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며 잉여 자원의 발생과
그로 인한 역할 분담 등의 과정을 우리는 역사 책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도시가 세워지고 수십 명이 아니라 큰 단위의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더 풍족하게 살기 위해, 나아가 더 강한 무력을 갖기 위해 물자의 교류가 활발해졌음을 알 수 있게 하고,
종종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은 그 만큼의 권력을 가진 이들이 존재 했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 때 다른 도시를 정복하고 얻게 되는 전쟁 포로,
엄격한 규율을 어긴 범죄자,
수메르라는 아주 오래된 문명의 기록에도 남아 있을 정도로 활발했던 주변과의 교역 및
상업 활동의 여파로 발생하는 채무자 등은
모두... 본인의 행적 또는 전쟁으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본인과 상황이 다른... 자녀는 노예가 아니라는 말이며,
대체적으로 세계 역사 속의 대부분의 문명권은 이러한 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모르는 어떤 곳에서 자녀까지 노예가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주인이 풀어주거나 글레디에이터에서 본 것처럼 몸값을 지불하는 경우,
군공을 통해 노예 신분을 벗어나는 경우가 광범위하게 존재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종종 돈을 벌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는 내용을 접하고는 하지만,
그것을 조선과 연결 짓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이는 조선과 미국의 노예 제도가 갖는 속성 때문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조선은 우리나라의 가장 가까운 시기의 왕조였고,
그 문화가 지금도 절대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
미국 역시 우리가 가장 신경 써서 소식을 접하게 되는 나라.
이렇다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예 이미지는
미스터 션샤인에서 보았듯이 자식까지 노예여서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
역사를 배울 때도 어머니가 종이면 그 자녀도 종인가..뭐 이런 제도에 관한
정파싸움이 자주 있었다는 것을 인지는 합니다.
즉 별개로는 아는데, 연결은 못해서,
기준 값이 조선으로 세팅되어 기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실은 조선처럼 악랄하게 재산 취급 하여 대를 이어 노예 세습이 되는 경우가 예외적 케이스입니다.
재산 취급, 물건 취급이다 보니....
자신의 재산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성리학자들은
기괴한 논리를 만들어 내어 적용시키기까지 합니다.
납속면천이라던지 관련한 시도가 없던 것은 아니나 너무나 미미했었습니다.
양난을 거치고 나중에 해방 제도가 완화 됩니다.
이는 사실상 국가 재정의 파탄 때문에 이뤄진 것이나
해방 몸값을 동전 100냥 이하로 법제화까지 하게 됩니다.
문제는 본인이 해방 되더라도 대를 잇는 조선의 노예라는 것은
자녀는 여전히 노예인 상태가 됩니다.
즉, 미국과 조선의 사례는
세계사적으로도 유레를 찾으려면 몇 안되는 악랄한 제도였다는 것입니다.
미국 영화 보면 재산 취급하죠. 물건 취급입니다.
고대사를 보면 장군이었다가 노예로 전락했다가 다시 공적을 쌓아
신분을 회복하는 경우, 빚을 갚지 못해 노예가 되었지만 어릴 때 친구의 도움으로 빚을 갚고,
해방이 되거나... 이런 이야기가 흔합니다.
그럼 조선 이전에는 어떠했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조선처럼... 은 거의 없는 일입니다.
그럼 갑자기 나타난 것일까요.
고려 정종 때 천자수모법이 법제화 됩니다.
자식까지 재산으로 취급하게 되는 제도입니다.
고려 때 이미 심각했지만, 조선은 그러니까 법에 의한 통치를 내세우면서도
성리학의 이념과 동떨어진 노예 제도를
어거지로 군신의 법도를 주종의 이치로 확대하여 적용하는 기괴한 방법을 논리랍시고 개발해서 써먹게 된 것입니다.
정리하면,
삼국 시대 이후의 보다 문명화가 진행 되는 과정에서,
고려시대 때 출생 자체로 세습되는 물권적 개념이 발달했고,
조선 시대에 까지 이어진 것으로,
정복 전쟁에서 잡아 오거나 채무와 같은 일시적 이유가 아니라
자국민을 대상으로 하면서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가장 강했던 경우입니다.
로마의 경우처럼 조금이라도 더 유연했다면 ....
부모 한 쪽이 노예여서 자식도 노예가 아니라
부모 한 쪽이 자유민이면 자식이 자유민이었더라면...
조금 다른 평가가 되었을 텐데,
조선은 성리학의 이념을 어거지로 갖다 붙이고,
고려 때부터 내려온 악습을 이어가며 노비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재산으로 묶어 두기 위해 무조건 신분을 세습 시켰습니다.
적어도 돈을 모아 해방의 제도화라도 잘 되어 있으면 좋은데,
속량이 상대적으로 쉬워진 조선 후기에도
로마처럼 본인이 가장권을 회복하면 자식도 따라 오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식 두당 몸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 순수한 전쟁 노예 같은건 특정 시기 벗어나면 수급이 불 안정 해서.
조금만 찾아 봐도 세습 노예제는 여기저기 막 있어요.
그 돈 내고 자유로워 지는 시스템도 구조가 노동 동기 부여라서
그냥 매질해서 동기 부여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합니다 로마도 대농장에서는 따로 돈으로 의욕 강화 하고 그거 모아서 면천되고 이런식으로 굴러 갔을 가능성이 별로 없고...
조선도 주인 집에서 원격지에 있는 토지 경작하기 위해서 배치된 노예들은
노동 관리 하기 힘들어서 알아서 경작하고 신공 내고 남은 돈 모아서 속량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던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