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화의 원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고 봅니다.
사람은 적을 만들고, 그 적을 이기는 과정에서 강한 쾌감을 느낍니다. 특히 어릴수록 반항, 금기, 자극에 쉽게 끌립니다. 이건 어느 세대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어렸을 때는 그랬습니다. 그 시절의 강자와 기득권은 폭력적인 선생, 권위적인 어른, 보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가 맞서야 할 적처럼 보였습니다.
권위주의를 건드리고 무너뜨리는 일은 통쾌했습니다. 나를 억압하던 악인이 몰락하는 장면은 강한 도파민을 줬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부 젊은 세대에게는 진보가 기득권이고 강자로 보입니다. 예전의 보수 권위주의가 차지하던 자리에, 지금은 진보적 가치와 정치적 올바름이 올라와 있는 겁니다.
문제는 선을 그대로 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을 “위선”이라고 부릅니다. 약자를 보호하자는 말을 “특권”이라고 바꾸고, 차별하지 말자는 말을 “검열”이라고 바꿉니다. 그렇게 선을 악으로 재해석한 뒤, 그것을 부수는 데서 반항의 쾌감을 얻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자극적인 것은 사회의 금기를 건드리는 일입니다. 과거의 금기는 보수적 권위주의였습니다. 하지만 그 권위주의가 약해진 지금, 남아 있는 금기는 선과 약자입니다. 그래서 일부는 선과 약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자극과 반항을 소비합니다.
우리나라가 최근 비교적 크게 모든세대가 하나로 뭉쳤던 순간도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우리 산업을 압박했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적이 선명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압박을 가하는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왜 버텨야 하는지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좌우와 세대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는 그런 선명한 적을 잘 보지 못합니다. 분노는 있는데 방향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동하는 누군가가 “저들이 너의 적이다”라고 짚어주면, 그쪽으로 쉽게 끌려갑니다. 진짜 적을 찾은 것이 아니라, 적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해결책도 결국 하나라고 봅니다.
분노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노가 향해야 할 실제 권력과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 가짜 적이 아니라 진짜 문제를 짚어주는 것.
제가 보는 극우화의 원인은 이것입니다. 반항의 본능은 그대로인데, 그 반항이 향할 대상을 잘못 배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의식이 없는 세대가 형성된게 원인이 아닌가 싶어요.
누구나 접속 가능하고 수 많은 정보들과 쓰레기들을 배설하는 곳
관심 가는 게임이나 취미에 대한 자료나 경험담들이 어느 사이트보다 실시간으로 갱신 되는 곳이니 몇 번 들어가 보다가 자극적인 이슈에 각종 갤러리들 다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물 들어버리는.
가장 많은 밈들이 생성되고 놀기 좋은 곳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