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의원들이나 당직자들
그리고 한동훈이나 이준석 같은 사람들도 거리낌없이 말합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하고 그걸 막으면 '선택적'이거나 '좌파'이념이라고 말이죠.
저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자유는 국가나 특정 집단이 폭력적 수단과 힘으로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 생각과 사상을 억압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입니다.
우리 헌법이 사전 검열을 금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죠.
최근 배제고 야구부 학생들의 사건을 보며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자유에는 책임과 무게가 따릅니다.
그 표현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 특히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스타벅스 마케팅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업 총수가 사과하고 전 직원이 교육을 받은 것은 그들이 자유를 누렸으나 그 자유가 다수 국민에게 큰 아픔을 안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가 ‘커피 한 잔의 자유’라면서 헌법상 보장된 자유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위를 했죠.
표현의 자유가 거리낌 없는 혐오와 조롱, 무책임한 표현까지 면책받을 권리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나 당직자들 그리고 한동훈이나 이준석 등은
그런 행위들이 당사자와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국민들에게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함으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를 지적하면 ‘좌파 이념’으로 몰아 이념 대결로 치환해 버리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는 표현의 자유 뒤에 따라야 할 책임을 면제하고
오히려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이 되어 버립니다.
아이러니한 결과입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책임성이 모호해지면서 부통령이 영국 사법 체계의 판결을 ‘백인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비판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유색인종에 의한 백인 피해 범죄를 지속적으로 부각하며 인종차별적 정책을 옹호하거나 합리화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례로 미국을 들었습니다만
사실 이건 전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자신의 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생각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하는 청년층이 쉽게 혐오와 차별과 배제의 언어에 휩쓸리는 이유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유를 행사한 뒤에 따르는 책임도 함께 인정해야 합니다.
자유를 무기로 삼아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또는 반대 의견을 이념으로 몰아 억압하는 행위는 결국 민주주의 자체를 약화시킬 뿐입니다.
자유에 따른 책임 그 균형을 우리 사회가 되돌아 보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사태가 가져올 우리 사회의 미래가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네요.
저들은 모르지 않습니다
일벌백계만이 미래를 바꿀수 있습니다
다만 얼마나 돌아갈지가 문제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문제되는 발언을 하는 놈들의 목소리가 대다수의 의견은 아니니 정화될겁니다.
혐오의 자유는 폐륜입니다.
다만 민간이 알아서 그런 것과 관련된 제재를 하는 문화를 유발하도록 생각해야 할 것 같네요.
공감합니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신성불가침의 권리는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