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톺아보기

오랜만에 아버지와 정치 얘기를 나눴습니다.

잘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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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 노사모 - 시민광장 회원 - 조국혁신당 당원 으로 이어지는 뼛속까지 진보이신 386세대 아버지와 연성 진보..라고 말하기엔 너무 중도스러운 30대 저, 20대 동생끼리 오랜만에 외식하면서 정치 얘기를 나눴습니다.
아버지가 대뜸 '정말 2030이 극우화 됐냐?'고 물어보셔서..하하

동생이 장난으로 형 윤어게인 인거 몰랐냐고 하니까 옆에 계시던 엄마 리터럴리 눈이 똥그래지면서 "미쳤나봐!!" 하고 놀라셔가지고 제가 더 놀랐습니다;

아무튼 저는 극우화된 게 아니라 탈이념화된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혹자는 리박스쿨, 일베 문화 등의 사례를 거론하며 교육이 문제다, 세뇌 당한거다 하지만 저만 봐도 학교 다닐 때 애들 잘 이해해주고 인기 많은 선생님들이 다 전교조셨고, 수업 들어오실 때마다 이명박 욕을 하며 들어오는 학원 선생님도 기억에 남아요. 집에서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진보 성향 주간지와 신문을 끼고 살았거든요. 이렇게 정통 진보 코스를 밟은 저도 민주당을 비롯한 현재 진보 진영에 대한 인식이 마냥 좋지는 않습니다. 

태극기 부대 어르신들은 위화감이 들지 않지만, 윤어게인을 외치는 20대는 '시급 얼마 받고 하는거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 만큼 우리는 오랫동안 진보와 젊은 세대를 동일시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젊다는 이유만으로 진보적이어야 할 당연한 이유는 없습니다.

아버지 세대에게 정치는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군사정권과 지역주의처럼 실제로 겪은 역사적 경험의 연장선에 가까웠을 겁니다. 어느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는지가 단순한 정책 선호를 넘어, 자신이 살아온 삶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일이었겠지요. 

반면 저희 세대에게 정치는 조금 다릅니다. 민주화는 이미 교과서 속의 일이었고, 보수와 진보 모두 기성 권력이 된 이후에 정치를 접했습니다. 취업, 집값, 병역, 젠더 갈등처럼 당장 개인의 몫과 부담이 어떻게 나뉘는지가 훨씬 직접적인 정치적 경험이 됐습니다.

그래서 2030은 진보나 보수라는 이름보다, 지금 내 문제에 누가 더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느냐를 먼저 보는 것 같습니다. 어제 민주당을 찍었다가 오늘 국민의힘을 찍을 수도 있고, 다음 선거에는 둘 다 찍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당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교체하는 도구처럼 바라보는 것이지요. 여기서 '그래서 국민의힘은 답을 줬고?'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집값에 관련해선 보수 정권 당시 부동산 가격이 보다 안정적이었고, 양당제 구도 하에 1번 또는 2번이 반강제되는 상황 속에서 젠더 갈등과 관련해서 등을 돌린 2030 남자들이 다시 뒤돌만한 계기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내란은 한나절만에 끝난 해프닝이고 젠더 갈등은 한 정권 내내 차별 받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물론 '윤어게인을 외치는 20대'를 단순한 탈이념화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그런 극히 일부 사례를 근거로 2030 전체가 극우화됐다고 결론 내리면, 정작 왜 젊은 세대가 기존 진보 진영에서 이탈했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젊은 세대는 이념이 없어서라기보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이념의 서사에 자신을 끼워 맞출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요.

제 이야기를 들으시던 아버지는 한동안 별말이 없으셨습니다. 아마 아버지에게는 지금의 2030이 낯설고, 저희에게는 아버지 세대의 확고한 정치적 정체성이 낯선 것 같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께서 자신이 조국혁신당을 지지하고 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미래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와 생각이 다른 지점이 많아졌고, 무엇이 ‘좋은 세상’인지에 대한 기준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아버지는 민주주의와 사회적 약자를 지키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저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 공정의 가치를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결국 다음 세대가 지금보다 덜 불안하고, 더 자유롭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입장이란 어쩌면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오면서 같은 목적지를 향해 선택한 서로 다른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2030이 극우화됐는지를 따지기 전에, 왜 이들이 더 이상 진보를 자신의 편이라고 느끼지 않게 됐는지부터 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날의 대화로 아버지의 생각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 역시 크게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서로를 극우나 내로남불 같은 단어 하나로 규정하기 전에, 상대가 어떤 세상을 살아왔는지 한 번쯤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댓글 21

  1. 모리슨 · · 공감 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 및 세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 전가복 · · 공감 1
    아시타비로 일관하기보다 서로의 관점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화해 나가는게 모두에게 좋습니다.
  3. 인쓰 ·
    저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가 자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정정당당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남겨주기 위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정당한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4. 게임의발견 ·
    각 세대는 그 세대의 트라우마가 있고, 그것을 다같이 극복하면서 그들만의 기득권을 형성하게 되죠
    반공, 산업화 하면서 그들만의 부동산, 기업 기득권
    민주화 운동하면서 그들만의 노조, 정치 기득권
    좌우 방향은 달라도 젊은 시절에 치열하게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세대만의 자산이 있는데
    현재 2030 은 자신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2030 이 보이지 않고 공동체 의식도 너무 약해 보여서 안타까워요..
    입시 경쟁, 취업 경쟁에 찌들어서 아마 그런 정치 활동을 할 낭만도 여력도 없어 보여요.
    제가 그 세대가 아니라서 못보는 것이라면 다행인데 이준석 이후로는 젊은 유명 정치인이 없네요
  5. 그시절그때 · · 공감 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런 의견을 경청해야 할텐데...하는 생각이 드네요.
  6. 비라코챠 ·
    "개인의 선택과 책임, 공정의 가치를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라는 건 현재의 진보진영이나 보수진영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판단하게 되는 기준 인가요?
  7. 잘잘 · · 공감 2
    @비라코챠님 상당 부분 그렇게 생각합니다. 친페미니즘 정책과 더불어 인국공 사태,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 논란, 그리고 말씀 드리기 좀 조심스럽지만 조국 관련 논란 등이 진보 진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우리가 생각하는 공정과 많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8. 뚜루룽뚜 · · 공감 1
    좋은 글이네요. 좀더 많은 얘기를 들려주시길 기대합니다.
  9. 일리어스 ·
    공정이라는게 참 그렇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공정이라는 것 자체가 힘들죠.

    똑같이 공부해서 똑같이 수능보고 대학가서 취직하는게 공정이다 라고 하기에는
    삶이 다른 사람들이 너무나 많죠.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고 싶은데.

    이런 것들이 담보되지 않은 '공정의 시대' 가 오면 어떻게 될지...
    제 아들에게는 그런 미래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데 말이죠...
  10. 잘잘 · · 공감 1
    @일리어스님
    예전에 공정 이라는 주제로 이준석과 이탄희가 대립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준석은 실력만으로 승부하자는 능력주의가 가장 공정한 경쟁이다 라고 주장했고 이탄희는 가장 공정한 잣대로 보이는 실력마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니 능력주의가 가장 공정한 경쟁은 아니다 라고 했죠. 이탄희의 주장도 공감은 가지만 현재 2030세대는 '세상이 불평등한 거 인정할테니까 억지로 출발선을 맞추려고 하지마'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공정을 위해 출발선을 맞추려는 과정이 당사자들에겐 옆사람을 갑자기 밀어주고, 나는 끌어당기는 불쾌감으로 느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11. 일리어스 ·
    @잘잘님
    뭐 원칙이 차라리 하나면 좋은데
    그게 그때그때 달라서 세상 불평등한거 인정하는게 맞나 싶단말이죠.

    부자집이 돈 써서 이것저것 다 해주는건 인정.
    조국 대표가 한건 불공정
    나경원이 한건 모르쇠

    아 원칙이 있긴 한것 같아요.
    국힘은 대놓고 하니 괜찮고
    민주당은 위선이라나..
  12. 달스9 ·
    진짜 얼굴까고 윤어게인하는애들은 얼마받았는지 궁금하긴해요
  13. 비꽃 ·
    좋은 글 감사합니다.
  14. 회천의 결단 ·
    저는 광우병 사태에서 너무 충격을 먹어서요.. 그때 거짓을 가지고 선동해서 정치적인 이득을 보는 세력이 똑똑하게 기억납니다. 나중에 사실이 드러나도 미국과의 협상의 지렛대엿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것도 혐오스러웠습니다.. 제가 그래서 올드 좌파들을 싫어합니다 .. 근본적인 ㅡ마인드가 날조,왜곡으로 대중 선동해 먹는게 너무 싫습니다.. 그리고 80년대 시위때도 신입생들 총알 받이로 써먹고 학생회 간부들 도망다녔단 얘기도 많이 들었거등여
  15. 윤아슬아빠 ·
    @회천의 결단님
  16. 한올 · · 공감 1
    감사합니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돈된 언어로 표현해 주시면 내용에 동의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경청하게 되지요.
  17. 임펄스 ·
    민주진영이 내세우는 공정이 청년 세대의 공정 감각에 맞지 않다고 느껴지며, "어떤 사회적 안전망이 진정으로 공정한가"라는 질문으로부터 공정에 대해 다시 논의해 봐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앞으로 민주당은 집단적 정체성에 기반한 우대 정책에서 벗어나, 개인이 겪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면 청년 세대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18. 잘잘 · · 공감 1
    @임펄스님 맞아요. 모두가 공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무엇을 공정하다고 보는지는 세대와 경험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말씀드렸듯 살아온 환경과 마주한 문제가 다르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어느 한쪽의 기준만 강조되면, 다른 쪽에서는 그 공정이 위선이나 집단 이기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를 100% 만족시키기는 어렵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좁혀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공정이 공정으로 보이는 기준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 간극을 줄이는 일이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19. lfthndr ·
    잘 읽었습니다.
    여러 생각을 해보게 하네요.
    그리고 ‘윤어게인’ 이라고 메모해도 되나요?(농담~)
  20. 잘잘 ·
    @lfthndr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모는 '윤네버어게인'이라고 부탁드립니다 ㅜㅜ
  21. BlueX ·
    공정의 잣대가 자의적이라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들고 나오는 예가 다 비슷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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