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너무나도 큰 사랑을 주셔서 그랬는지.. 젊은시절부터 노인이 될때까지도 젊게 사시고 한없이 건강하실거라고
생각하고 100세시대라서 우리어머니만큼은 90살 100살 사실거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종종 글은 남겼었는데. 오랫동안 노환으로 누워계시거나 몇년씩 투병하고 그런경우는 마음의 준비를 좀 하다가 보내드리는 경우라서 좀 나았을까?? 생각도 들어요. 근데 갑작스럽게 4기암으로 제대로 된 투병조차 못하시고 10개월만에 가셔서 그런지..
가끔 길 가다가 숨이 막히고 2년이 지났는데도 갑자기 세상 다 살아간거처럼 알수 없는 순간적인 좌절감같은게 몰려오면서
감정을 주체할수 없습니다. 투병이 길거나 몇년동안 노환이셨으면 안 이랬을까?? 생각도 하고요.
갑자기 사고로 보내신분들도 저처럼 비슷할거 같아요. 눈물은 별로 안나는데 그런 상실감 좌절감이 견디기 힘들게 몰려들고 허공에다가 "엄마" 엄마" 외치네요. 1년 지나면 나아질거라고 생각했는데..2년이 되가도 비슷합니다.
힘내시길 바래봅니다.
살다 보면 그냥 살아 집니다.
마음 잘 추스르시길 바랍니다.
구천을 떠도는 혼이 된다고 합니다.
본인의 슬픔은 크시겠지만
가신분의 극락왕생을 위해 조금 비워두시는게 어떨지요.
3년 지나니까 울컥하는게 사라지고 안정되었습니다.
풍습에 3년상이 그래서 있나 생각했어요
힘내세요 어렵겠지만….
그래도 남은 삶을 열심히 살아가 봐야지요.
힘내세요!
어머님이 379님이 어찌 사는걸 제일 바랄지 생각하세요
밥도 많이 먹고 좋은데도 가도 사람도 많이 만나고 행복하게 즐기길 바라실거같아요
어머님의 명복과 379님의 평안을 기도드립니다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어제 같아요.
문득문득 얼굴이, 웃음이 떠 오르고 가슴이 찢어지듯 아픕니다.
평생 갑니다.
어쩔 수 없어요.
엄마 아빠 잖아요.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자식들을 잘 건사하는 겁니다.
그게 내게 주어진 의무이자 숙명이니까요.
나오싶니다.
말씀은 없으시고 평소처럼 안방에 주무시다 나갔는데 꿈 중간에 아 돌아겨셨지 라고 깨닫게 되면서 편히 쉬세요. 라고 말씀 드리네요
돌아가시기전 2-3년 너무 고생하셔서 뼈만 남아서 돌아가셨는데 진짜 사람 할 짓 아니더군요. 저는 그럴 상황되면 반드시 안락사나 다른 방안을 찾을 겁니다.
어머니도 고생 덜하고 가신 것도 좋게 생각하시면서 극복하세요.
그립네요..미안하고. 많이 보고 싶네요.
6/23 아버지를 떠나보냈습니다.
그 전까지는 무척 건강하셨고
뭐든 잘 드셨는데
호흡기로 병원 찾았다가 내시경 해보고
정말 뜬금없이 암진단.
바로 집에 갈 줄 알았더니
병원에 누워있고
어느새 말을 못하고 고통만 계속.
제 눈앞에서 산소포화도 떨어지고
(코줄, 마스크, 고용량산소호흡기로 바꿔가며 해봤는데)
결국 혈압까지 떨어지는 거 보면서
두어시간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호스피스 예약도 해두었는데
그만 아프고 싶으셨는지 이렇게 가셨네요.
주말에 아버지 짐 정리하면서
제 군대 시절 사용하던 돌핀시계와
지갑이 나오면서 또 오열했습니다.
아빠 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기억이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합니다.
어디에선가 저 모르게 잘 살고 계실거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그 후 딱 몇 주 후부터 우울하다 못해 자살생각부터 별 생각이 다 듭니다.
내가 살아야지 그래야 의미가 있다고 애써 스스로를 자위합니다.
..... 잊은듯 살다가 다시 추억이 느껴지는 어떤 냄새 하나에 또 터져나오고
결국 추억은 마치 오래된 상처처럼 지워지지 않고 먹먹함으로 감춰집니다.
그렇게 가슴에 묻고 삽니다.
애순이 시어머니가 말하죠. 살민 또 살아진다....
우리 친정 아빠 상가에 오신 시어머니께서 똑같이 말씀 하시더군요.
살민 또 살아진다. (시어머니가 제주도 토박이)
드라마는 갑작스레 자식잃은 며느리에게 한 말이고..
우리 시어머니는 부모 잃은 며느리에게 한 말이지만..
그 말이 맞네요.
다 살아집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