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유튜브 영상 속 한 부부가 3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를 다리에 앉힌 채 대화를 나눈다.
시덥지 않은 대화를 나누던 중 아내는 아이 앞에서 남편의 따귀를 때린다.
아내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댓글을 본다.
'니네가 아무리 욕해도 저 아이는 태어나보니 몇백억 넘는 아빠를 두고 있다' 라는 댓글이 유난히 시선을 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이토 준지가 만화로 만든 것에 대한 리뷰 영상을 스킵하듯 본다.
이어서 댓글을 본다.
'그렇게나 부유하고 다 갖춘 사람이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며 불행하게 사는 작가의 심정을 너무나 이해한다'는 식의 댓글들이 많다.
사람이 죽었다.
하나의 생명이 죽었다.
그런 생명조차 이 나라에선 타이틀이 중요하다.
'서울대생'
사람들은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이라며 추모 모임을 형성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창립 총장이었다.
그는 우생학 시스템을 확립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다.
그리고 그것은 7살 여자 아이를 비롯해 수많은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강제적인 불임 수술을 가능케하였다.
순수했던 아이들은 강제로 시설에 감금된 채 글로 적지도 못할 험한 일들을 당했다.
모든 인간을 예외없이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있다.
젊은 나이에 목사가 된 그는 어릴적부터 전교회장을 비롯해 리더의 경험을 주로 해왔다.
리더의 자리는 그 부모가 만들었다.
목사와 부모는 다른 아이의 뱃가죽이 피멍으로 가득 차게 했다.
"목사님같이 젊은데도 겸손하고 따듯한 분은 없을거에요" 신자들은 그렇게 그를 숭배한다.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하고 사회에 기부를 몇백억씩이나 해왔다.
그는 세상이 따듯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느끼는 순수한 남자 아이들만 골라 그들의 항문을 파괴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
'고통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는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는 8살에 삼촌에게 강간을 당했다. 남들처럼 꿈을 갖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던 그녀였다.
부모는 자식을 버렸고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생존하기 위해서 그녀는 매춘을 하며 살아간다.
교양있는 예절 의식이 투철한 40대의 여성은 그런 그녀를 보며 말한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다 그런 선택을 하진 않아!"
어떤 이의 자살 기사의 댓글을 본다.
'남에게 피해만 주는 인간 쓰레기네.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가면 될 것을 ㅉㅉ'
어떤 이의 자살 기사의 댓글을 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저분의 죽음은 이 사회가, 악플러가 만든 살인에 의한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글 아래 달린 댓글을 본다.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작업합니다.
사진과 글, 그리고 영상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
글에 증오, 냉소가 알레고리로 깔려있어서요.
실제로 이 글은 본인 자신의 내면의 투사며 고통받으며 사실껍니다.
(성 취향은 모르겠어요 ㅌㅌ)
타인에 대한믿음은 결국 자신의 분열된 무의식에 대한 믿음
각자의 내면의 어둠을 포옹해야 진정한 빛이 될수있습니다.
니체가 말하길 빛에 닿길 원하는 나무는 지옥까지 뿌리를 내려야 한다 라고 하죠.
실제로 도스토옙스키적으로 그렇게 사는 사람도 많아요.
모모도 보면 유로지비로 신성을 가지고 자기의 모든것을 나눠주죠.
모모는 전혀 지적이지 않아요.
더 많은 고통에 해결법은, 더 많은 사랑, 더 많은 빛.
이라고 글을 써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