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다시 세우는 삶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3월은 남반구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달이다. 그녀의 편지에는 이 무렵부터 '추운 겨울'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날씨의 추위와 마음의 추위를, 그녀는 자꾸 겹쳐 놓았다.
이대로 겨울이 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다시 여름이 됬으면… 올 겨울은 아마도 다른 어떤 겨울보도 더 추울거야. 내가, 마음이 추우니까…
그러나 이 계절의 편지에는 그리움만 있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씩 자기 삶을 다시 세우고 있었다. 오래 미뤄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하나가 플루트였다. 오빠가 사다 준 플루트를 받아 든 날, 그녀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너무 좋아서 계속 삑삑거리다가 머리가 아프길래 그만 불고 누워있었어. Flauta 는 내 보물 2호야. 일호는 너 "현민"이란 사람이거든.
하지만 그 기쁨이 우리 사이에 작은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전화 통화에서 내가 플루트 이야기에 시큰둥하게 반응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우리 두사람의 이야기보다 플루트 얘기에 더 집중하던 그녀에게 실망감을 표현 했을거라 생각이 든다. 그녀는 그 목소리를 오래 곱씹었다.
아.. 그리구 아까 전화하면서 내가 flauta 샀다고 얘기 했을때 네가 내게 한말이 마치 비웃는것 같았어. "그래 난 여기서 고생하는데 넌 하고싶은거 다해라" 하는것 같이 들렸어. 네 목소리가… 말투가…
그러고는, 왜 플루트를 다시 잡았는지를 털어놓았다. 그것은 나 없는 시간을 무언가에 미쳐서 버텨내려는 안간힘이었다.
다시 해야겠다고 완전히 결심을 하기까진 "너"라는 사람이 없는 나의 시간을 무엇엔가 미쳐서 정신없이 보내야했기 때문이야. 외롭기때문에 다른 탈출구를 찾아야했어. 이상태론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으니까. 무언갈 하지 않으면 자꾸만 나쁜생각이 들었어.
이 무렵 그녀는 내가 있는 곳을, 그리고 그곳이 앗아간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우리가 어디서 함께할 수 있을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헤아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네가 힘들어 하는곳.. 그곳 미국이 정말 싫다. 미국이란 곳이 없었더라면 너와 헤어질이유도 없었는데.. "미국"이 싫다… 서로 쬐끔 양보해서 중간지점 (Centro America)쯤 살까? 사랑하는데… 보고싶은데… 같이 있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그녀는 이내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conservatorio에 입학해 시간표를 짜고, 개인 레슨 선생을 알아보고, 밀린 진도를 따라잡았다. 성악 시험을 치르고 통지표에 적힌 '8'점을 받아 오기도 했다. 무대에서 실력의 절반밖에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쉽다면서도, 그녀는 노래 앞에서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짜피 많은 돈을 벌지도 못하는데 그래도 좀 젊었을때 배우고 싶은거나 원이 없이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거든 (?).
부활절이 다가오자 그녀는 칸타타 독창을 맡게 되었다. 하지 않겠다, 하겠다 실랑이를 벌이던 끝에, 결국 두 곡이나 부르게 되었다. 부활절 아침, 그녀는 한복을 입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했다.
별로 많이 떨리지도 않았어. Seguridad이 있어서 그런건가? 사람들이 노래 잘했대. 그리구 예뻤대. 기분좋게도..
노래를 마친 뒤의 마음을,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모일 때의 황홀함과, 그것이 지나간 뒤의 허전함을.
온 사람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어 있을땐 너무 기분이 좋아. 무언가 보여줄수 있다는게 너무 좋아. 좀 떨리는것도 사실이지만… 하지만 다끝난 지금은 허전해. 또 다시 그런 황홀함을 느끼기 위해서 연습을 하고 또 노래하고…
그녀는 자신이 나보다 잘났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은 노래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그 모습을 나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무지무지 보고싶은거 알아? 내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거 네게도 보여주고 싶었어. 너보다 잘났다고 자부하는게 노래하는거 밖에 없거든…
그 말이, 지금 읽으니 유난히 오래 남는다. 나는 끝내 그녀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 계절의 편지에는 그녀가 들려주는 우스개도 여전히 실렸다. 김밥과 오뎅이 달리기 시합을 했다는 이야기, 손님과 웨이터의 실랑이 같은 것들. 슬픔과 장난을 나란히 놓는 그 버릇은, 계절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기 너머에서 내가 한마디를 던졌던 모양이다. 그 한마디가 이 계절의, 어쩌면 우리 이야기 전체의 한 매듭이 되었다.
아까 네가 전화에 "우리 결혼 언제하지"라고 했을땐 꿈같았어. 과연 우린 결혼이 가능할까란 생각도 들었고… 미안해…
결혼. 우리 사이에 그 말이 처음으로 오간 순간이었다. 그녀는 그 말을 꿈처럼 되뇌면서도, 곧바로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왠지 불안해. 불안해 하지 말아야지… 분명히 난 널 사랑하니까. 나 사랑하지? 변하지 않을거지?
다음 날, 그녀는 하루 종일 그 말을 곱씹으며 보냈다고 했다.
"언제 우리 결혼하지?"라는 말을 샐수없이 많이 되뇌이며 보냈어. 정말 우리 언제 결혼하지? 결혼 못하면 "동거" 하지 뭐… 방 두개, 일인용 침대 두개, 화장실 두개, 부엌은 하나 (난 요리 안하니까) 있는 조그만 집에서…
그날의 편지 끝에서 그녀는 녹색지대의 '준비없는 이별'을 옮겨 적었다. 가사는 여기 옮기지 않는다. 다만 그 노래에 그녀가 덧붙인 한 문장만은, 그녀 자신의 말이므로 여기 남겨둔다.
2월 19일날 내가 하고 싶은말을 그대로 노래로 만든것 같아…
2월 19일. 내가 떠나던 그날. 두 달이 지난 그 밤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날의 배웅을 다시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