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Bullshit>을 오늘 받았다.
얇은 책이다. 프린스턴 철학과 교수가 쓴 건데, 원래 학술 에세이였던 게 단행본이 되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까지 갔다. 제목이 제목이니 당연히 화제가 됐겠지만, 내용은 꽤 진지하다.
핵심은 이거다.
거짓말쟁이는 그래도 진실을 의식한다. 알면서 숨기는 거니까. 그런데 개소리꾼은 진실이 맞든 틀리든 관심이 없다. 목적은 오직 상대에게 특정 인상을 심는 것. 진실과의 관계 자체가 끊겨 있다. 그래서 프랭크퍼트는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즘 정치 언어가 떠올랐다.
‘문조털래유’ 같은 멸칭 말이다. 그 말을 쓰는 사람이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검찰개혁이 왜 구호에 그쳤는지, 조국 사태에서 민주당이 무엇을 오판했는지를 따지려는 게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냥 이름을 한 덩어리로 뭉개고, 침 뱉고 지나간다.
프랭크퍼트 식으로 보면 이건 비판이 아니라 소속 인증에 가깝다. “나는 저 사람들을 혐오하는 쪽이다.” “나는 낡은 세력과 다르다.” 말의 내용은 비어 있고, 기능만 남은 신분증처럼 작동하는 것.
문제는 이 구조가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는 거다. 자기들이 싫어하는 쪽의 조롱 언어를 그대로 가져와서 내부 사람들에게 쓰면서, 본인은 더 개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개혁적’이라는 말 자체가, 개혁의 내용보다 개혁적으로 보이는 태도가 앞서는 순간 이미 개소리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진짜 비판은 다르게 간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떤 점에서 실패했나.”
“검찰개혁은 왜 제도보다 구호가 앞섰나.”
“조국 사태에서 민주당은 무엇을 오판했나.”
“김어준식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장점과 부작용이 있었나.”
이렇게 묻는 건 비판이다. 멸칭은 묻지 않는다. 분석하지 않는다.
정치 언어가 멸칭으로 내려가면, 남는 건 질문이 아니라 패거리다. 그리고 패거리는 대체로 자기들이 진실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진실보다 자기 편의 기분을 더 아낀다.
프랭크퍼트가 말한 개소리의 정치적 얼굴이 딱 그거다.
얇은 책인데, 읽어보면 개소리의 영역을 더욱 잘 알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