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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한 번은 써야 할 글 같아서 남깁니다. 24

11
2026-07-14 15:06:06 수정일 : 2026-07-14 15:55:24 125.♡.222.187
비꽃

한참 지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현대사 왜곡논란 있었던 어느 드라마 관련해서 사람들이 열받아 난리였던 몇 년 전, 저 역시 열받아서 해당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남겼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다지 특별한 글도, 잘 쓴 글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 글이 여기저기 퍼져서 읽히고 나중에는 여기저기서 기사까지 나오더군요. 당시 이 곳 클리앙에서도 우리 과 동기들은 제가 누구인지 찾는 중이라고도 했는데, 아마 찾지는 못했을 겁니다. 저는 해당 대학교 해당 학과의 97학번 '입학생'이지, 졸업생은 아니거든요. IMF 터지면서 집안 풍비박산 나서 입대하고, 제대 후 복학을 못했으니까요.


여튼, 그 글이 여러 사이트들에 퍼져서 달리던 댓글 중에서, 가슴 찡한 댓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마도 더쿠 회원이셨던 것 같은데, 자신은 자기 부모님을 미워했더랍니다. 나름 좋은 대학 나왔다면서, 다른 집 부모님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지금 좋은 직장 잡고 잘 살고 그래서 그 집 애들도 잘 나가는데, 왜 우리집은 엄마 아빠 운동권 활동 하다가 제대로 된 직장도 못 잡고 이렇게 가난하냐고. 하지만 그 부모님들이 사실은,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싸워본 적 있는 사람들'이란 걸 알고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고. 대강 그런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요즘 2030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쩌면 이게 바로 2030의 보수화, 혹은 탈 이념화의 이유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더군요.



우리는 흔히 386, 지금의 586 세대를 이야기 할 때에 당대를 대표했던 학생운동가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금 민주당에서 당대표 경선하시는 김민석, 정청래 두분이 바로 586 출신들이죠.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 심지어 '변절자'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 국민의 힘 쪽에 가있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런 '지도부' 출신들 말고, 맨 아래에서, 맨앞에서 싸웠던 평범한 학생들, 평범한 젊은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 당연히 대학 졸업하고, 혹은 중퇴하고 남자라면 군복무 마치고, 사회에 나와 직장 잡고 살아가는 시민이 되었겠죠. 


그런데, 바로 그분들이 사회 초년생으로 기반을 닦아가기 시작할 무렵, 1997년 말에 IMF가 터집니다. 저를 비롯한 70년대 생들은 아직 학생 신분이고 군대라는 도피처도 있었으며, 부모님에게 기댈 수 있어 그나마 나았죠. 또 자신들 586보다 조금 먼저 사회에 나와있던 1950년대 생들은 이미 기반을 잡은 중년층이었기에 그나마 충격이 덜했구요. 하지만, 사회에 나와 독립은 했어도 아직 기반이 약했던 586 세대들에게 IMF는 치명타였습니다. 물론, 그분들 중 일부는 다시 일어서서 기반을 닦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무너진 채 일어나지 못했죠. 특히나 학생운동에 집중한다고, 학과 공부를 등한시했던 사람들이라면 더욱 문제였을 테구요. 더구나 운동권 활동중에 전과라도 생겼다면 자영업 외에는 답이 없었을텐데, 자영업 역시 큰 타격을 받았죠.


지금의 2030은,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난 586의 자녀들입니다. 586 세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죠. 위에서 언급했던 더쿠 회원분의 사례는 상대적으로 드물 거고, 특히나 자녀들 중 남자 아이들은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이 더 크게 들었을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덧붙여서, 우리 4050세대가 어찌 보면 586에 비해 더 강경한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특히나 클리앙 유저분들께서 이런 경향이 심한데, 우리는 속칭 '강남좌파'입니다. 먹고 살 만 하지만 자신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그게 옳다고 생각하기에 왼편에 선 사람들. 그런데 과연 그게, 온전히 우리들의 판단만으로 그런 걸까요? 586 선배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아니구요?


당장 제 경우를 보면, 97학번인 저는 사실상 마지막으로 최루탄 냄새를 맡아본 세대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누구나 다 맡아본 게 아니죠. 톡까놓고 말해서 당시 각 지역 총학들은 대부분 NL 계열이 주도하고 있어서 PD계열 최대 행사인 노동절 등에는 관심 없고, 주체사상 계열의 통일 운동이나 대학 재정 확충이란 명목으로 등록금 관련 시위 정도나 벌이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죠? 


당장 제가 대학 신입생 시절 최루탄 냄새를 맡아본 것도, 상대적으로 가까운 부안인가 고창에서 농활 일정이 잡히면서, 집안에 농사일 먼저 돕고 간다는 핑계 대고서 NL 계열 총학에서 반드시 5월 1일 노동절 끼워서 가던 97년 농활에 늦게 합류하고, PD계열 동아리로 제가 소속된 문리대 노래패 선배들과 함께 장충단 공원에서 있었던 노동절 집회를 참가했었기 때문에 경험해 본 겁니다. 당시 집회 끝나고 사람들 종묘 쪽으로 시가행진 나가려는 걸 경찰이 막아서고, 최루탄 쏘면서 진압봉으로 진압했으니까요. 이 때가 아니었다면, 저 역시 대부분의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민주화 운동의 수혜는 받았지만 참여는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겠죠. 최루탄 냄새도 맡아본 적이 없을 테구요.


그래서인지, 우리 90년대 학번들은 마음 깊숙히 586 선배들에 대한 선망과 부채의식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면 진리처럼 떠받들고, 자랑스럽게 꼬붕이 되었습니다. 비꼬아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저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 마음이 한편에는 남아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제는, 그 마음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자립해야죠, 우리 90년대 학번들도요.



운동권 선배 정청래, 김민석을 의심없이 믿고 떠받들고, 모든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서 유시민 선배의 해석을 받은 후에 그 내용을 따르는 짓은, 솔직히 이제 그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남 이야기에 휘둘릴 나이 지났잖아요. 스스로 판단하면 됩니다. 우리 불혹이에요. 누군가는 지천명이시겠구요. 흐르는 세월 속에서 색깔이 변한, 기득권이 된 낡아빠진 선배들의 교조주의 이론이 더이상 먹히는 세상 아니라는 거 알고 있잖습니까.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런 거는 물론이고 민주화 운동 자체를 몰라요. 관심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그건 이미 '당연한 일' 이니까요. 그런 걸 젊은 친구들 상대로 떠들어봐야 먹히지도 않습니다. 그게 먹힐 것 같으면, 그 친구 부모님들인 586 선배들이 벌써 바꿔뒀겠죠.


이제는 우리가 나설 때입니다. 


군사독재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과 학생운동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의 과실을 모두 누려본 세대, 그리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하는 일본 정치권을 미워할 줄 알면서도, 소니와 아이와, 파나소닉 제품들의 국산품보다 뛰어난 성능을 인정했던 세대. 이념과 실리, 양쪽 모두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나서야 할 때라는 겁니다. 성장 논리에 매몰된 우리 부모님 세대도, 이념에 경도되었던 586 선배들도 아닌, 바로 우리, 90년대 학번들이요.









비꽃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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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
루슬렌
IP 125.♡.149.159
15:12 2026-07-14 15:12:47 / 수정일: 2026-07-14 15:13:55
·
아... 그거 우리과 동기가 쓴 거라길래 누군가 궁금했었는데요....-0-;;;
국문과 97... 동기네요 흠흠;;;
비꽃
IP 125.♡.222.187
15:16 2026-07-14 15:16:38 / 수정일: 2026-07-14 15:29:47
·
@루슬렌님 앗 동기시군요! 반갑습니다. 제가 누군지는 대충 짐작 하시겠군요. 당시 국문과 신입생들 중에서 문리대 노래패 들어간 것은 저 하나 뿐이었으니까요. ㅋ
크림커피향기
IP 1.♡.22.205
15:13 2026-07-14 15:13:20
·
선생님의 고견 잘들었습니다
비꽃
IP 125.♡.222.187
15:24 2026-07-14 15:24:57
·
@크림커피향기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뎅뎅이!
IP 61.♡.246.17
15:14 2026-07-14 15:14:05
·
전 요즘 항상 되내이는 말이..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살았고, 그들은 그들의 시대를 살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다음 세대를 어떻게 살아라.. 라고 할 필요가 없다.~
비꽃
IP 125.♡.222.187
15:26 2026-07-14 15:26:34
·
@뎅뎅이!님 동감입니다. 다만, 우리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서 준비 정도는 해줄 수 있겠죠. 그 사람들을 위해 불을 지피고 밥을 해놓지는 못해도, 쌀과 장작 정도는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뎅뎅이!
IP 61.♡.246.17
15:29 2026-07-14 15:29:05 / 수정일: 2026-07-14 15:29:20
·
@비꽃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도면 족할 듯 합니다.
비꽃
IP 125.♡.222.187
15:31 2026-07-14 15:31:41
·
@뎅뎅이!님 그거면 됐지요. 동감입니다.
livre
IP 183.♡.148.29
15:19 2026-07-14 15:19:21 / 수정일: 2026-07-14 15:21:19
·
전체적으로 좋은 이야기이고, 90년대 학번들이 갖는 감정이나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에 갖는 감정도 공감합니다. 그런데 뭐 지금 정치인들이 운동권 선배여서 떠받드는 건 아닌 듯 합니다.
비꽃
IP 125.♡.222.187
15:21 2026-07-14 15:21:39 / 수정일: 2026-07-14 15:32:40
·
@livre님 그렇죠. 그들의 주장하는 바를 판단하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지지하는 거겠죠. 그런데 그것을 넘어, '무조건적으로' 선배들이 주장하는 바를 자기 자신의 의견이라 여기고, 그에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유조차 들어보지를 않으려 하는 일부 사람들의 태도는 잘못이라 봅니다.
웬즈데이v
IP 121.♡.156.129
15:22 2026-07-14 15:22:15
·
사실 2030을 본다면 기득권 세력이 민주당일겁니다.
2030이면 사실상 박근혜 때부터 기억이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국짐에서 박근혜 윤석열도 탄핵당했고
사실 그 세대면 기득권이 민주당이라고 느낄만 해요

또한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가치관도 달라졌을 겁니다
기득권 세대에게 오히려 대접 못받는다고 생각할거에요

우리세대의 기득권은 군사정권과 한나라당 새누리당이었다면
지금 2030 세대들의 기득권은 민주당이라고 생각합니다.

2030을 잘 구워삶아보자가 아니라
앞으로의 10년 20년을 위해 민주당이 2030을 데려올 수 있게해야죠
당장 2030이 주류 세대가 된다면 정권이 바뀌는건 어렵지 않아보여요
그 아래 0010세대 또한 그럴테니
비꽃
IP 125.♡.222.187
15:24 2026-07-14 15:24:18
·
@웬즈데이v님 동감입니다.
전시품물건
IP 61.♡.118.185
15:22 2026-07-14 15:22:15
·
👏👏👏👏
비꽃
IP 125.♡.222.187
17:00 2026-07-14 17:00:56
·
@전시품물건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verlasting_
IP 121.♡.172.2
15:22 2026-07-14 15:22:56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비꽃
IP 125.♡.222.187
15:24 2026-07-14 15:24:39
·
@Everlasting_님 읽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카인백작
IP 210.♡.41.89
15:24 2026-07-14 15:24:40
·
잘 읽었습니다.
이것이 산파적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꽃
IP 125.♡.222.187
15:29 2026-07-14 15:29:04
·
@카인백작님 산파 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한번이라도 생각을 다시 하게 할 수 있다면 그만한 다행이 없겠죠.
Icham
IP 118.♡.31.88
15:26 2026-07-14 15:26:22
·
"운동권 선배 정청래, 김민석을 의심없이 믿고 떠받들고," 라고 하신 말씀은 어폐가있네요. 누가 이분들을 억지로 따르라고하지 않았습니다. 시대적 상황에서 앞에 나서서 바른말을하고 행동을 하니 따른 것이지요. 세대교체라는 것도 억지로 하는게 아니라 90년대 학번들 안에서 위에 분들 처럼 나서서 바른말하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 나타나서 교체가 되어야하는것이지요.
비꽃
IP 125.♡.222.187
15:28 2026-07-14 15:28:08 / 수정일: 2026-07-14 15:30:44
·
@Icham님 네. 그 분들의 주장하는 바를 들어보고,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판단을 한 후에 지지하는 건 당연히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스스로의 판단 없이 그들의 말을 무조건 믿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들어도 보려 하지를 않는 경우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메론밥
IP 121.♡.141.134
15:44 2026-07-14 15:44:51
·
586선배들에 대한 부채의식이라...
인상적이네요
동일시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비꽃
IP 125.♡.222.187
15:51 2026-07-14 15:51:38
·
@메론밥님 선배들에 대한 선망도 있으니 동일시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지만, 그건 흔한 사례는 아닐 것 같아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가브리엘
IP 211.♡.204.7
16:33 2026-07-14 16:33:34
·
글 좋네요
선망과 부채의식..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비꽃
IP 125.♡.222.187
16:48 2026-07-14 16:48:09
·
@가브리엘님 저도 그 더쿠 회원분 댓글을 보고 나서야 생각하게 되었던 문제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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