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에게 패했던 바로 그 잊지 못할 대선 때의 일입니다.
오래도록 알고 지냈던 가까운 지인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툭 던지듯 자신은 이번 선거에서 윤석열 찍을 거라는 얘기에
아마 살면서 느꼈던 최고치의 당혹 3위 안에는 들어갈 정도로 놀랐습니다.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젊은 시절 함께 노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비통해 했고,
함께 시간을 내 봉하마을도 들렀고,
국힘 세력들의 전횡에 누구보다도 분노했던 사람인데
아니 이 양반이 혹시 좀 먹고살만해졌다고 변절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단순했습니다.
이재명이 비주류여서가 아니라
그가 지닌 성향과 정치적 야망을 볼 때 결국은 자신이 주류가 되고자 기존 전통을 모두 부숴버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랍니다.
반면 이낙연의 경우 그가 지닌 당시의 정치적 자산이라는 게 대부분 문정권 총리 시절 쌓은 것이고,
친문들의 얼굴마담으로 그 자리 앉게 된 만큼 쉽게 저버리는 행위를 하지 못할 것이기에 괜찮았는데
이재명은 너무 위험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저녁 식사 자리를 마치고 새벽까지 한참을 설득했습니다.
1. 친문 세력과 이재명이 서로 그다지 좋지 않은 사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어차피 친문 세력들의 지지 없이는 이재명은 당선이 힘들고, 당선 이후에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전쟁하듯 내부 투쟁을 일으키진 않을 거다.
문재인 지지율이 저렇게 공고한데 적당한 선에서 존중하고 연대하면서 함께 나아가지 않겠나.
2. 설령 당신의 말이 맞다 해도 민주당이 문재인만의 당도 아니고,
문재인 지키자고 민주당 후보를 뽑지 않는다는 건 지지자로서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편협한 것 같다.
그건 그냥 문재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지지일 뿐이지 않느냐.
그걸 올바른 정치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느냐?
국힘 지지자라서 윤석열을 뽑겠다면 이해하겠는데
민주당 지지자라면서 어떻게 이재명을 뽑지 않고 윤석열을 뽑을 수 있느냐?
차라리 투표를 하지 말아라, 민주당 지지자가 윤석열 뽑는 꼴은 못 보겠다.
결국 그는 윤석열을 찍었고, 윤석열은 당선됐습니다.
그리고 내란을 일으켜 지금은 감옥에 있지요.
윤석열 내란 시기에 그를 만날 때마다 저는 항상 격하게 질책하곤 했습니다.
거봐라. 저런 거에게 표를 줬다 이 사달이 난 거 아니냐.
그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이재명이 당선되겠지.
그럼 모든 게 다 끝나고 염원이 이루어지고 평안해지고 행복해질까? 였습니다.
최근 그와 대화를 나누는 때마다
당시 우리 둘은 서로 반은 맞고 반은 틀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문재인 지키겠다고 윤석열을 뽑는 최악의 악수를 두어 또 다시 우리 역사에 반란수괴가 등장하게 만들었고,
그런 그를 한심해 한 저는 미래 예측에 있어서는 그보다 훨씬 안일했습니다.
저는 설마 이 정도까지 이재명이 주류 교체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지니고
이렇게 서둘러서 판을 엎어 가면서
이렇게 공격적으로 진행할 줄은 몰랐거든요.
김민석이 중용될 때까지는 기억 저편이 쓰라렸습니다만 과거에만 묶여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받아들였습니다만,
외연 확장이라는 명목 하에 이언주가 돌아온 순간은 너무도 속이 상했고,
친일미화꾼에게도 한 자리가 가고,
기존 민주당 주류였던 이들에게 조롱과 린치를 가하는 스피커들이
무슨무슨 단체 이사니 기관장이니 뭐니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영점 다 맞췄다는 식으로 소총 사격으로 시작해서 이제 기관총 사격을 하고 있고
유시민도 가만 있지 않고 재단 사퇴에 이어 본격적으로 한 번 해 보자는 식으로 맞대응하고
또 그를 응원하는 이들 또한 전쟁이다를 외치며 활활 타오르면서 난리가 났고
김어준은 이미 자기만의 전쟁을 시작한지 좀 지난 눈치이지요.
그런데 사실 그렇잖아요.
그들이 서로 다투는 건 이해가 갑니다.
새 대통령 입장에서는 당연히 새로운 물결을 만들고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지
물려받은 헌 옷 입듯 이전부터 있던 사람들 눈치 보면서 들러리 서고 싶은 생각 없을 테고
원래 있던 사람들은 또한
야 너 갖고 있던 거 내 놓고 꺼져 이러면 누가 곱게 내어 주고 물러나겠습니까.
죽을 때 죽더라도 한판 하자는 식이 되는 거고.
그 싸움의 이면에 과연 많은 분께서 언급하시는 숭고한 정신이나
성인군자와 같은 어떤 정치인의 고뇌와 희생 이런 게 과연 담겨 있을까요?
욕망에 가장 충실한 직업이라는 정치인을 택한 자들의 치열한 권력투쟁이 본질입니다.
등 떠밀려 대통령이 되었던 문재인도 대통령이 되는 순간 늘 보신을 생각하며 뒤를 대비하는 행보를 보였기에 고구마라는 욕을 먹었고
강력한 사이다를 기대하며 뽑은 대통령이지만 이재명도 막상 자리에 오르고 보면 몸 사리면서 자기를 지켜줄 자기 세력 강화를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두 대통령을 명분으로 삼아 김민석과 정청래라는 행동대장을 내세워 무수히 많은 정치인들이 욕망 다툼을 벌이고
그에 합류한 스피커라는 이들 또한 악다구니를 쓰며 판을 키우는 이 혼란한 아사리판에서
저는 어떠한 숭고함이나 존경받을 만한 정치인의 위대함 따위는 찾아보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그 판을 구경하는 지지자들 입장에서
어느 쪽으로 귀결되든 적어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끼리
지나치게 선을 넘는 공격을 주고받음으로써 앞으로 두 번 다시 같은 방석에 앉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그런 후회는 없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제 감정적으로 격해져 무수히 많은 글을 올리며 생각이 다른 분들께 조롱 섞인 강한 표현을 여러 번 내질렀던
저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불편하셨을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하루 지나고 보니 상당히 후회되고 많이 반성합니다만,
굳이 그 글들은 지우지 않고 남겨둠으로써 나중에 또 감정의 파도가 올 때 스스로를 제어하는 기제로 활용할까 생각 중입니다.
오늘은 이 글 하나로 스스로 생각 정리도 하는 등 멈추려니 적당히 하라는 걱정을 건네주시진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 혼란이 조속히 수습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전당대회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든 반대쪽은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할 테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우리는 또 다시
"난 이재명 치하에서 핍박받았던 우리 문프를 지키기 위해 한동훈을 찍을 거야.
한동훈은 문재인을 건드리지 않고 이재명에게 되갚아 줄 인물이야."
혹은
"우리 잼프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음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저 사람이 당선되면 안 돼.
난 잼프를 위해 한동훈을 찍을 거야."
뭐 이런 사람이 또 등장하지 말라는 법 없으니까요.
그렇게는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 없습니다.
청와대인사검증라인뿐만 아니라 김어준겸공까지 나서 윤석렬를 비호할정도로 였습니다. 윤석렬 검찰총장임명 문제점을 이야기한 사람은 시사타파, 이동형말고 없었고 욕만 많이 먹었죠. 누구보다 윤석렬,한동훈을 초고속승진시켜주고 권력까지 다 준 사람들이 지금은 누구보다 감놔라 배놔라를 가장 많이 떠들고 있으니 말이죠.
민주당의 전통이 뭔데요?
이런 글도, 정청래 지지자도, 김민석 지지자도, 조국 지지자도 제가 보기에는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왜 어떤 정치를 해야 하는지, 그건 누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숙고도, 결단도, 신념도 없으면서,
사람만 따라가거나, 그마저도 아니고 유튜버들의 입발린 소리를 추종하면서
스스로 정치 고관여층이라는 자기 만족으로 사는 것 말입니다.