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혼자 견디는 시간
3월이 되었다. 그녀가 그토록 빨리 오기를 바라던 달이었다. 시간이 바쁘게 흘러 나를 만날 날이 앞당겨지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나 3월이 와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매일의 그리움과, 밤마다 걸려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일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는 그리움을 채울 곳을 음식에서 찾았다.
요즘에 살이 쪘어. 토요일 저녁에도 주일저녁에도 그냥 집에있고. 비디오나 보면서 네가 보고싶어지면 닥치는대로 먹어. 유일하게 너를 향한 그리움을 풀곳은 음식뿐이야. 친구도 없고… 얘기할 사람도 없고…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자기전까지 입안에 항상 먹을것이 있는것같아.
가끔은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떠나가… 겉으론 받아들이는데 속으론 신경질이나. 난 언제나 혼자야….
그러다가도 그녀는 이내 다른 곳으로 마음을 돌렸다. 이 무렵 그녀는 conservatorio 일로 애를 태우고 있었다. 학교 시험을 보러 갔다가 접수 명단에 이름이 없어 돌아서야 했고, 서류가 얽히면서 영주권 연장까지 위태로워졌다. 그녀는 학교를 오르내리며 담당자를 찾아 사정했고, 겨우 문제를 풀었다.
그래서 그날 기분이 정말 안좋았었어. 나 시험공부 많이 했거든. 어쨌거나 그날 너랑 새벽에 잠깐이라도 통화할수 있어서 무지 좋았어.
그리고 이 무렵, 뉴욕에서 나에게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전화로 그녀에게 전했다. 국민학교 시절의 짝을 우연히 만났다는 이야기를. 그녀의 반응은 이러했다.
나 기분나빠… 너 국민학교때 짝 만났다는거… 씨.… 반지 꼭 끼구다녀야되. 여자들 사방 3m 근처에 가면 안돼. 약속 위반이야. 절대로 반지가 다른 사람 손가락에 끼워져서도 안돼구…
뉴욕에 도착하고 얼마되지 않았던 그날 나는 친구와 뉴욕의 한 한인 식당에 있었다. 식사를 하는데, 옆을 지나던 젊은 여자가 나를 가만히 보더니 물었다. 혹시 너 박현민 아니냐고.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뉴욕에 온 지 몇 주밖에 되지 않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박현민이라는 본명은 학교에서나 쓰던 이름이었으니까. 그 여자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 나야, 김선영. 1983년 초원 국민학교 6학년 4반 짝꿍 기억나느냐고.
물론 기억했다. 부반장을 할 만큼 공부도 잘하고 예뻤던, 반에서 인기 많던 아이. 잠깐 짝으로 지내기도 했다. 어릴 적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아, 길에서 스쳤다면 결코 알아보지 못했을 만큼 그녀는 미인이 되어 있었다. 지구 반대편으로 이민을 왔는데, 그 낯선 도시에서 십수 년 전 짝꿍을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이다. 그날의 만남은 내가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살면서 겪은 신기한 일 중 하나로 남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그녀는 그 사연의 신기함까지는 알지 못한 채, 다만 '여자'라는 말에 살짝 삐쳤다. 반지를 꼭 끼고 다니라던 그 말이, 지금 와 읽으면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이 뭉클하다.
그 무렵 그녀는 잃어버렸던 편지 몇 통을 다시 찾기도 하고, 빨간 매니큐어를 사서 손톱에 칠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것을 '욕구불만'이라고 불렀다.
욕구불만때문인지 빨간색 메니큐어가 칠하고 싶길래 하나 샀어. 그리고 손톱에 예쁘게(?) 칠했어. 색깔이 좀 짙은가?
편지에는 이따금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실렸다. 어느 날은 카페에서 매일 같은 커피를 시키던 손님과 웨이터의 실랑이 이야기를, 어느 날은 선녀와 나무꾼을 뒤집은 우스개를 적어 보냈다. 슬픔만으로는 견딜 수 없는 시간을, 그녀는 그렇게 자기만의 유머로 버텨냈다.
주일이면 그녀는 온종일 교회에 있었다. 성가대 연습과 예배, 부활절 칸타타 독창 준비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래를 했다. 노래하는 시간만큼은 세상이 다 자기 것이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하루종일 노래만 한것 같아. 이렇게 살고싶어. 노래만 하면서… 꿈인데.. 현실이 될수 있을까? 어쨌거나 노래하는 시간만큼은 이 세상이 다 내것이 된 느낌이야..
전화가 닿는 아침이면 하루가 통째로 환해졌다.
짧은 통화였기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주일날 아침부터 너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다는건 너무 행복한 일이야..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오늘은 시작도 끝도 너의 목소리를 들어서 너무 행복한것 같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 이야기를 적기도 했다. Diego Torres의 'Penelope'였다. 기차역에서 평생 연인을 기다리다 끝내 정신을 놓아버린 여자의 이야기. 그녀는 그 노래의 사연을 자기 말로 길게 풀어 적고는, 슬프지 않으냐고 물었다. 기다리는 사람의 이야기에 그녀가 왜 그토록 마음을 빼앗겼는지, 나는 이제 안다.
그 무렵 나는 외할머니가 살고있던 캐나다로 식구들과 로드트립을 떠났었다. 우리식구들이 뉴욕생활에 자리 잡게되면 쉽게 여행하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에 또 한번 장거리 여행을 했었다. 나흘을 내리 운전했다는 소식에 그녀는 나를 나무라면서도 걱정했다.
힘들지? 4일 동안 운전을 했으니 얼마나 피곤할까? 넌 살빠지면 안되잖아. 밥은 제대로 먹은거야? 잠은 제대로 잔거야?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잔건 아니야? 대충 빵으로 때운건 아냐? 어쨌거나 잘 도착했다니 안심이 돼. 얼마나 걱정 많이 했다구…
그녀는 나와 헤어진 지 한 달이 되어가는 것을 헤아렸다.
내일이면 너랑 헤어진지 한달이 되는날이야. 인경이 너무 장한거 맞아? 한달을 잘 견뎠잖아. 이렇게 두달을 맞을거고 일년을 맞을거야. 솔직히 한달이 마치 1년 아니 10년처럼 길게 느껴졌었어.
3월도 저물어 갔다. 그리고 3월 19일, 내가 아르헨티나를 떠난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자정이 넘도록 내 전화를 기다렸다. 그날이 한 달째임을 내가 기억하고 전화해 주기를 바라면서. 전화는 오지 않았다. 편지의 말투가 그날따라 조금 달랐다. 평소의 반말 대신, 그녀는 나에게 존댓말을 썼다.
오늘은 3월 19일 입니다. 무슨날인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현민씨가 이곳 Argentina의 하늘아래 있었던 마지막날이었습니다… 바로 한달전의 오늘에… 그날이 생각납니다. 공항에서… 가게에서… 아침에 마지막으로 같이 subte 를 타고 데려다주던.. 바로 그날… 그날.. 구정이었는데… 집에서 같이 떡국도 먹었는데… 슬프려고 하지 않는데 오늘밤은 자꾸만 슬퍼지는군요. 잠도 오질 않구요.
그녀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곧 나를 이해하려 애썼다.
집에와서 지금까지 계속 현민씨의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오늘이 한달이 되는날이란걸 기억하시고 전화해주길 바랬습니다. 아마 기억못하셨나보죠? 물론 그곳에서 더구다 카나다까지가서 전화를 한다는건 쉬운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약간은 섭섭합니다…. 현민씨를 사랑하기때문에…
그날의 편지는 이 한 문장으로 끝났다. 한 글자 한 글자, 가운뎃점을 찍어가며 눌러쓴 문장이었다.
당 · 신 · 을 · 몹 · 시 · 그 · 리 · 워 · 합 · 니 · 다
한 달이었다. 그녀에게는 1년처럼, 10년처럼 길었던 한 달.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제 겨우 시작된 한 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