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청룡기 고교야구 대회가 열린 야구장 한편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집단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배재고등학교의 일부 선수들이 상대 팀인 광주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며 목소리를 높여 조롱한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군부 독재의 폭력을 미화하는 반인륜적 구호가 고등학교 스포츠 현장에서 거침없이 울려 퍼진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더 큰 비극은 적발된 학생의 진술에 있었다. 그는 역사적 비극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밈(Meme)'인 줄 알고 그저 재미로 따라 불렀을 뿐이라고 답했다. 역사적 맥락과 공동체적 윤리가 거세된 채, 혐오와 조롱을 유희처럼 소비하는 '무지한 대중'의 탄생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이 서글픈 풍경은 현대 정치학이 마주한 가장 오래된 공포를 소환한다. 바로 다수의 맹목적인 군중이 이성을 잃고 파멸적인 선택을 내리는 '중우정치(Ochlocracy)'의 위험성이다. 과거 인류는 이러한 중우정치의 폐해와 영토·인구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국민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직접민주주의' 대신, 대표자를 뽑아 권력을 위임하는 '간접민주주의(대의제)'를 타협안으로 선택했다. 대의제는 분명 효율적이었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민의 왜곡과 정치적 소외라는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다가올 미래 사회는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등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을 통해 대의제의 고질적 문제였던 비용과 시간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해 나갈 것이다. 초거대 AI가 복잡한 법안의 핵심과 이해관계를 시민들에게 알기 쉽게 요약해 제공하고,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반의 모바일 투표 시스템이 고도화된다면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다. 바야흐로 국민이 모든 정책을 직접 결정하는 진정한 직접민주주의를 부활시킬 '외형적 통로'가 열리는 셈이다.
문제는 디지털 기술이 민주적 참여의 문턱을 낮추고 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의 사유 능력은 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SNS) 환경은 자극적인 숏폼 영상과 단편적인 텍스트를 통해 정보를 초고속으로 유통한다. 복잡한 맥락과 역사적 인과관계를 거세한 채 오직 '재미'와 '자극'만을 좇는 디지털 플랫폼의 생태계는 사회 전반에 '진실에 대한 게으름'을 만연하게 만들었다. 사실관계를 검증하기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자극적인 문구에 열광하고, 이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반지성 풍토'가 굳어진 것이다.
배재고 사태는 이러한 디지털 반지성주의가 낳을 미래의 비극적 예고편이다. 5·18의 아픔이 알고리즘을 타고 조롱 섞인 밈으로 변질되었을 때, 청소년들은 그것이 가진 역사적 가치와 무게를 탐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 하나로 가볍게 소비하며 집단적 유희로 즐겼을 뿐이다. 이처럼 진실을 마주하기를 게을리하는 대중에게 실시간 직접민주주의 플랫폼이 쥐어진다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확증 편향적 정보에 갇힌 시민들은 합리적 토론 대신 혐오와 선동을 스포츠 응원처럼 소비하며 투표 버튼을 누를 것이다. 과거의 중우정치가 특정 선동가의 웅변에 휘둘렸다면, 미래의 중우정치는 소셜 네트워크에서 알고리즘을 타고 빠르게 번지는 반지성적 유희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
결국 기술이 열어젖힐 직접민주주의라는 거대한 그릇을 채울 핵심 열쇠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주권을 행사할 시민을 길러내는 '정치·시민교육'에 있다. 앞으로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정치교육은 지식의 주입을 넘어, 정보의 바다 속에서 거짓과 혐오를 걸러내는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공동체 윤리 교육'으로 전면 전환되어야 한다.
특히 대중의 사유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를 터부시하는 문화'부터 깨뜨려야 한다. 정치를 부끄럽거나 갈등을 유발하는 영역으로 치부해 멀리할 것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정치를 이야기하고 참여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습관화된 정치 참여와 토론을 통해, 청소년들은 상대를 무조건 이기려는 상호 파괴적인 '논쟁'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는 사회적 '토론'의 방식을 몸으로 체화해야 한다. 이러한 성숙한 토론 문화를 체화한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때, 비로소 직접민주주의는 참여가 시민을 성장시키고 그 시민이 제도를 발전시키는 지속 가능한 선순환 구조를 갖추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은 인류가 오랫동안 갈망해 온 직접민주주의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선사할 이 완벽한 제도가 우리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인도할지, 혹은 고도화된 집단적 폭력의 장으로 끌어내릴지는 결국 플랫폼 뒤에 앉아 있는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투표 시스템의 속도가 아니라, 그 투표함에 담기는 사유의 깊이로 증명된다. 선행적인 정치교육과 일상적인 토론 교육이 없다면, 기술이 열어젖힐 직접민주주의는 다수가 소수를 합법적으로 짓밟는 효율적인 폭력의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이제 우리는 고도화된 기술이 쥐여줄 거대한 권력 앞에서 스스로에게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당신은 소셜 네트워크의 자극적인 선동에 휘둘려 무비판적으로 투표 버튼을 누르는 '디지털 구경꾼'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어릴 때부터 다듬어진 토론의 이성으로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지는 '진정한 주권자'로 거듭날 것인가. 기술이 열어젖힐 직접민주주의의 신세계에서, 우리는 과연 민주주의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이러시면 안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