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앙 분들도 어렸을때 게임에 대한 추억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겐 놀이터에서 선을 긋고 땅따먹기가 제일 즐거웠던 기억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문방구 앞에서 철권1을 했던게 추억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겐 486 컴퓨터로 고인돌이나 알라딘 게임을 했던게 가장 오래된 게임의 추억일 수 있습니다.
저는 PC통신 회사에 다니는 아버님 덕분에 컴퓨터를 또래에 비해 빠른시기에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 어머님은 그 당시 매우 엄했기 때문에 게임을 원하는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IBM 486 컴퓨터를 사오시던 날 형과 저는 몰래 3.5인치 디스크를 가지고 고인돌 게임을 설치하려고 하다가 블루스크린이 떠서 크게 혼난 기억도 있고 초등학교 저학년때 백화점 한복판에서 슈퍼페미콤을 사달라고 드러누웠지만 어머님은 쌩 가버리셨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님이 유독 엄하게 교육을 하셨던건 부산에서 사범대를 나와 교사가 되길 원했지만 아버님과 어린나이에 결혼하시고 교사의 꿈을 포기하고 저희에게 교육열을 쏟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을때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던 시절로 기억합니다.) 어머님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기 위해서 일본에 갔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집에 도착했을때 저는 부러움과 문화 충격을 동시에 받았는데 그 이유는 저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 아이가 플레이스테이션 1을 가지고 있었기 떄문입니다.
타이틀명이 기억이 안나지만 그때 했던 레슬링 게임은 정말 재미있기도 했고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쇼핑을 하기 위해 일본에 한 백화점에 갔는데 포켓 몬스터 블루 영문판이 나와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더군요 저는 부러운 눈으로 쇼핑하던 친구들을 바라봤던거 같은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님이 닌텐도 게임보이 옐로우와 포켓몬스터 불루 게임 팩을 사주신 것입니다.
아마도 저희 어머님이 좀 자존심이 상하셔서 사준 것도 있긴한거 같은데 정말 기대도 안했었는데 펑펑 울정도로 기뻤습니다.

그 이후로 전 포켓몬스터 세상에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포켓몬스터 151마리를 채우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거지요
재미있는건 아시는분들도 많겠지만 151마리 중 20마리 이상은 솔로 플레이로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포켓몬의 끝판왕인 뮤는 그린 버전에서만 얻을 수가 있었고 (기억 상 어떤 지억에서 몬스터에게 미는 스킬을 가르친 다음 돌을 밀어야 획득 가능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통신을 통해 교환을 해야 진화가 되는 몬스터가 다수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발상이긴 합니다. 휴대용 게임기를 케이블 선을 통해 통신을 해서 서로 포켓몬을 교환하고 대전을 한다는 것이 지금의 멀티 플레이와 유사한 거지요
중학교를 올라가기 직전 저희 어머님은 한 프로그램에 절 지원시켰는데 미국에 사는 친구와 방학동안 서로 한번씩 교환해서 홈스테이를 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영어도 할줄 모르는 저는 졸지에 보스턴 근교에 월스턴 (정확하지 않습니다.)라는 곳에 한달 반동안 홈스테이를 하게되었고 출발 전 저는 고민에 휩쌓였습니다.
"동양인인 날 무시하면 어떻게하지?"
"영어도 못하는데 어떻게 친해지지?"
고민하던 저는 한가지 방법을 떠올립니다. 바로 어린 친구들끼리 친해지는 방법 중 가장 쉬운게 게임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전 주섬주섬 닌텐도와 함께 스타크래프트 CD, 디아블로2 CD를 챙겼습니다.
문제는 도착 첫날부터 발생했습니다. 완전히 꼬여버린거죠
형과 전 미국에 새벽에 도착했는데 마중 나오신 분들은 정말 매우 친절한 부부였습니다.
미국 환경은 제가 자라난 곳과 많이 다르더군요. 아파트 문화가 익숙하던 저에게 큰 마당과 집 구조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늦은 시간 마중을 나오신 분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고프지 않냐며 집에 도착하자 마자 피자를 챙겨주셨습니다.
부끄럽게도 전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어린 친구들의 유행은 가운데 손가락으로 욕을 하는 것 이였는데 형이 그 와중에 절 챙겨줘서 먼저 먹으라고 말하니 제가 가운데 손가락으로 응수 했습니다.
미국에선 정말 무례한 행동이라는 걸 어린 나이라 몰랐었고 미국 부부분들은 저를 따로 불러 차근차근 교육을 시켜주셨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집 친구들이 절 문제아로 인식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또 발생했습니다.
집 구조에 대해 설명을 듣고 화장실을 들른 찰나 전 변기에 제 가장 소중한 닌텐도를 떨어뜨렸습니다.
지체 없이 변기에서 닌텐도를 꺼내 씻기고 말렸는데 다행히 고장나진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 제 별명이 "토일렛 보이"가 된 것이죠
토일렛 보이가 된 저는 형과 다르게 미국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슷ㅂ니다.
결국 전 비장의 수를 던집니다. 바로 게임이지요
재미있는 건 저택 지하에 큰 지하실이 있었고 컴퓨터가 6대 정도가 있었던걸로 기억나는데 깔려있는 게임이라고는 2D 골프 게임이더군요 그래서 스타크래프트를 설치하고 시연을 보이니 그 집에 살던 아이들은 모두 "어메이징"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점은 미국 친구들이 이걸 한국에서 만든 게임 이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아니야 이거 미국에서 만든 게임이라고 설명해줬습니다.
그렇게 게임으로 친해지기 시작했고 제가 가장 해보고 싶던게 미니 트랙터를 모는 것이었는데 (미니 트랙터를 아이들이 가지고 놀더군요) 처음에는 왕따처럼 겉돌았지만 나중에 게임으로 친해지고는 트랙터도 몰게 해주더군요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활용해 수다스러운 썰 한번 풀어봤습니다!
클리앙 회원님들의 인생게임이 궁금하네요ㅋㅋ
무튼 여기서 이만 게임에 대한 추억 회상 1편을 마칩니다.
소소한 즐거움을 드렸다니 영광입니다.
시간 참 빠르네요...
댓글 덕분에 2편 작성할 예정입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와.... 이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형님이시로군요
저희형도 참 나이스한 편이긴한데
대부분의 형들에게 동생은 물셔틀인데.... 대단하십니다
저도 엄부엄모 사이에서 자랐으나, 저는 유치원때 당시 지능개발로 게임이 살짝 유명해지는 시기를 틈타 어머님께서 현대컴보이를 사주셨습니다. 너무 행복했었던 기억이 있었고, 조기교육에 힘입어, 아직도 매우 게임을 좋아합니다.
지금 보면 참 무섭지요... 컨텐츠의 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