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 TV를 보기 싫어 보지는 않았지만 뻔하네요 적어도 저런 사실을 말할때는 제대로 사실관계를 따져 말해야죠. 이동형의 가볍고도 가벼운 자극적으로 발사하는 워딩이 참 그렇습니다. 정말 싸가지 없이 없는 말까지 지어서 말하네요
당시에 유시민씨는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이었고 92년에 정계은퇴를 선언한 DJ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다시 정계에 복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을 한것이죠. 더구나 DJ가 나서게 되면 영남 패권론과 지역 감정 때문에 패한다고 진단한것입니다. 저도 당시에 87년에는 김대중을 비판적 지지했었지만 이때도 정계은퇴 했는데 또 나온다고? 이런 생각을 하며 비판했었습니다.
97년 대선은 그야 말로 정말 뜨거웠습니다. 이때 가장 많이 등장했던 구호가 "3김 (김대중,김영삼,김종필) 정치 청산" 이었으니 말이죠
아무튼 유시민은 이동형 말대로 스승인 조순을 처음부터 지지했던 게 아니라 원래는 대구 출신의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인정 받았고 개혁적 인물이기도 했던 이수인 의원을 지지했죠. 유시민은 이때 이수인의 개혁신당에 직접 참여해서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야권에서 DJ의 새정치연합과 차별을 두려고 뭉첬던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 통합민주당 대선 후보로 서울시장을 지냈던 조순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순의 지지율이 영 오르지 않자 대선을 불과 한달 쯤 앞두고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와 합당하며 한나라당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3김 청산을 외쳤던 개혁세력이 보수와 손을 잡은 겁니다.
그걸 지켜본 유시민씨는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야인 생활을 하게 되었고 훗날 DJ에게 자신의 생각이 짧았었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결국 97년 대선에서는 김종필과 연합한 DJ가 정권을 잡게 됩니다. (이때 DJ가 정권을 잡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발전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단언합니다. DJ가 감옥에서 간수에게 설명했다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즉 전자정부 구현이 실현되죠. 대한민국 전역에서 인터넷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초고속 국가망 사업이 이때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의 정치사는 그야말로 이합집산을 하며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죠.
이 시점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유시민은 적어도 자신의 영달을 위해 당적을 옮기거나 권력을 쫒아가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았듯이 말이죠.
유시민은 자신의 소신과 신념에 의해 보다 나은 정치를 꿈꾸었기에 실패도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처음 들으면 유시민이 DJ를 향해 이동형 내뱉는 말처럼 패악질을 한 것으로 오해할 것 같아 긴글로 써봤습니다.
**유시민은 칼럼니스트로 김대중을 비판했고 훗날 자신의 식견이 짦았음을 DJ에게 공식 사과도 했습니다.
평화민주당(입당) - 탈당 - 개혁국민정당(창당 정계입문) - 탈당 - 열린우리당(창당) - 대통합민주신당(합당) - 탈당 - 국민참여당(창당) - 통합진보당(합당) - 탈당 - 진보정의당(창당 정계은퇴) - 정의당(당명변경) - 탈당
지금 노무현 대통령 잘했다고 좋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절반 넘게는 당시 대통령 욕하고 그랬을 걸요?
십수년 지난 일로 지금까지 유시민의 삶을 보고 판단한 생각이 달라지긴 어려울듯
네 님은 계속 좋아하셔요 바뀔거라고 생각안해요
야인시대 김두한 같아요.
전반전 호감
후반전 극혐
그런 적이 없는데..
마치 유시민이 한 말인마냥 하시면 안될듯
영상을 보시면 바로 나와있어요
생각도 달라졌고..최근에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칭찬 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저런 사실을 말할때는 제대로 사실관계를 따져 말해야죠.
이동형의 가볍고도 가벼운 자극적으로 발사하는 워딩이 참 그렇습니다.
정말 싸가지 없이 없는 말까지 지어서 말하네요
당시에 유시민씨는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이었고 92년에 정계은퇴를 선언한 DJ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다시 정계에 복귀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을 한것이죠.
더구나 DJ가 나서게 되면 영남 패권론과 지역 감정 때문에 패한다고 진단한것입니다.
저도 당시에 87년에는 김대중을 비판적 지지했었지만 이때도 정계은퇴 했는데 또 나온다고?
이런 생각을 하며 비판했었습니다.
97년 대선은 그야 말로 정말 뜨거웠습니다.
이때 가장 많이 등장했던 구호가 "3김 (김대중,김영삼,김종필) 정치 청산" 이었으니 말이죠
아무튼 유시민은 이동형 말대로 스승인 조순을 처음부터 지지했던 게 아니라
원래는 대구 출신의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인정 받았고 개혁적 인물이기도 했던 이수인 의원을 지지했죠.
유시민은 이때 이수인의 개혁신당에 직접 참여해서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야권에서 DJ의 새정치연합과 차별을 두려고 뭉첬던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 통합민주당 대선 후보로 서울시장을 지냈던 조순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순의 지지율이 영 오르지 않자 대선을 불과 한달 쯤 앞두고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와 합당하며 한나라당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3김 청산을 외쳤던 개혁세력이 보수와 손을 잡은 겁니다.
그걸 지켜본 유시민씨는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야인 생활을 하게 되었고
훗날 DJ에게 자신의 생각이 짧았었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결국 97년 대선에서는 김종필과 연합한 DJ가 정권을 잡게 됩니다.
(이때 DJ가 정권을 잡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발전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단언합니다.
DJ가 감옥에서 간수에게 설명했다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 즉 전자정부 구현이 실현되죠.
대한민국 전역에서 인터넷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초고속 국가망 사업이 이때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의 정치사는 그야말로 이합집산을 하며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죠.
이 시점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유시민은 적어도 자신의 영달을 위해 당적을 옮기거나 권력을 쫒아가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았듯이 말이죠.
유시민은 자신의 소신과 신념에 의해 보다 나은 정치를 꿈꾸었기에 실패도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처음 들으면 유시민이 DJ를 향해 이동형 내뱉는 말처럼 패악질을 한 것으로 오해할 것 같아
긴글로 써봤습니다.
**유시민은 칼럼니스트로 김대중을 비판했고 훗날 자신의 식견이 짦았음을 DJ에게 공식 사과도 했습니다.
긴 글 감사합니다..
전후맥락없는 단편적 사실만으로 왜곡한 내용을 바로 잡으려니 몇 배로 힘든거 같아요..^^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