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나은세상_님 피해자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조작이라니…조작이라면 민간인에 대한 폭행 사실이 애초에 없는데 지어냈다는 얘기인가요? 아니면 폭행 사실은 존재하나 유시민이 폭행에 직접 참여만 안 했다는 것인가요? 폭행은 직접 안 했더라도 방보하거나 폭행활동에 이르기까지 과정에 기능적 분담을 했으면 적어도 방조범이거나 심하게는 공동정범입니다.
운동권의 범죄행각까지 옹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군사정권하고 뭐가 달라요? 권력을 지닌 놈들 아닌 놈들 차이 밖에 없죠.
폭행 피해자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겁니다. 양심이 있으면 사과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아, 양심이 없으니까 지지하는 인간들도 지지받는 인간들도 이런 것인가보군요.
@더나은세상_님 폭행은 직접 안 했더라도 방조하거나 폭행활동에 이르기까지 과정에 기능적 분담을 했으면 적어도 방조범이거나 심하게는 공동정범입니다.
김씨는 당시 군사정권이 유씨를 무리하게 '폭력사범'으로 엮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폭력행위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당시 학생들이 4명의 피해자에 대해 심한 폭행을 가한 것은 사실이다. 마치 왜정 때 순사들이 하던 것처럼…. 몽둥이로 악랄하게 했다. 심지어 학생들은 피해자들의 손발을 묶고 주전자로 물고문을 하기도 했다. 서울대 학생들이 그때 매우 흥분한 상태였고, 유씨조차 그런 상황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김씨는 유씨가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유씨가 '항소이유서'에서 밝혔듯,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은 있지만 폭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한 사실은 없다. '항소이유서'에서 유씨가 말한 내용이 100% 맞는 말이다. 일부 언론에서 유시민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보도하거나, 마치 유시민이 '폭력배의 거두'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모두 헛소리다."
1984년 9월 26일 오후 4시경부터 9월 27일 오후10시 까지 정용범, 전기동을 불법감금하고 폭행, 고문 조작 왜곡 허위사실유포한 내용은 정용범과 전기동의 사건에 있어서는 학도호국단과 복학생협의회가 주도하여 사건을 진행하였으며, 특히 조사를 위한 팀까지 구성, 유 피고인은 전기동을 담당하기로까지 결의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폭행 및 고문에 참여했던 심윤남의 진술에 의하면 “유시민, 심재철형이 있는 가운데 회의를 열고 정용범과 전기동의 조사를 담당할 팀을 각 6명씩 2팀으로 하고 유시민형은 전기동을 조사하기로 했다, 유시민형은 조사를 한다고만 하였다가 승낙만을 하고 실제는 하지 않고, 가끔 2개소를 돌아 다니면서 조사사항을 살펴보았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폭행과 고문 후 조사 사항을 유시민에게 보고했다는 사실은 “호국단 집행부연구실로 가서 심재철, 유시민에게 전기동의 조사결과 거짓말을 한다고 말하였다”는 진술내용이다.
당시 유 피고인이 정용범과 전기동의 불법체포 행위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폭행과 고문행위를 목격(당시 유시민은 각목의 두께나 눈을 가린 천의 종류까지 수사관에게 설명했다)했고 이것이 범죄행위임을 명백히 알고도 조사에 찬동하고, 후배학생들에게 진행사항을 보고 받는 등 주도적 역할을 하였음은 유시민의 신문조서와 피의자, 피해자들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당시 사건의 주동자인 오재영(서울대프락치 사건대책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학도호국단 학생장직무대행)은 9월 26일, 폭행과 고문이 자행되던 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전기동과 정용범은 복학생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져 그날 밤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인 유시민이 관장했는지는 확실치 않았고, 그 후에 신병문제에 대하여 유시민이 하는 말을 들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모든 것은 자기책임이라고 하였다. 저와 남승우, 유시민, 윤호중 등 ~ 중략~ 그 5~6명중에서 제일 선배는 유시민형이었다”는 것.
또한 조사관이 “그날 밤 주로 누구의 의견에 의하여 행동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오재영은 “그날 밤 의사권은 선배와 간부들이 하였기 때문에 주로 유시민형이 하였고 저희는 그때 동조를 하게 된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전기동씨 직접적인 구호는 유시민이 한 게 아니다
또 “전기동과 정용범의 조사는 프락치사건진상조사위원에서 직접 조사하지 않고 유시민과 조원봉으로부터 조사결과를 전달 받았다”라고 말했다.
9월 27일 오후 9시경 “이정우, 백기영, 윤호중, 본인(오재영)이 만나 학교 측에서 책임지고 치료를 해주겠다고 하여 본인(오재영)과 이정우가 들것에 실어 수위들과 함께 전기동을 인도 하였다”라고 하고 있어 폭행 구타 고문 조작 왜곡 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전기동의 직접적인 구호활동을 한 것이 유 피고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고 했다.
전씨는 유 피고인이 자신이 당시 사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당시 정권의 조작으로 몰고 가는 행태가 역겹다며 유피고인 본인이 자필 서명한 신문조서(아래 박스기사 참조)를 제시했다.
전씨는 “위 내용만으로도 유시민에 대해 당시사건의 주동자로써 형사처벌을 받은 것이 정권의 조작이라고 할 수 는 없는 것이다”며 “일례로 유시민측은 임신현을 붙잡았을 당시 감기와 오한으로 평소 타지 않던 택시까지 타고 집에 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한 바 있는데 임신현의 다음날 조사과정에 유시민이 얼마나 막대한 역할을 했는지는 이제라도 진실되게 가슴에 손을 얹고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또 "유 피고인의 자필서명 진술서가 고문 등의 억압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란 것은 똑똑한 유 피고인이 법정에서 당시 고문 등 조작에 의한 진술이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없는 점으로 보아 자의에 의한 자필 서명임이 분명하다"며 "20년전 법에서 합당한 벌을 받은 것을 이제 와서 조작운운 하는 유 피고인과 그의 거짓말을 옹호하고 따르는 지지자들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월28일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고양시 덕양갑, 16-17대)의 17대 총선당시 허위사실유포혐의에 의한 선거법 공판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온 1984년 사건 당시 가해자중 한명이었던 이정우씨는 사건 당시 최고의 억울한 피해자인 전기동씨에게 “당시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당시 사건으로 꿈이 좌절된 것에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한 3월14일 최종공판에서 1984년 당시 관악경찰서 수사과장였던 김모 증인은 1984년 서울대 민간인 불법 감금 폭행 고문 자백강요사건과 관련 “당시 상부의 지시에 따라 별개 사건을 학원 폭력사건으로 조작했다”는 식의 진술을 하며 “유시민은 직접 폭행하거나 지시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는 진술을 했다.
즉 유피고인이 사건 당시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았는데도 당시 상부의 지시에 따라 유피고인을 애매하게 엮어 넣어 억울한 징역형을 살게 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일부 언론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위반으로 기소된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의 재판과 관련해 다시 부각되고 있는 1984년 소위 ‘서울대프락치사건’에서 유 의원이 폭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언이 당시 담당 수사과장으로부터 나왔다”며 유피고인이 1984년 사건 당시 지시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음에도 억울한 희생양으로 보도했다.
이에 전씨는 “사실은 사실대로 국민들이 알아야한다”며 “이제라도 모든 진실을 밝혀 피해자가 두 번 아픔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이 사건의 성격은 우발적인 단순 폭행사건이 아니라 9월17일부터 9월27일까지 11일간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폭행 고문 조작 왜곡 허위사실 유포사건이다"고 말했다.
"벌써 35년 전 일인데 여전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건 발생 후 각 대학에 피해자들이 오히려 잘못한 것처럼 대자보가 붙더라. 당시 저는 방송통신대 법학과 3학년에 다니며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방송통신대 학생들은 서울대 법대에서 수업을 받기도 했다. 레포트 작성을 위해 서울대 모 교수님에게 책을 빌리러 갔다가 붙잡혔다. 가해자들에게 그 교수님에게 확인해보라고 했다. 교수님이 내 신분을 확인해줬는데도 믿지 않고 폭행을 계속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가해자들이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해서 따라갔다. 내가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계속 아니라고 하니까 교련복으로 갈아입히고 눈을 가렸다. 그때부터 폭행이 시작됐다. 돌아가면서 몇 시간 씩 나를 폭행했다. 가해자들은 우발적인 사건이었다고 하는데 나를 감금한 장소 창문을 미리 신문지로 다 가려놨더라. 물이 담긴 세면대에 머리를 쳐 박거나, 바닥에 눕히고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붓는 등 물고문도 했다. 이 과정에서 치아가 부러지고 전치 8주 부상을 입었다. 고문에 못 이겨 내 군대시절 상관이 시켜서 왔다고 아무렇게나 말했다. 고문 도중 실신해 2일 만에 풀려났다. 이틀간 식사도 못했다. 풀려나기 직전에야 빵을 주더라. 당연히 먹지도 못했다. 병원에서도 한동안 혼자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유 이사장은 피해자를 위해 구급차를 부르는 등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말도 너무 화가 난다. 내가 잘못되면 자기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그런 거지 나를 위해 한 행동인가."
▷유 이사장은 폭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나는 당시 누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눈을 가린 채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사건의 전말을 몰랐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 이사장은 피해자 소지품을 뒤져 신분을 확인하는 등 직접 프락치 색출작업을 했다. 유 이사장은 피해자들을 신문하면서 '계속 다른 말을 하면 나중에 두고 보자'는 등 협박성 발언도 했다. 가해자들은 유 이사장 앞에서 피해자들을 폭행했다. 유 이사장은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 이들을 말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피해자 4명 중 가장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
"당시 운동권 사람들이 전두환을 미워하지 않았나. 내가 전두환과 같은 전 씨라고 심하게 폭행했다. 정말 미개한 사고방식이었다."
▷지난 2006년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려 했지만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반대로 증인 채택이 불발됐다. 증인으로 출석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그냥 저런 인간이 장관 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건 이후 유 이사장이 사과한 적이 있나.
"지난 1997년 유 이사장이 자기 책에서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라는 명칭을 써서 소송을 걸었다. 피해자들은 프락치가 아니라 민간인들이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아니라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이다. 판사가 합의를 권유하면서 유 이사장에게 사과하라고 하더라.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 이사장이 제게 사과했다.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소송 때문에 유 이사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사과는 커녕 아는 체도 안하더라."
▷지금이라도 유 이사장이 사과한다면 용서할 생각은 있나.
"35년 간 피해자들을 음해하다가 이제 와서 사과한다? 또 자기가 불리해지니까 사과하는 거지. 용서하기 싫다."
@선비의기개님 만약 그렇다면 양쪽 모두 진실을 알 수가 없다는 것만 사실이죠. 선비의기개님도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유시민이 방조했다는 주장은 틀린 주장이죠. 결과적으로는 양쪽 모두 주장이 다르므로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가 맞겠죠.
끄레올
IP 140.♡.29.4
07-04
2026-07-04 21:59:51
·
@선비의기개님
Leo1121
IP 175.♡.170.124
07-04
2026-07-04 22:04:37
·
@선비의기개님
선비의기개
IP 118.♡.80.198
07-04
2026-07-04 22:15:01
·
@더나은세상_님 방조했다 아니다 둘 중에 적어도 하나는 참이겠죠. 만약 수사과장의 말이 참이 아니었다면 정권의 기획•조작 기소였다는 주장도 뿌리채 흔들리겠죠. 현재 시점에서 방조냐 아니냐를 알 수 없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초두에 본 사건이 조작이라고 “밝혀졌다”라고 하셨는데 수사과장의 증거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면 그 주장도 진위여부가 판단 불가능하겠죠.
제미나이의 사건 소개와 유시민에 비판점으로 마지막으로 저의 답변을 갈음합니다.
1. 유시민의 주장: "말리고 현장을 떠났다" 그는 학생들이 민간인을 프락치로 의심해 잡아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서울대 학생회관)으로 갔습니다. 상황을 본 뒤 후배 학생들에게 **"프락치가 맞든 아니든 빨리 내보내라"**고 지시하며 만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그의 말을 즉각적으로 듣지 않았고, 본인은 복학생협의회 대표로서 다른 시위 일정이나 업무가 바빠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현장)을 빠져나왔다는 것입니다.
2. 이 해명에 대한 비판점 질문자님이 짚으신 그 지점이 바로 유시민 전 이사장이 이 사건과 관련해 가장 강하게 비판받는 핵심입니다. 방조의 책임: 본인은 직접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고 말리기도 했다고 주장하지만, 끔찍한 가혹행위가 벌어질 수 있는 현장을 보고도 피해자들을 직접 구출해 내거나 물리적으로 강하게 제지하지 않고 '말만 하고 방을 나간 것' 자체가 심각한 방조라는 비판입니다. 지도부로서의 무책임: 당시 그는 서울대 학생운동의 최고 책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가 현장을 떠난 뒤에도 무고한 민간인들에 대한 감금과 물고문 등 끔찍한 폭행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선비의기개
IP 118.♡.80.198
07-04
2026-07-04 22:22:57
·
@더나은세상_님 마지막으로 우리가 논의했던 당사자의 문헌을 인용하겠습니다.
본 피고인은 복학생 협의회의 사실상의 대표로서 개인적으로 비폭력의 원칙을 준수해야 할 소극적 의무에 부가하여 학생운동의 전체수준에서도 이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적극적 의무 또한 완수해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9월 26일 밤 전기동, 정용범 양인이 구타당하는 광경을 잠시 목격하고서도 그것을 제지하려 하지 않았던 본 피고인에게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큰 윤리적 책임이 있음에 분명합니다.
또한 임신현, 손형구의 경우에도 본 피고인이 사건에 접했을 때는 이미 감금 및 조사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어떠한 지시를 내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 자신도 조사를 위한 감금에 명백히 찬동했으며, 또 잠시나마 직접 조사에 임한 적도 있기 때문에 법률을 어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에 따른 책임이라면 흔쾌히 감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경우, 가능한 한 짧은 감금과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실제로 이 원칙이 관철되었으므로 본 피고인은 아무런 윤리적 책임도 느끼지 않습니다.
-유시민, <항소이유서>
더나은세상_
IP 125.♡.69.19
07-04
2026-07-04 22:43:46
·
@선비의기개님 제미나이의 의견을 들어보니 생각이 바뀌었다는 건가요? 제미나이의 의견이 정답은 아닙니다. 빨리 내보내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방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죠. 첫 문장에 선비의기개님도 인정하신 것처럼 방조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동의하신다면서요?
선비의기개
IP 118.♡.80.198
07-04
2026-07-04 23:12:59
·
@더나은세상_님 유시민의 주장을 한 번 나열해본 것 입니다^^ 여기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정보가 더 필요할 것 같네요.
더나은세상_
IP 125.♡.69.19
07-04
2026-07-04 23:57:10
·
@선비의기개님 방조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동의하신 건 맞죠? 그리고 군사독재 시절 대학교에 실제로 프락치들을 투입한 것은 인정하시나요?
Roxy
IP 112.♡.129.23
07-04
2026-07-04 19:08:22
·
갈라치기 같은 거 하지 마시고 지식과 통찰을 좋은 일에 활용해서 긍정적인 역할 하시기 바랍니다. 유시민씨가 정치에 직접 개입할 때, 민주당에는 좋은 일이 안 생깁니다. 지지율 하락은 덤이고요.
회천의 결단
IP 112.♡.77.19
07-04
2026-07-04 19:22:31
·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 줍고 있다' 예전에 하신 이 말씀이 생각나네요
카인백작
IP 222.♡.178.81
07-04
2026-07-04 21: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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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마다 노무현 대통령을 파네요.
미노와듕익
IP 182.♡.230.145
07-04
2026-07-04 23:27:46
·
유시민 작가 출구전략이 나온 것 같습니다. 용역 음모론이 잘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 때마침 이병태가 등장했네요.
아마 이 건으로 대통령을 흔들기에 나서지 않을까 싶어요. 침소봉대하기 딱 좋은 소재지요.
호재 생겨서 기쁘실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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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유일하게 어떠한 잇속 없이 옳은 소리 쓴 소리 하고 있는 분인거 같은데요.
책 광고한다.. 어쩐다는 원래부터 베스트셀러작가였으니 택도 없는 소리구요....
모를 수 있습니다.
모르는건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어떤 활동을 하실지 궁금하네요.
용역이나 촉법 이런 소리가 정치적 지위의 평등을 지향하는 진보 가치에 부합하기는 한가요?
운동권의 범죄행각까지 옹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군사정권하고 뭐가 달라요? 권력을 지닌 놈들 아닌 놈들 차이 밖에 없죠.
폭행 피해자는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겁니다. 양심이 있으면 사과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아, 양심이 없으니까 지지하는 인간들도 지지받는 인간들도 이런 것인가보군요.
이건 알고 계신지 모르겠네요^^
당시 수사 책임자가 양심 고백까지 했는데 그럼 저도 일베에서 주장하는 거짓 선동과 동일한 발언을 하는 선비의기개님이 일베에서 왔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김씨는 당시 군사정권이 유씨를 무리하게 '폭력사범'으로 엮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폭력행위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당시 학생들이 4명의 피해자에 대해 심한 폭행을 가한 것은 사실이다. 마치 왜정 때 순사들이 하던 것처럼…. 몽둥이로 악랄하게 했다. 심지어 학생들은 피해자들의 손발을 묶고 주전자로 물고문을 하기도 했다. 서울대 학생들이 그때 매우 흥분한 상태였고, 유씨조차 그런 상황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김씨는 유씨가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유씨가 '항소이유서'에서 밝혔듯,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은 있지만 폭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한 사실은 없다. '항소이유서'에서 유씨가 말한 내용이 100% 맞는 말이다. 일부 언론에서 유시민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보도하거나, 마치 유시민이 '폭력배의 거두'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모두 헛소리다."
피해자 전기동님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피해자 정용범 전기동 불법감금 폭행 고문 조작 왜곡 허위사실 유포 사건
1984년 9월 26일 오후 4시경부터 9월 27일 오후10시 까지 정용범, 전기동을 불법감금하고 폭행, 고문 조작 왜곡 허위사실유포한 내용은 정용범과 전기동의 사건에 있어서는 학도호국단과 복학생협의회가 주도하여 사건을 진행하였으며, 특히 조사를 위한 팀까지 구성, 유 피고인은 전기동을 담당하기로까지 결의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폭행 및 고문에 참여했던 심윤남의 진술에 의하면 “유시민, 심재철형이 있는 가운데 회의를 열고 정용범과 전기동의 조사를 담당할 팀을 각 6명씩 2팀으로 하고 유시민형은 전기동을 조사하기로 했다, 유시민형은 조사를 한다고만 하였다가 승낙만을 하고 실제는 하지 않고, 가끔 2개소를 돌아 다니면서 조사사항을 살펴보았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폭행과 고문 후 조사 사항을 유시민에게 보고했다는 사실은 “호국단 집행부연구실로 가서 심재철, 유시민에게 전기동의 조사결과 거짓말을 한다고 말하였다”는 진술내용이다.
당시 유 피고인이 정용범과 전기동의 불법체포 행위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폭행과 고문행위를 목격(당시 유시민은 각목의 두께나 눈을 가린 천의 종류까지 수사관에게 설명했다)했고 이것이 범죄행위임을 명백히 알고도 조사에 찬동하고, 후배학생들에게 진행사항을 보고 받는 등 주도적 역할을 하였음은 유시민의 신문조서와 피의자, 피해자들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당시 사건의 주동자인 오재영(서울대프락치 사건대책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학도호국단 학생장직무대행)은 9월 26일, 폭행과 고문이 자행되던 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전기동과 정용범은 복학생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져 그날 밤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인 유시민이 관장했는지는 확실치 않았고, 그 후에 신병문제에 대하여 유시민이 하는 말을 들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모든 것은 자기책임이라고 하였다. 저와 남승우, 유시민, 윤호중 등 ~ 중략~ 그 5~6명중에서 제일 선배는 유시민형이었다”는 것.
또한 조사관이 “그날 밤 주로 누구의 의견에 의하여 행동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오재영은 “그날 밤 의사권은 선배와 간부들이 하였기 때문에 주로 유시민형이 하였고 저희는 그때 동조를 하게 된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전기동씨 직접적인 구호는 유시민이 한 게 아니다
또 “전기동과 정용범의 조사는 프락치사건진상조사위원에서 직접 조사하지 않고 유시민과 조원봉으로부터 조사결과를 전달 받았다”라고 말했다.
9월 27일 오후 9시경 “이정우, 백기영, 윤호중, 본인(오재영)이 만나 학교 측에서 책임지고 치료를 해주겠다고 하여 본인(오재영)과 이정우가 들것에 실어 수위들과 함께 전기동을 인도 하였다”라고 하고 있어 폭행 구타 고문 조작 왜곡 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전기동의 직접적인 구호활동을 한 것이 유 피고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고 했다.
전씨는 유 피고인이 자신이 당시 사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당시 정권의 조작으로 몰고 가는 행태가 역겹다며 유피고인 본인이 자필 서명한 신문조서(아래 박스기사 참조)를 제시했다.
전씨는 “위 내용만으로도 유시민에 대해 당시사건의 주동자로써 형사처벌을 받은 것이 정권의 조작이라고 할 수 는 없는 것이다”며 “일례로 유시민측은 임신현을 붙잡았을 당시 감기와 오한으로 평소 타지 않던 택시까지 타고 집에 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한 바 있는데 임신현의 다음날 조사과정에 유시민이 얼마나 막대한 역할을 했는지는 이제라도 진실되게 가슴에 손을 얹고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또 "유 피고인의 자필서명 진술서가 고문 등의 억압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란 것은 똑똑한 유 피고인이 법정에서 당시 고문 등 조작에 의한 진술이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없는 점으로 보아 자의에 의한 자필 서명임이 분명하다"며 "20년전 법에서 합당한 벌을 받은 것을 이제 와서 조작운운 하는 유 피고인과 그의 거짓말을 옹호하고 따르는 지지자들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월28일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고양시 덕양갑, 16-17대)의 17대 총선당시 허위사실유포혐의에 의한 선거법 공판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온 1984년 사건 당시 가해자중 한명이었던 이정우씨는 사건 당시 최고의 억울한 피해자인 전기동씨에게 “당시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당시 사건으로 꿈이 좌절된 것에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한 3월14일 최종공판에서 1984년 당시 관악경찰서 수사과장였던 김모 증인은 1984년 서울대 민간인 불법 감금 폭행 고문 자백강요사건과 관련 “당시 상부의 지시에 따라 별개 사건을 학원 폭력사건으로 조작했다”는 식의 진술을 하며 “유시민은 직접 폭행하거나 지시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는 진술을 했다.
즉 유피고인이 사건 당시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았는데도 당시 상부의 지시에 따라 유피고인을 애매하게 엮어 넣어 억울한 징역형을 살게 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일부 언론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위반으로 기소된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의 재판과 관련해 다시 부각되고 있는 1984년 소위 ‘서울대프락치사건’에서 유 의원이 폭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언이 당시 담당 수사과장으로부터 나왔다”며 유피고인이 1984년 사건 당시 지시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음에도 억울한 희생양으로 보도했다.
이에 전씨는 “사실은 사실대로 국민들이 알아야한다”며 “이제라도 모든 진실을 밝혀 피해자가 두 번 아픔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이 사건의 성격은 우발적인 단순 폭행사건이 아니라 9월17일부터 9월27일까지 11일간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폭행 고문 조작 왜곡 허위사실 유포사건이다"고 말했다.
▷당시 피해자들이 실제 프락치였다는 주장이 있다.
"벌써 35년 전 일인데 여전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건 발생 후 각 대학에 피해자들이 오히려 잘못한 것처럼 대자보가 붙더라. 당시 저는 방송통신대 법학과 3학년에 다니며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방송통신대 학생들은 서울대 법대에서 수업을 받기도 했다. 레포트 작성을 위해 서울대 모 교수님에게 책을 빌리러 갔다가 붙잡혔다. 가해자들에게 그 교수님에게 확인해보라고 했다. 교수님이 내 신분을 확인해줬는데도 믿지 않고 폭행을 계속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가해자들이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해서 따라갔다. 내가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계속 아니라고 하니까 교련복으로 갈아입히고 눈을 가렸다. 그때부터 폭행이 시작됐다. 돌아가면서 몇 시간 씩 나를 폭행했다. 가해자들은 우발적인 사건이었다고 하는데 나를 감금한 장소 창문을 미리 신문지로 다 가려놨더라. 물이 담긴 세면대에 머리를 쳐 박거나, 바닥에 눕히고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붓는 등 물고문도 했다. 이 과정에서 치아가 부러지고 전치 8주 부상을 입었다. 고문에 못 이겨 내 군대시절 상관이 시켜서 왔다고 아무렇게나 말했다. 고문 도중 실신해 2일 만에 풀려났다. 이틀간 식사도 못했다. 풀려나기 직전에야 빵을 주더라. 당연히 먹지도 못했다. 병원에서도 한동안 혼자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유 이사장은 피해자를 위해 구급차를 부르는 등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말도 너무 화가 난다. 내가 잘못되면 자기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그런 거지 나를 위해 한 행동인가."
▷유 이사장은 폭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나는 당시 누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눈을 가린 채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사건의 전말을 몰랐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 이사장은 피해자 소지품을 뒤져 신분을 확인하는 등 직접 프락치 색출작업을 했다. 유 이사장은 피해자들을 신문하면서 '계속 다른 말을 하면 나중에 두고 보자'는 등 협박성 발언도 했다. 가해자들은 유 이사장 앞에서 피해자들을 폭행했다. 유 이사장은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 이들을 말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피해자 4명 중 가장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
"당시 운동권 사람들이 전두환을 미워하지 않았나. 내가 전두환과 같은 전 씨라고 심하게 폭행했다. 정말 미개한 사고방식이었다."
▷지난 2006년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려 했지만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반대로 증인 채택이 불발됐다. 증인으로 출석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그냥 저런 인간이 장관 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건 이후 유 이사장이 사과한 적이 있나.
"지난 1997년 유 이사장이 자기 책에서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라는 명칭을 써서 소송을 걸었다. 피해자들은 프락치가 아니라 민간인들이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아니라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이다. 판사가 합의를 권유하면서 유 이사장에게 사과하라고 하더라.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 이사장이 제게 사과했다.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소송 때문에 유 이사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사과는 커녕 아는 체도 안하더라."
▷지금이라도 유 이사장이 사과한다면 용서할 생각은 있나.
"35년 간 피해자들을 음해하다가 이제 와서 사과한다? 또 자기가 불리해지니까 사과하는 거지. 용서하기 싫다."
정말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재심신청을 하겠죠?
이제 무의미한 논쟁은 여기서 중단하고 싶습니다.
그러나…초두에 본 사건이 조작이라고 “밝혀졌다”라고 하셨는데 수사과장의 증거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면 그 주장도 진위여부가 판단 불가능하겠죠.
제미나이의 사건 소개와 유시민에 비판점으로 마지막으로 저의 답변을 갈음합니다.
1. 유시민의 주장: "말리고 현장을 떠났다"
그는 학생들이 민간인을 프락치로 의심해 잡아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서울대 학생회관)으로 갔습니다.
상황을 본 뒤 후배 학생들에게 **"프락치가 맞든 아니든 빨리 내보내라"**고 지시하며 만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그의 말을 즉각적으로 듣지 않았고, 본인은 복학생협의회 대표로서 다른 시위 일정이나 업무가 바빠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현장)을 빠져나왔다는 것입니다.
2. 이 해명에 대한 비판점
질문자님이 짚으신 그 지점이 바로 유시민 전 이사장이 이 사건과 관련해 가장 강하게 비판받는 핵심입니다.
방조의 책임: 본인은 직접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고 말리기도 했다고 주장하지만, 끔찍한 가혹행위가 벌어질 수 있는 현장을 보고도 피해자들을 직접 구출해 내거나 물리적으로 강하게 제지하지 않고 '말만 하고 방을 나간 것' 자체가 심각한 방조라는 비판입니다.
지도부로서의 무책임: 당시 그는 서울대 학생운동의 최고 책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가 현장을 떠난 뒤에도 무고한 민간인들에 대한 감금과 물고문 등 끔찍한 폭행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논의했던 당사자의 문헌을 인용하겠습니다.
본 피고인은 복학생 협의회의 사실상의 대표로서 개인적으로 비폭력의 원칙을 준수해야 할 소극적 의무에 부가하여 학생운동의 전체수준에서도 이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적극적 의무 또한 완수해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9월 26일 밤 전기동, 정용범 양인이 구타당하는 광경을 잠시 목격하고서도 그것을 제지하려 하지 않았던 본 피고인에게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큰 윤리적 책임이 있음에 분명합니다.
또한 임신현, 손형구의 경우에도 본 피고인이 사건에 접했을 때는 이미 감금 및 조사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어떠한 지시를 내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 자신도 조사를 위한 감금에 명백히 찬동했으며, 또 잠시나마 직접 조사에 임한 적도 있기 때문에 법률을 어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에 따른 책임이라면 흔쾌히 감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경우, 가능한 한 짧은 감금과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실제로 이 원칙이 관철되었으므로 본 피고인은 아무런 윤리적 책임도 느끼지 않습니다.
-유시민, <항소이유서>
유시민의 주장을 한 번 나열해본 것 입니다^^
여기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정보가 더 필요할 것 같네요.
유시민씨가 정치에 직접 개입할 때, 민주당에는 좋은 일이 안 생깁니다.
지지율 하락은 덤이고요.
아마 이 건으로 대통령을 흔들기에 나서지 않을까 싶어요. 침소봉대하기 딱 좋은 소재지요.
호재 생겨서 기쁘실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