입니다. 문제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력 8.4GW의 인프라 계획, 제한 없는 최신 GPU 접근권, 첨단 파운드리·HBM·원전을 한 나라 안에 다 가진 유일한 산업 풀스택, 중국 제외 세계 3위권의 연구기관, 밑바닥부터 모델을 만들어본 복수의 팀, 그리고 피지컬 AI 시대에 빛날 제조업 데이터. 이 조합을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뿐입니다. 한국이 프런티어 모델을 못 만든다는 말은, 이제 겸손이 아니라 오판입니다.
https://stratechery.com/2025/an-interview-with-openai-ceo-sam-altman-about-devday-and-the-ai-buildout/
한국의 문제점은 이미 수십년부터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수도 작고 해외경쟁이 약하다는거죠.
아이리버의 mp3나 싸이월드 등 이런 곳들이 아마 미국 회사였다면 최소한 그 피크치의 규모가 달랐을것은 분명하듯이 말입니다.
한컴이나 네이버나 한국어와 한국 자체 시장으로 어느정도 버티기는 하고 있지만, 그 한계가 분명하듯이요.
좁은국토에 이정도 ai+로봇 밀도를 갖춘나라가 없죠
3위를 지키는 의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엑사원 솔라 다 중국의 MIT 오픈소스 모델보다 떨어지는데 라이선스는 오히려 애매하죠.
과연 한국에서 나온 AI 모델이 SOTA는 아니더라도 GLM-5.2처럼 제미나이 제치고 TOP 3에라도 들 수 있을까요? 전 회의적입니다.
실패를 허용하는 연구 문화,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는 장기 투자, 최고급 연구자에게 수십억 원의 보상을 지급할 수 있는 환경, 빠른 의사결정, 연구자의 높은 자율성, 그리고 인재를 지속적으로 영입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함께 갖춰져야 합니다.
중국은 14억 명에 달하는 내수시장과 수억 명이 사용하는 AI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사용자 피드백 데이터, 수많은 AI 기업 간의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모델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최신 GPU 접근성과 HBM 같은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오히려 유리하지만, 시장 규모와 투자 여력, 인재 규모에서는 중국과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나라는 아니지만, 미국이나 중국처럼 장기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계속 도전할 수 있는 투자 문화와 연구 생태계를 먼저 갖추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일주일 학습시켜 이리저리 파인튜닝 하는동안 우리는
3개월 동안 모델 하나 학습하는데요.. 이게 항상 수렴하는게 아니라서 자칫하면 첨 부터 다시 해야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